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16개 지역MBC는 서울MBC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지역 현장에서 취재한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등은 제대로 방송되지 못했고, 서울MBC 편집자들의 구미에 맞는 뉴스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사장이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MBC 잔혹사를 소개합니다. 김장겸 사장이 해임됐지만, 지역MBC에는 그가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남아있습니다. MBC가 완전하게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지역MBC도 살아나야 합니다. '지역MBC 잔혹사'는 안동MBC 강병규 PD가 연재합니다.

 지역 MBC 잔혹사 4. 지역MBC강제통폐합

진주-창원 MBC 통합 결정을 보도한 2011년 8월 9일자 경남도민일보. 언론노조 MBC본부 진주지부 사무국장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언론노조 MBC본부


지난 9월 18일, <한겨레>가 보도한 국가정보원 방송장악 문건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은 궁극적으로 민영화로의 소유구조 개편을 마지막 3단계로 적시하고 있다. <한겨레>가 공개한 10월 8일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과의 대화록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의 총파업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이었던 이진숙(현 대전 MBC 사장)은 '정수장학회의 지분매각 방식 및 그 활용방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최필립 이사장에게 제안했다.

애초 10월 19일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이 <한겨레>의 보도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들은 MBC 민영화를 주도면밀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국정원 문건은 MBC 민영화가 실제로 진행되었다는 걸 사실로 드러냈다. 당시 밝혀진 MBC 민영화는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등을 통한 것이었지만, 지역 MBC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 방법은 통폐합, 즉 광역화를 통해 추진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누구를 위한 통합인가

 지역 MBC 잔혹사 4. 지역MBC강제통폐합

진주-창원 MBC가 경남MBC로 통합된다는 광고. ⓒ 언론노조 MBC본부


사실 지역 MBC의 광역화는 김재철 전 사장만 추진했던 게 아니다. MBC 내·외부적으로는 매우 오래된 논제였다. 지역 MBC 광역화 문제는 1989년 19개 지역 MBC 계열사 노동조합 협의체인 '지방 MBC 위상 정립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방 MBC 위상 정립 연구조사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그 이후 광역화 논의는 지금까지 지역 MBC 내의 화두로 자리 잡아 왔고, 1998년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2기가 출범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6개 회사로 통합을 주장하는 노동조합은 회사와는 별도로 지방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MBC 지부 중 광역화를 반대한 일부는 '권한 정지'라는 노동조합 징계를 받는 등 갈등이 고조되었다. 당시 지역 MBC 광역화 논의를 주도했던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장이 현재 방송문화진흥회 이완기 이사장이다.

광역화가 물 위로 떠 오른 이후, 서울 MBC 사장으로 입성하고자 했던 후보자들 대부분은 사장 면접 당시 '경영계획서'를 발표하며 '지역 MBC 광역화' 의제를 포함했다. 지역 MBC를 지배하고 있던 MBC 최고 경영진에게 지역 MBC는 통합과 축소의 대상일 뿐이었다. 수평적 MBC 네트워크의 강점과 경쟁력을 논하기에 앞서 '규모의 경제'에만 집착하는 수준이었다. 비교적 개혁적이라 평가되었던 최문순 전 사장은 변화와 개혁이 MBC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권역별 특화콘텐츠 제작기지 건설'이라는 진일보된 의제를 제안했다. 그러나 실행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낙하산 그 후...

 지역 MBC 잔혹사 4. 지역MBC강제통폐합

진주MBC 통합 결정에, 정대균 언론노조 MBC본부 진주지부장은 단식 농성으로 맞섰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 언론노조 MBC본부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시나리오에 맞춰 임명된 김재철 전 MBC 사장은 공격적으로 광역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광역화의 당사자인 지역MBC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례적으로 2010년 3월 8일 마산과 진주 MBC에 김종국(전 MBC 기조실장)을 겸임사장으로 발령했다. 지역MBC 통폐합의 전조등이었다. 김 전 사장은 취임 후 <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광역화를 중시하는 것도 지역 MBC를 키워서 본사와 견줘 손색이 없는 콘텐츠 생산 기지로 만들기 위함"이라며 "올해는 시범 지역인 마산과 진주 MBC의 통합만 추진해 결과를 보면서 더욱 바람직한 광역화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사측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통폐합 추진에, MBC 구성원들과 지역사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임명된 김종국 진주·마산 MBC 겸임사장은 겸임사장 철회를 요구하는 진주 MBC 구성원들에 의해 출근을 저지당했다. 서부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지역 정치권도 진주·마산 MBC 통합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국 겸임사장은 강제통폐합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던 진주 MBC 조합원에게 대량 중징계를 내렸다. 노사 간 성실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법원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2010년 7월 9일 노사협의회 자리에서, 정대균 지부위원장에게 해고 통지를 날렸다. 진주지부 전체 조합원 65명 중 14명에 대한 중징계였다. 제작인력의 22%를 징계해 정상적인 방송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해 8월 22일에는 방송문화진흥회의 합병 승인을 거쳐 9월, 임시주총에서 합병 승인을 의결했다.

