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최종 38라운드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수원 산토스가 슛하고 있다.

지난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최종 38라운드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수원 산토스가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2일 수요일, 또 한 명의 걸출한 외인(外人)이 한국 땅을 떠나게 됐다. 주인공은 수원 삼성에서 활약 중이던 브라질에 온 공격수 산토스다. 수원은 22일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산토스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상호 합의했다"고 구단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산토스는 수원에서 불과 4년 반 밖에 뛰지 않은 외국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수원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선수다. 2013년 7월 수원에 합류한 산토스는 5시즌 동안 167경기에 출장해 62골 16도움을 기록했다. 푸른 유니폼을 입고 맞이한 두 번째 시즌인 2014년에는 리그에서만 14골을 잡아내면서 K리그 클래식 득점왕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수원 소속 선수의 K리그 득점왕 등극은 2001년 산드로 이후 13년 만에 기록이었다.

산토스가 수원에서 터뜨린 62골도 의미가 큰 기록이다. 그가 터뜨린 62골로 수원의 구단 최다 득점자의 이름은 현 수원의 감독인 서정원에서 산토스로 이름을 달리하게 됐다. 수원은 역사적으로 이름값 높은 공격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지만, 최다 득점자의 골 수가 50골에도 미치지 못했던(서정원 46골) 아쉬움을 산토스의 득점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산토스는 2013년 7월 수원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제주 유나이트 선수로도 뛰었다. 2010년 제주에 입단하면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산토스는 수준 높은 기술과 결정력으로 단숨에 K리그 최정상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제주에서 보낸 세 시즌 동안 매 시즌 리그에서만 14골씩을 잡아냈고, 2010년에는 제주의 K리그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잠시 중국으로 떠났던 6개월을 제외하고 산토스는 햇수로 8년이나 K리그를 누볐다. 몇몇의 외국인 선수가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수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한국 땅을 떠나는 동안 산토스는 묵묵히 팀에 헌신했다. K리그 팬이라면 누구나 산토스를 알고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로 실력과 외적인 부분도 동시에 갖춘 선수였다. 산토스는 수원뿐만 아니라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인사도 못한 팬들, 모두가 아쉬운 이별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 올해로 만 32세가 된 베테랑과 수원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며 이별을 택했다. 수원 구단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능한 선택이다. 수원은 지난 몇 년간 모기업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클럽의 몸집을 줄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레알 수원'이라 불리며 스타 선수들을 빅버드로 불러 모았던 기억은 머나먼 과거가 됐다. 비싼 몸값의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 보다 구단의 유소년팀인 메탄고등학교에서 배출한 '신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변화의 바람 속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30대 외국인 선수가 살아남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고, 산토스도 그 개혁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수원이 산토스와 재계약을 맺지 않은 일은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사항이다. 그러나 산토스를 아끼고 좋아했던 많은 수원 팬들에게는 '씁쓸한 이별'임은 부정할 수 없다. 팬들은 산토스와 이별 그 자체보다 K리그의 소중한 자산이자 클럽의 레전드인 선수가 떠남에도 그에 합당한 작별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수원 팬들을 비롯한 K리그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구단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팬들이 원하는 선수를 놓칠 때 아쉬운 목소리를 내곤 하지만 냉정하게 구단의 사정을 이해하고 결정을 존중하는 팬들이 다수다. 산토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토스가 여전히 주어진 찬스에서 감독의 바람에 응답하는 수준 높은 선수지만, 예전처럼 빠른 속도와 활동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팬들은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떠나야 할 시기가 온 것은 맞다. 문제는 산토스와의 작별 방식이다. 수원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5년간 보여준 성실, 헌신,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전달했으며 11번째 구단 공식 레전드로 (산토스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미 스스로 수원의 레전드 반열에 오른 산토스에게 '레전드 선정'과 '감사패'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팬들도 구단의 작별 방식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구단 직원들은 정든 산토스와 직접 이별의 인사를 나눴을지 모르지만, 팬들에게는 '고별경기' 등 인사를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최종 38라운드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수원 산토스(왼쪽 세번째)가 3대2로 앞서가는 역전골을 넣고서 얼굴을 감싸 쥐며 감격해하고 있다.

지난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최종 38라운드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수원 산토스(왼쪽 세번째)가 3대2로 앞서가는 역전골을 넣고서 얼굴을 감싸 쥐며 감격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리그 일정이 모두 종료된 이 시점에 산토스를 위한 고별 경기를 주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기회는 많았다. 당장 지난 10월 29일 홈 구장에서 열린 강원FC와 36라운드 리그 경기에서 아름다운 작별이 가능했다. 당시에는 아직 재계약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변명에 불과하다.

선수의 계약 여부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특히 산토스 수준의 외국인 선수의 활용 여부는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결정이기에 구단이 비교적 빠르게 결단을 내린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을 뿐 산토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결정을 산토스 본인과 선수단이 미리 인지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산토스의 마지막 경기가 되어버린 리그 최종전 전북 현대와 경기에서 산토스는 역전골을 넣은 후에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렸다. 많은 수원 팬들도 산토스의 눈물에서 재계약이 어려워졌음을 직감했다.

구단 내부적으로 미리 결정을 내렸다면 리그가 아직 진행 중이더라도 산토스의 계약 해지 사실을 팬들에게 알리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수원은 이미 올 시즌 초반에 또 다른 레전드인 이정수가 불미스러운 사건을 빌미로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났다. 최근에는 일부 팬이 관중석에서 '나치식 인사'를 하면서 구단 이미지가 크게 훼손당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수원을 향한 시선이 따가운 이 시점에 산토스의 초라한 퇴장이 팬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수원은 이렇게 산토스란 '역사'를 아쉽게 떠나보냈다. 수원의 이러한 행보는 최근 수원이 K리그 내에서 보여주는 위상의 크기를 방증하는 듯하다. 리그 최고의 팀 자리는 전북에게 내준지 오래고, 인기 측면에서도 객관적인 수치상 라이벌 FC서울에게 밀리고 있다. 전북은 자신들의 전설 이동국과 1년 더 동행하기로 선언했고, 서울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공격수인 데얀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

산토스의 이탈로 이제 수원은 외국인 선수 한 명을 새롭게 영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찬스는 수원에게 '양날의 검'이다. 산토스에 버금가는 선수를 영입하면 인정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강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 눈에 훤하다. 안 그래도 풍족하지 못한 모기업의 지원에 신음하고 있는 수원에게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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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스 이별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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