지난 18일, 배우 유아인이 본인 계정으로 남긴 트윗. "애호박 드립에 애호박 드립으로 농담 한마디 건냈다가 걸려 여혐한남-잠재적 범죄자가 되었다"라고 썼다.

지난 18일, 배우 유아인이 본인 계정으로 남긴 트윗. "애호박 드립에 애호박 드립으로 농담 한마디 건냈다가 걸려 여혐한남-잠재적 범죄자가 되었다"라고 썼다. ⓒ 유아인 트위터 갈무리


"애호박 드립에 농담 한마디 건넸다가 '여혐한남'(여성을 혐오하는 한국 남성)-잠재적 범죄자가 되었다."

지난 24일, 트위터에서는 '애호박 게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배우 유아인의 발언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많은 트위터 사용자가 유아인을 '한남'으로 부르며 '여성혐오' 발언에 사과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유아인을 향한 비판에 반발했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부산일보>는 <'일베'부터 '오유'까지... 유아인으로 하나 된 남성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어지는 '여혐' 지적에 결국 유아인씨는 지난 2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내용으로 장문의 글을 쓴 바 있다.

앞서 지난 18일 유아인이 트위터에서 "애호박으로 맞아 봤음?"이라고 누리꾼에게 멘션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이는 해당 트위터 사용자가 "유아인은 친구로 두면 힘들 것 같다, 냉장고 속 애호박을 보고 '나한테 혼자라는 건 뭘까'라는 반응을 보일 것 같다"며 상상을 글로 쓴 것에 답장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유아인의 '애호박' 발언이 그저 '아무도 웃기지 못한 농담'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멘션이 오고 간 직후의 흐름으로 보자면 '유아인은 아마 이럴 것 같다'고 상상한 누리꾼의 묘사도 장난에 가까웠고, 이를 우연히 보고(누리꾼은 배우 유아인이 본인 이름을 트위터에서 검색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답변을 달았던 유아인의 글도 이모티콘이 적절히 섞인 '맞받아치기' 정도로 보였다.

'애호박 게이트'에 불을 지핀 유아인의 발언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로 출연한 유아인의 모습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로 출연한 유아인의 모습 ⓒ CJ 엔터테인먼트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닌 누리꾼에게 "맞아볼래"라고 말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반면 그저 '농담' 아니냐는 반박도 나왔지만, 유아인 발언의 폭력성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유아인의 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비판의 수위와 방향이 달라졌다. 24일에는 한 누리꾼이 유아인에게 "전형적인 한남 짓 그만하라"고 지적했고, 유아인은 "증오를 포장해서 페미인 척하는 메갈 짓 이제 그만"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애호박 게이트'에 불이 붙었다. 18일 트위터에서 촉발된 논란이 '여성혐오' 이슈로 번지면서 각종 커뮤니티로 옮겨간 것도 이 시기였다.

결국 '애호박' 드립이 '애호박 게이트'로 불리는 데까지 고작 일주일 정도가 걸린 셈이다. "초면인 타인에게 반말, 구타 언급을 한 것에 사과했으면 끝났을 일"이라고 말한 누리꾼도 있었다.

논란을 소개한 기사도 수십 건 쏟아졌는데, 이 중에선 <유아인이 악플에 대처하는 방법> <유아인, 'SNS 설전' 마침표 찍나 "나는 페미니스트다"> 등 유아인이 일방적으로 악플에 시달렸다는 듯한 제목도 많았다. 커뮤니티와 소셜 게시글 다수에서도 유아인이 악플에 속시원하게 대응했다는 '사이다' 일화로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27일까지 유아인은 SNS에서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유아인이 쓴 트위터 글에서는 "저의 애호박에 신체적, 정신적 피해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기꺼이 사과하겠습니다"라고 썼지만 "폭도들이 아닌 '진정한 여성'들에게 향했다는 억지를 사실로 입증한다면 사과하겠습니다"라고 덧붙여서 여전히 반발을 사고 있다.

 영화평론가 박우성의 지적에 친절하게 답변한 배우 유아인의 트윗.

영화평론가 박우성의 지적에 친절하게 답변한 배우 유아인의 트윗. ⓒ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누리꾼들의 분노는 27일 유아인과 영화평론가 박우성의 대화에서 절정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박우성 영화평론가가 유아인의 발언을 지적하자 존댓말로 공손히 답한 것이 누리꾼에게 '반말로 훈계'한 것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박우성은 유아인의 발언을 두고 "하연수는 사과할 필요 없는 일에 사과했지만 비난받았고, 김윤석은 사과해야 할 일에 사과했음에도 극찬받는다. 유아인은 이런 기울기를 잘 안다. (중략) 그래서 폭력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박우성의 지적도 여성 연예인은 온라인에서도 친절하게 '감정노동'을 해야 하지만, 남성 연예인은 발언을 거칠게 해도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다는 의미로 읽힌다.