 지역 MBC 잔혹사 4. 지역MBC강제통폐합

ⓒ 언론노조 MBC본부


그러나 지역 MBC 통폐합 반대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크게 일어났다. '지역 MBC 강제통합 반대 전국연합'은 2011년 5월 전국 지역주민 5만6000여 명이 서명한 '지역 MBC 통폐합 반대' 의견을 방통위에 전달했다. 지역 국회의원 64명(당시 한나라당 29명, 민주당 28명, 자유선진당 4명, 민주노동당 3명)도 그해 5월 지역 MBC 통폐합 추진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 결과 2011년 5월 17일, 방통위 변경허가심사위원회는 5월 19일까지였던 진주·창원 MBC 합병 심사 기간을 7월 말까지로 연장 결정했다.

그러던 중 김재철 전 사장은 같은 달 29일 방송문화진흥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MBC는 이와 관련한 보도자료에서 "(김재철 사장의 사표는) 지난 20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진주·창원 MBC 통폐합 승인을 보류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방통위 김충식, 양문석 두 상임위원은 8일 전체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재철 사장은 (2011년 5월) 29일 11시 40분경 사표를 내기 직전 간부 회의에서 '8월 중순 통폐합 승인이 날 것이다'는 말까지 해놓고 엉뚱하게도 9일 전의 방통위 '승인 보류 결정'을 문제 삼아 사표를 내며 방통위를 '협박'했던 것"이라며 방통위가 일개 "방송사 사장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결국 김재철 전 사장의 '사표 쇼'가 성공했다. 야권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의결 반대와 퇴장에도 불구하고 2011년 8월 8일 오전 10시 30분,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지상파방송사업자 변경허가에 관한 건-창원문화방송(주)과 진주문화방송(주)의 합병'을 의결했다. 1989년부터 논란이 되어 왔던 지역 MBC의 광역화 문제가 20년 세월이 흘러 실제로 첫 번째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2011년 8월 방통위는 MBC 경남을 허가하면서 서부경남지역 보도프로그램 편성계획 이행과 지역 프로그램 강화 등을 조건으로 걸었다. 지역민과 사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도 권고했다. 서울 MBC 역시 MBC 경남에 대한 지원은 물론 방통위 승인 조건의 성실한 이행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

그러나 통폐합된 MBC 경남의 일본지사는 동경 특파원을 지낸 김재철 전 사장 주도로 추진한 일본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이 되었다. MBC 경남이 제작해 서울 MBC에 편성했다고 하던 <고향을 부탁해>는 경남의 PD 2명이 격주로 외주관리와 마무리 편집만 하다 보니 실상은 무늬만 'MBC 경남 표'였다. 서부경남 소식을 전했던 진주 MBC <뉴스데스크>는 없어져 통합되었지만 로컬 뉴스의 절대 시간은 그대로였고, 그나마 서울 MBC에서 지원하던 프로그램들도 점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역 MBC 잔혹사 4. 지역MBC강제통폐합

김종국-안광한을 거치면서 지역MBC 통합작업은 계속되었고 'MBC 강원영동(2015년 1월)', 'MBC 충북(2016년 10월)'까지 출범시켰다. ⓒ 언론노조 MBC본부


그 이후로도 김재철 전 사장은 강릉과 삼척 MBC, 충주와 청주 MBC에 겸임사장을 임명했다. 이후 김종국-안광한을 거치면서 통합작업은 계속되었고 'MBC 강원영동(2015년 1월)', 'MBC 충북(2016년 10월)'까지 출범시켰다. 물론 방통위는 합병 승인 때마다 지역성 강화, 제작활성화, 보도 및 시사 프로그램의 편성 강화, 시청자권익보호 등을 승인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조건 이행이 성실히 되어왔는지, 합병의 시너지가 충분했는지, 지역성은 지켜져 왔는지에 대해 규제기관의 분석, 평가나 그 흔한 연구용역 하나 없었다.

지난해에는 광주·여수·목포 MBC와 대구·안동·포항 MBC에 광역화 임무를 맡긴 공동상무제도를 신설 임명하기도 했다. 3개사에 임명된 공동상무는 인사위원장과 광역화 추진 업무만 전담하고 있으며, 실제로 각 사별로 결재권도 갖지 못한 채 1년 평균 3억 가까운 비용만 축내고 있다. 그나마 새 정부 출범 이후로는 공동상무 스스로 "광역화 추진은 물 건너갔다"며 자신의 용도는 폐기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20년을 넘게 MBC 내부적으로 논의되어 왔고 학계는 물론 규제기관에서 연구를 거듭해오던 지역 MBC의 광역화는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김재철 전 사장에 의해 강제적으로 그리고 졸속으로 추진되었다. 지역 MBC 내부적으로는 갈등과 상처만 남았고, 해당 지역 시청자들의 알 권리는 배제당했으며, 결과적으로 지역성은 점점 더 퇴보했다.

지난 9년 남짓 행해졌던 강제와 불통의 '지역 MBC의 광역화 정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지역성 강화'가 MBC 정책 결정 기준의 최우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는 강력한 지방분권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의 공공성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공영방송 MBC의 이사회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지역 MBC의 대주주로서 통제와 관리에 익숙해져 있는 서울 MBC 중심 인식을 삭제해야 한다. 상생하는 수평적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MBC가 제자리를 찾을 때에야, MBC는 국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강병규 PD는 1996년 안동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2005년~2007년까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직국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2011년~2012년은 MBC본부 안동지부장과 지역방송협의회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면서 김재철 퇴진을 위한 총파업 당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습니다.

지역MBC 통폐합 MBC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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