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방송 파업을 위해 KBS 새노조가 다시 깃발을 들었습니다. "RESET KBS!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겠습니다!" KBS 구성원들은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고대영 사장 퇴진과 무소불위의 KBS 이사회를 향한 싸움. 이번에는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KBS 구성원들이 직접 시청자 여러분에게 전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서 연속으로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들의 꾸준한 싸움을 지켜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글은 <세계는 지금> 조나은 PD의 글입니다.

 언론노조 KBS 본부 관련 집회 사진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관련 집회 사진. 가운데가 기고문을 쓴 조나은 KBS PD이다. ⓒ 언론노조KBS본부


오늘도 '생방'입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아래 언론노조) KBS 본부에서는 매일 파업을 준비하는 큐시트가 나옵니다. 매일 진행되는 집회에서는 라디오 PD가 쓴 원고를 기반으로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MC를 맡습니다. 집회 때 상영되는 영상은 2~6개, 기자들은 파업뉴스를 예능PD들은 파업 뮤직비디오를 생산합니다. 많은 이들이 밤을 새우고 준비하는 이 매일 매일의 잔칫상은 조합원들이 함께하고 시민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공유됩니다. 파업이 90일이 되어가도 본관 로비가 꽉 찰 정도로 유지되는 500명가량의 집회 대오는 오늘도 도무지 그 수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월급이 '4만 원' 찍힌 지난주, 평소처럼 집회에 나온 선후배들을 보면서 새삼 생각했습니다. 한명 한명이 포기하는 것이 참 많구나. 겉으론 밝게 웃어 보이고 현재 상황을 두고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파업은 쉽지 않습니다. 이번이 2012년 이후 맞는 세 번째 파업입니다. 수많은 직원이 생계,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방송을 포기하고 차디찬 바닥을 택했습니다. 언론노조 KBS 본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내집회와 피케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KBS 본부 관련 집회 사진

언론노조 KBS 본부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언론노조KBS본부


우리는 회사원이 아니라 언론인이다

부당한 리포트를 거부해서 징계를 받았던 한 기자는 집회 도중 이렇게 외쳤습니다.

"회사원이라면 의당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회사원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KBS라는 회사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보도를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언론인이기 때문입니다."

KBS 보도 자율성이 침해당할 경우 망가지는 것은 뉴스만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KBS의 모든 구성원은 한마음으로 움직였습니다. 보도 시사 구역을 뛰어넘는 전방위적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는 그 자체로 큰 감동이었습니다. 고대영 체제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드라마 예능 구역 조합원들은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참가합니다. 방송기술 구역에서는 조직 내 온갖 압력과 불이익을 감당하며 파업이란 선택을 했습니다. '구 노조'(KBS노동조합, 1노조)의 지명파업을 거부하고 노조를 옮겨 파업에 동참한 직원들도 있습니다.

파업을 분열시키려는 자들이 직종별 갈등을 강조하고 흔들어도 노조원 수는 늘어갔습니다. 그만큼 우리 모두에게 무너진 KBS를 살리는 것은 중요했습니다. 정규 방송이 나가지 않고 시청자들로부터 잊히는 것은 방송 종사자들에게 참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KBS 언론노조의 직원들은 월급쟁이가 아닌 언론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계속 깨져왔지만 이번이 마지막 승부일 거라는 정신으로 조합원들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KBS 본부 관련 집회 사진

KBS의 많은 구성원은, 고대영 사장을 KBS의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 언론노조KBS본부


지금 고대영은 KBS의 사장이 아니다

그 결과 팀부장단의 보직 사퇴에 이어 지난주에는 고대영 사장의 용단을 촉구하는 국장 단위의 성명까지 나왔습니다. 자신이 임명한 간부들조차 사장을 지지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더 이상 고대영은 KBS의 실질적 사장이라 볼 수 없습니다. 지난 24일, 감사원은 KBS의 이사장과 야당(구 새누리당) 추천 이사들의 비위 사실을 입증하여 '해임' 또는 '연임 추천 배제' 등의 조치를 하라는 권고를 내렸습니다. 감사 결과를 보며 저는 처음으로 우리의 싸움이 정의롭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어떤 작은 승리도 지금까지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감사원의 결과도 언론노조 KBS 본부가 시민 분들이 제보해준 내용으로 수개월 전부터 노력해 맺을 수 있었던 결실입니다. 조합원들은 감사원 앞에서 수차례 목청 터지게 외쳤습니다. 사내에서, 고대영의 집 앞에서, 부패 이사의 사업장 앞에서, 광화문에서 지금도 어려운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인호 이사장과 강규형 이사는 이런 언론노조 KBS 본부를 두고 홍위병이라 표현했습니다. '집회=동원'이라고 도식화되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어마어마한 자발성은 이해 불가의 영역일 겁니다. 그들에게 어떤 행위의 동력은 권력과 이익뿐일 테니까요. 권력은 200만 원으로 그들에게 불리한 뉴스를 삭제하게 만들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콘솔을 놓은 우리 기술 스태프에게, 카메라를 놓은 촬영 감독에게, 마이크를 놓은 아나운서에게 결코 그 누구도 '좋은 방송을 만들면서 오는 보람'을 뛰어넘는 보상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KBS 정상화-를 위하여 2200명의 조합원은 단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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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언론노조 KBS 본부의 조합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갈 길을 가고 있다. ⓒ 언론노조KBS본부


아직 우리에게 남은 과제

이제 공은 방송통신위원회에게 넘어갔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이사의 자격에 먹칠을 한 적폐 이사들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방송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제물로 삼는 이들에게 한시라도 자리를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KBS가 다시 서기 위한 초석은 방통위의 신속한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지난주인 23일, 교섭대표의 지위에 있는 구 노조가 고대영 사장과 단체협약을 맺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조합원들의 이탈로 교섭대표 노조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도 남지 않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언론노조 KBS 본부의 투쟁을 불법화하는 주요 공신이 된 것입니다. 온갖 반동적인 시도와 방해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승리할 때까지 결코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 파업은 KBS가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른 그 누구의 힘을 빌려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손으로 고대영 체제를 종식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KBS가 진정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다시는 누구도 국민의 방송을 사유화할 수 없도록 우리는 이 싸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병을 떨치고 더 강해지는 아이처럼 KBS는 한층 더 튼튼해져 국민의 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쉽지 않았던 만큼 KBS 내부에 남은 나쁜 구습과 잔재들을 제거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제도적 대안으로서 '방송법 개정' 등 방송독립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파업 기간 동안 확인한 동료들의 의지와 헌신 등을 보며 결국 우리는 해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고 여전히 시민 분들의 응원이 간절합니다. 길 끝에 있을 밝은 KBS의 모습을 그려보며 오늘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갑니다.

* 조나은 PD는 2012년 KBS에 입사해 <신들의 섬 제주> <추적 60분> <세계는 지금> 등을 연출했다. 대리운전기사 수수료 문제 리포트와 버벌진트 도주현장을 포착한 <추적60분: 도로위의 살인자 음주운전 편>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통해 교통안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6년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세계는 지금>팀의 PD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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