'페미니스트' 선언한 유아인, 이것도 살펴봤더라면...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역시나 저에게만은 친절하시군요. 남자-영화-평론가라는 제 위치에 대한 배려는, 당신이 비아냥거린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또 다른 폭력입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한테 하듯이 다른 분께 했든가, 다른 분한테 했듯 저한테 했어야죠. 이것만으로 '남자들'은 이미 기득권"이라고 말했다. 여성(으로 추정되는) 누리꾼들이 '여성혐오'나 '폭력성'을 지적할 때 권위적으로 반응하면서, 남성이고 '영화평론가'라는 공식적인 지위가 드러난 인물에게만 공손했던 태도를 짚은 것이다.

온라인에서도 남성 연예인은 공격적 발언을 해도 '사이다'로 소비되고, 여성 연예인은 존댓말로 답변하더라도 '싸가지'의 유무가 거론되는 현실은 지난해 기사 <유아인은 되고, 하연수는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뭔가>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애호박 게이트'를 통해 유아인은 '성별로 구분 짓는 잣대의 하한선'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를 또 하나 추가한 것 같다. 초면인 누리꾼에게 반말로 훈계를 섞어 지적하는 행동은 여성 연예인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이지 않은가. 그 무대가 소셜 네트워크 안이라도 말이다.

 영화평론가 박우성과 배우 유아인이 트위터에서 주고받은 글.

영화평론가 박우성과 배우 유아인이 트위터에서 주고받은 글. ⓒ 트위터 갈무리


유아인의 "애호박으로 맞아볼래" 발언은 어느 누리꾼의 지적처럼 '폭력적인' 표현이라 사과해야 마땅한 경우일 수 있다. 혹은 유아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드립이었는데' 폭력성을 지적받아 억울할 수도 있다. 유아인의 결론이 전자였다면 사과했을 테고, 후자였다면 그저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누리꾼의 지적을 일일이 받아치며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는 쪽을 택했다. 그것도 자신을 비판하는 누리꾼의 행동을 '메갈 짓'으로 표현해가면서.

그가 말한 '메갈 짓'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자신을 향한 비판들이 '무의미한 헐뜯기'에 가깝다고 생각했다면 더욱 '무시하기'로 대응했어야 적절하지 않았을까. 거기다 유아인은 '남성'인 영화평론가에게는 존중을 담아 답변하면서 '강약약강'(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이라는 비판까지 받게 됐다.

존댓말과 반말의 사용, '맞아볼래' 같은 표현이나 '메갈 짓' 등의 딱지를 붙이는 행위까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더욱 세심하게 생각했어야 마땅하다. 그의 논리와 문장이 아무리 화려해 보이더라도, 팬들 일부를 적으로 돌리는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가 '진정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나누는 행위야말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닫기를 바란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유아인의 선언이 그저 수식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발언에 불과 며칠 앞서 SNS에 수험생을 위해 따뜻한 위로의 글을 남겼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트위터에서는 '유아인' 팬 계정들이 "탈덕합니다"라며 계정 폐쇄를 선언할 정도로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심으로 배우 유아인이 앞으로라도 팬들의 실망을 만회하고 '강약약강'이라는 비판을 뒤집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는 누리꾼의 특정 집단을 '막말하고 막 대해도 되는', 혹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카고 타자기' 유아인, 병역 숨길거 없어요! 배우 유아인이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제작발표회에서 자신의 몸상태를 설명하며 병역에 관련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카고 타자기>는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 분)와 그의 이름 뒤에 숨은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분), 한세주의 열혈 팬에서 안티 팬으로 돌변한 작가 덕후 전설(임수정 분)이 의문의 오래된 타자기와 얽힌 미스터리한 앤티크 로맨스 드라마다. 7일 금요일 오후 8시 첫 방송.

▲ '시카고 타자기' 유아인, 병역 숨길거 없어요! 배우 유아인이 지난 4월 5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tvN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제작발표회에서 자신의 몸상태를 설명하며 병역에 관련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카고 타자기>는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 분)와 그의 이름 뒤에 숨은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분), 한세주의 열혈 팬에서 안티 팬으로 돌변한 작가 덕후 전설(임수정 분)이 의문의 오래된 타자기와 얽힌 미스터리한 앤티크 로맨스 드라마다. 7일 금요일 오후 8시 첫 방송.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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