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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 더요! 5분 더~~"

아이들의 외침에 성대골 에너지전환마을 김소영 대표의 눈이 커진다. 아이들이 집중을 못할거 라 지레짐작한 김 대표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약속을 한 터.

"강의에 집중 안 할 때마다 5분씩 추가할 거에요. 집에 빨리 가고 싶죠? 말 잘 들으면 30분 안에 끝내줄게요."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은 강의가 재미있다며 "5분만 더!"를 외치니 선생님이 놀랄 수밖에.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끄고 창문 열고 수업하자는 아이들인데, 그 이야기를 미리 못 전했던 나의 실수. 강의 내용은 통계 자료를 보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전하는 무거운 이야기였음에도 아이들의 반응이 이러니 놀랄 만도 하셨겠다.

아이들이 김소영 대표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들이 김소영 대표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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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 위치한 대안학교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아래 배움터경당)이 지난 22일 성대골 에너지 전환 마을(아래 성대골)에서 겪은 일화다. 배움터경당은 2017년 하반기 9월에서 11월까지 매달 하루씩 나들이를 다녀왔다. 9월은 수원의 지동 벽화마을, 10월은 안양의 예술공원(김중업박물관, 안양역사박물관)과 오마이뉴스 주최 행복교육포럼. 그리고 11월이 성대골이었다.

배움터경당의 학생들은 올해 봄, 광명의 업사이클링 센터에 다녀와서 직접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고 친환경 실천 약속도 작성했다. 또 지난여름부터는 학교 건물의 전기 사용량을 게시판에 붙여 놓고 수시로 체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올해 마지막 나들이의 주제가 '에너지'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겠다. 마침 배움터 경당의 교사가 되기 전 일했던 시민단체에서 성대골 김소영 대표를 강사로 초빙했던 경험이 있었다. 귀감이 되는 사례라 생각해서 초빙했고 강의를 들은 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5년 전 강의에서는 성대골의 시작을 가능케 했던 '에너지 절전소'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평범한 주부들이 마을의 각 가정과 상점 등을 돌면서 에너지 절약이 곧 생산이라며 독려했고, 실제로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나갔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그런데 최근 보도된 기사를 통해 접한 성대골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관련 기사 : '에너지 자립' 실험 6년 "피라미드 의심받으며 4천 세대 모았죠", <오마이뉴스> 2017년 10월 14일)

리빙랩(생활연구소)를 통한 미니태양광 제품 개발, 태양광 발전 보급 확대를 위한 우리집솔라론 금융상품 개발, 미니태양광을 수리·점검해 주는 마을 백업센터,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제품 판매 및 홍보 매장 역할을 하는 에너지 슈퍼마켓. 그야말로 에너지전환마을로서 이보다 더 화려한 스펙이 있을까.

이 모든 것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전날부터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레였다. 부푼 가슴 안고 성대골에 도착하니 마을 학교라는 공간으로 안내를 받았다. 작은 교실에 화목난로, 태양열 온풍기 정도가 비치되어 있었다. 첫 느낌은. 그저 소박했다. 평소 크고 멋진 것에 대한 동경은 별로 없는데, 은연중에 그런 멋진 모습을 기대했나 보다. 아니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이렇게 좋은 곳을 너희에게 소개해 주려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나 보다.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마을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있는 배움터경당의 학생들
 성대골 마을학교에서 마을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있는 배움터경당의 학생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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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맞이한 성대골의 활동가 차은주 선생님이 잘 부각되지는 않았던 이야기로 마을 소개를 시작했다.

"성대골은 상도 3·4동을 아울러서 말하는 곳이에요. 대략 5만 3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 동네인데, 이상하게 학교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만들기 운동을 시작했고, 그 결실로 생긴 곳이 어린이 도서관이에요. 어린이 도서관에 모인 엄마들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공부를 하면서 성대골 에너지전환 마을이 시작됐어요."

이 평범한 소개가. 아주 강렬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학교가 없어서 시작했던 운동. 거기서 교육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던 그들. 결국, 그토록 갈망하던 교육이라는 매개가 어떻게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차 선생님은 마을의 화려한 결과물만을 자랑하지 않고, 과정 중 겪었던 시행착오 이야기를 꼭 덧붙였다. 마을 학교 공간에서 에너지전환의 상징적 위용을 뽐내는 화목난로. 정작 처음에는 설치만 해놓고 아무 지식이 없어, 뒷산에서 아무 나무나 주워서 땔감으로 썼다가, 온갖 냄새와 연기로 한참 고생을 했단다. 비록 지금은 참나무를 땔감으로 써서 그런 불상사는 없지만, 그래도 연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이웃들에게 군고구마를 돌리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는 하지만 좁은 주택가의 특성상 이웃들의 불평은 여전하다고 한다.

