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2019 중국 농구월드컵 국가대표 출정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허재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네스트호텔에서 열린 '2019 중국 농구월드컵 국가대표 출정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은 A매치의 달이다. 축구의 신태용호, 야구의 선동열호에 이어 이번에는 허재호가 한국농구를 대표하여 출사표를 던졌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농구 대표팀은 이번주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 1라운드 뉴질랜드(23일)-중국(26일)전을 치른다.

농구월드컵도 이번 대회부터 지역예선엔 축구와 같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을 도입했다. 보통 프로리그가 열리지 않는 비시즌에 특정 개최지에 모여 대회를 치르던 방식보다 좀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될 수 있고 국내 농구의 인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다.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출신인 허재 감독은 2016년부터 대표팀의 전임감독으로 임명되어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8월 열린 아시아컵에서는 3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당초 대표팀은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와 높이 열세로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기대치가 낮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탄탄한 패싱게임과 외곽슛을 앞세워 필리핀, 이란, 뉴질랜드 등 아시아 강호들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한국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연상시킨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젊은 선수들의 잠재력과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 또한 성과였다.

세계선수권이던 명칭 월드컵으로 바꾸고 흥행 노려

아시아컵이 일종의 전초전이었다면 실질적으로 비중이 더 높은 대회는 이번 농구월드컵 예선전이라고 할수 있다. FIBA는 종전 세계선수권이던 명칭을 월드컵으로 변경하고 홈 앤드 어웨이 예선전의 도입으로 A매치 흥행을 노리고 있다. 물론 원조인 축구의 월드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농구 월드컵 역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농구 최대의 국제대회다. 종합 대회인 올림픽을 제외하면 농구 단일 종목으로는 현재 가장 권위가 높은 대회라고 할수 있다.

이번 예선전은 내년에 중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출전권을 가리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이다. 한국은 유재학 감독이 이끌었던 2014년 스페인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본선 출전을 노리고 있다. 총 32개국이  출전하는 농구월드컵에서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은 7장이다.

1차예선에서 뉴질랜드, 중국, 홍콩과 함께 A조에 편성된 한국은 홈과 원정을 오가며 총 6경기를 치르고 상위 3개국까지 2라운드에 진출한다. 1차예선의 성적은 2라운드까지 반영된다. 2라운드에서는 6개국씩 2개 조로 나뉘어 다시 조별리그를 통해 최종 6개국의 진출팀을 정한다. 각조 4위팀은 플레이오프를 벌여 마지막 월드컵 티켓을 결정하게 된다.

아시아 전통의 강호인 중국과 이란 외에도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강호들이 이번에 아시아로 편입되며 월드컵을 향한 관문은 더욱 치열해졌다. 예선전 기능이 분리되며 비중이 낮아진 아시아컵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국가들도 이번 농구월드컵 예선전에서는 말 그대로 최정예 멤버로 임할 가능성이 높아져 한국은 더욱 어려운 도전을 앞두게 됐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여전히 지난 아시아컵 멤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오세근, 이정현, 박찬희, 김종규, 이승현 등 기존 멤버에 베테랑 수비수 양희종이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선수들이 안정적인 신구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다.

허재 감독의 두 아들인 허웅과 허훈이 나란히 대표팀에 뽑힌 것도 눈길을 끈다. 허웅은 지난 아시아컵에서 식스맨으로 맹활약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 1순위인 허훈은 아시아컵에서는 탈락했지만 4개월만에 대표팀에 복귀하게 되면서 국제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사다.

토종 빅맨진이 얼마나 골밑 사수해줄지가 관건

아쉬운 것은 주전 가드 김선형이 발목 부상으로 결장한다는 점. 리딩은 박찬희와 김시래 등이 대체할 수 있지만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으로 앞선에서 '돌격대장' 역할을 해주던 김선형의 공격력을 대체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 역시 부상으로 인하여 대표팀에 뒤늦게 합류한 김종규의 컨디션 역시 아직은 불확실히다.

현재 한국 귀화를 추진중으로 농구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아직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이번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라틀리프는 현재 법무부 심사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다. 라틀리프가 가세할 경우, 리바운드와 득점력 면에서 대표팀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지난 아시아컵에서 장신팀들을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았던 오세근, 이승현, 김종규, 이종현 등의 토종 빅맨진이 이번에도 골밑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사수해줄지가 관건이다.

뉴질랜드와 중국 모두 아직  최종 명단이 확정되지 않아 전력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뉴질랜드는 이미 한국은 아시아컵에서 두 번이나 맞붙은 경험이 있어 낯설지가 않다. 한국은 예선과 3·4위전에 걸쳐 뉴질랜드에 모두 승리하며 자신감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아시아컵 당시의 선수구성이 베스트전력이 아니었던데다 기본적으로 체격조건이나 기량 면에서 한국보다는 앞선다고 평가받는만큼 이번에는 원정에서 어려운 승부가 예상된다.

아시아의 영원한 숙적 중국은 한국농구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한국은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번번이 중국의 벽에 막혀 아시아 정상탈환과 세계무대 진출이 좌절되곤했다. 허재 감독과도 깊은 악연이 있다. 허 감독은 현역 시절 중국 때문에 단 한번도 아시안게임이나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해 만년 2인자에 머물렀다. 현역시절 중국대표팀이 한국의 주포인 허재를 막기 위하여 악질적인 파울도 마다하지 않아서 여러 번 신경전이 벌어졌을 정도다.

심지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에도 중국과의 악연은 계속됐다. 허 감독은 2011년 중국 우한 아시아선수권 당시 중국의 노골적인 홈텃세와 편파판정에 항의하며 대회 내내 중국 언론과 신경전을 벌였다. 준결승에서 중국에 패한 후 연 기자회견에선 중국 기자들의 지속적인 도발에 결국 폭발해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짜증나게"라며 욕설이 섞인 멘트를 날리고 회견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당시 중국기자들은 떠나는 허 감독의 등에 대고 박수를 치며 '고백홈'(집에나 가라)이라고 외치는 등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허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고 중국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무려 6년만이다. 한때 아시아의 절대강자를 호령했던 중국이지만 최근 몇 년간은 경쟁팀들의 약진과 자국의 세대교체 후유증으로 인하여 경기력이 다소 들쭉날쭉한 상황이다. 허 감독이 악연의 중국농구(+기자들)을 다시 만나 실력으로 설욕할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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