또 아이들이 드나드는 마을 학교의 공간 특성상 위험하지 않은 한쪽에 화목 난로를 설치하느라 연기를 빼주는 연통의 길이는 짧아졌다. 그렇게 설치를 하고 나서야, 난로의 온기는 연통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이날 오후 내내 화목 난로에 불을 지폈는데도, 실내가 따뜻하지 않다고 느낀 건 그 말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면서도 시행착오 이야기는 이어졌다. 마을에는 확실히 태양광 패널이 많이 보였다. 태양광 패널을 확인하려 머리를 치켜들고만 걷고 있는데, 차 선생님의 돌발 질문. "숨겨진 태양광 패널을 찾아보세요." 지붕, 전신주 등 하늘로만 눈을 향하고 있는데 별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아래를 보세요." 하늘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보니, 중앙차선등에 'SOLAR'라는 글귀가 보인다. 태양광 발전 중앙차선등이었다. 곳곳에 아이디어를 심었구나 싶어 칭찬 한마디 하려는 찰나. 어두워지면 자연스럽게 차선등에 불이 켜지는데, 그러다 보니 편의점처럼 24시간 불을 켜 놓는 곳에서는 차선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한마디. 이런 것조차 하나씩 시행착오를 거쳤고 지금도 실수를 통해 배우고 있다고 한다.

화려한 사업들을 기대하며 걷던 중 경로당 건물 앞에서 멈춰 선 차 선생님이 설명을 이어갔다.

"단열이 잘 안 되는 노후건물에 살면서 한겨울에 너무 춥게 사는 노인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을 에너지에 취약하다고 표현해요. 깨끗한 에너지로 생산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에너지에 취약한 분들을 위한 고민도 중요해요. 그래서 우선 경로당 건물에 단열 공사를 하는 작업을 했어요."

태양광 발전, 그를 위한 금융 상품, 백업 센터 등 화려한 포장지로 마을을 덮는 것도 쉽진 않지만 참 멋진 일이다. 그러나 진정 에너지 운동으로 인해 약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마음. 그건 직접 살면서 진정 자신의 삶이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이리라.

단열 공사를 한 경로당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단열 공사를 한 경로당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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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숙연해졌던 나에게 부끄러움까지 더해 준 대화 한 토막. 워낙 유명한 마을이니 각 행정 기관에서 다양하게 지원해 주지는 않는지 물었다.

"이런 사업들을 다 하시려면 행정에서 보조금을 꽤 받으셨겠어요."
"그런데 마을에서 하는 사업들이 보조금만으로 운영이 되면, 그 지원이 끊기면 사업도 중단이 되잖아요. 그래서 마을에서 보조금을 바라보고 사업을 하는 건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마을에서 7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던 이들이 그 정도 철학도 갖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쉽게 질문을 던진 것이 참 부끄러웠다.

내 숙연함, 부끄러움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이날 신나게 놀면서 공부를 했다. '해로'라 부르는 에너지 차량에 설치된 각종 재생 에너지 도구들은 아이들의 재미난 놀이감이었다. 자전거 발전기로 만든 솜사탕은 이날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고, 태양광 발전 소형 라디오는 시간여행 놀이의 소재가 되었다. 게다가 오후에 진행한 '지구촌 힘씨'라는 보드게임은 놀면서 하는 공부의 결정체였다. (사)환경교육센터에서 에너지 관련 지식의 이해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만든 게임인데, 아이들은 소감을 딱 한 마디로 표현했다.

"원자력은 정말 최악의 에너지에요!"

미니 태양광으로 발전되는 여러 기기들을 즐겁게 체험하는 아이들.
 미니 태양광으로 발전되는 여러 기기들을 즐겁게 체험하는 아이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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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앞서 언급했던 김소영 대표의 강의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방문하기 전 기대했던 강의 내용은 성대골에서 이뤄진 각종 사업들의 재미난 뒷이야기였다. 어떤 과정으로 이 거대한 사업들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아이들이 알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김 대표 강의의 핵심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부각되고 있는 지역 분권형 에너지의 중요성이었다. 비록 김 대표의 재미난 언변 덕분에 강의는 재밌었지만, 내용 자체는 조금은 딱딱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반응은 문자 그대로 놀라웠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강의를 집중하며 들었다. 다음 날 아이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특별했어요."
"어떤 게 특별했니?"
"적은 소수의 사람들이 마을을 그렇게 변화시켰다는 게 기억에 남아요."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며 즐거워하는 학생들
 자전거 발전기를 돌리며 즐거워하는 학생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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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훌륭한 기술과 사업 결과물이 아니라, 소수의 주체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이 사람을 움직이고 마을을 변화시켜냈던 노력과 마음들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이보다 더 화려하고 내실 있는 교육이 또 어디 있겠나.

자본을 들여서 첨단 기술로 무장된 각종 시설을 마을에 깔아 놓는 것이 에너지전환 마을의 본질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주변 이웃들을 설득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진짜 마을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작은 마음. 작은 마음을 삶으로 이뤄내기 위해 해내는 큰 노력들. 그것을 만나고 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추동되는 에너지가 성대골 마을을 뒤덮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성대골에서 활동하는 선생님들이 인사를 하며 아이들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성대골에서 활동하는 선생님들이 인사를 하며 아이들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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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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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성대골 에너지전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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