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7년. 32살. 출근길 지하철을 탔다. 이번 정류장은 신촌. 신촌역입니다. 역이름을 듣는 순간 머리가 찌릿하다.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이다. 좌절하며 휴대폰을 꺼낸다. 주소록 앱을 누르고 '팀장'을 검색한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늦을 것 같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벼락처럼 소리친다.

"오늘 사람 없는거 알잖아! 빨리 뛰어와!"

고개를 푹 숙이고 '네 알겠습니다' 대답 후 전화를 끊었다. 밀려오는 자괴감.

때는 1998년.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아빠와 버스 타고 외할머니네 놀러간 적이 있다. 그 기억을 살려 혼자 할머니네 가기로 다짐했다.
 때는 1998년.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아빠와 버스 타고 외할머니네 놀러간 적이 있다. 그 기억을 살려 혼자 할머니네 가기로 다짐했다.
ⓒ pexel

관련사진보기


때는 1998년.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아빠와 버스 타고 외할머니네 놀러간 적이 있다. 그 기억을 살려 혼자 할머니네 가기로 다짐했다. 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집 현관문으로 나간다. 아파트 후문으로 나간다. 바로 왼쪽으로 비탈길이 나온다. 10분 정도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횡단 후 건너편에 병원이 보이면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것이다.

주머니에는 동전 400원이 있다. 실수로 300원을 내면 안 되기 때문에 왼쪽 주머니에 200원, 오른쪽 주머니에 200원을 넣는다. 버스를 기다리며 3~4m 길이의 표지판을 쳐다본다. 꼭대기에 버스번호와 정류장이 쓰여있기에 바로 밑에서는 글씨를 볼 수 없다. 멀리 떨어져서 눈을 찌푸리고 본다. '70번 인공폭포'라고 쓰여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표지판보다는 내 기억을 신뢰했다.
  
70번 버스가 도착했다. 계단이 높아 무릎을 가슴까지 올려야 했다. 3칸을 올라가서 200원을 내고 고개를 드니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적다. 천장 바로 밑에 있는 손잡이는 손이 닿지 않는다. 이럴 땐 어른이 되고 싶다. 나보다 작은 의자 손잡이를 잡는다. 방심했다간 정류장을 지나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창문 밖을 뚫어져라 본다.

"이번 정류장은 도시가스. 도시가스입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내려야 한다. 각오를 다지며 손잡이를 움켜잡는다. 예전 친구들과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어른들이 비켜주지 않아 못 내렸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내릴 경로가 확보되었는지 뒤를 힐끔 쳐다본다.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손잡이에서 손을 뗀다.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아저씨 허벅지에 부딪혔다. 내려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사과도 못하고 계단을 밟고 떨어지듯 내렸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버스에서 내리면 익숙한 장소다. 한 달에 3~4번은 이 장소에 왔기 때문이다.

장소는 익숙했지만 혼자 있는 것은 낯설었다. 엄마에게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자의적으로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에 마음이 들뜬다. 초콜릿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돈이 없다. 할머니가 용돈을 준다는 기대를 하고 빠르게 걸었다.

"안녕하세요"

덤덤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할머니가 방안에서 나오신다.  실눈이 동그랗게 됐다.

"엉? 영석이 네가 웬일이야?"

높은 톤에 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전화도 없이 온 거라 놀라신 모양이다. 제 의지로 버스를 타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근영이 형이랑 게임을 하러 왔어요."

근영이는 외할머니와 같이 사는 사촌이다. 한 살 많지만 내가 빠른년생이라 학년은 같다. 형과 근영이 사이를 오가며 호칭을 부른다.

"근영이 지금 없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대사 없이 할머니는 하던 빨래를 계속 하셨다. 난 뻘쭘하게 서있다가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가려고 했다.

"앉아. 떡국해놨어."

안방바닥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티브이를 봤다.

5분 있다가 밥상에 떡국과 김치를 가지고 방안으로 가지고 오셨다. 할머니 떡국은 탱탱한 떡 식감이 아닌 무른 식감이다. 김가루와 달걀 채가 국물을 타고 입안에 꽉차면 충만해진다.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한그릇을 다 비워내지는 못했다. 티브이를 10분 정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저 집에 갈래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들어가. 그리고 이거."

빨래하시다가 동전지갑에서 5000원을 꺼내시더니 내게 내밀었다. '아니에요 할머니' 겸손모드 한번 발휘하니, 할머니께서 '어여 받어'하신다. 난 정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밖으로 나와서 다시 버스로 향했다. 뜨거운 태양이 나를 내리쬔다. 많이 걸었는지 녹초가 되었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쌍쌍바(직사각형 모양에 반으로 갈라서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를 200원 내고 사먹는다.

왔던 정류장에 횡단보도에서 기다리고 있다. 반대편으로 가야 집으로 가는 방향의 정류장이 있다.

70번 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6~7명 정도 듬성듬성 앉아있다. 중간에 위치한 의자에 앉는다.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을 본다. 나 혼자서 오다니. 나중에는 조금 더 멀리, 여의도로 가보자고 다짐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바깥을 보면서 의식이 흐릿해졌다.

"야. 종점이다.. 내려라."

중년 남자 목소리에 잠이 깬다. 버스기사와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멍한 상태로 기사를 쳐다본다. "빨리 내려라. 종점이다." 흰장갑을 끼고 말랐지만 송곳같이 위험해 보이는 느낌. 까탈스러울 것 같은 목소리,  어두운 버스 안, 언뜻 창문으로 보이는 낯선 환경.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등에 식은땀이 생긴다. 공포감에 휩싸여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많은 버스가 줄지어 주차되어있다. 기사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큰소리로 대화하고 있다. 그 광경이 무서워 시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장이 보인다. 양복 입고 바삐 걸어가는 아저씨, 엄마와 손잡고 걸어가는 여자 아이. 떨이라고 소리치며 생선을 팔고 있는 아저씨. 난 급박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충실했다. 5분 정도 걷다 보니 풍경들이 익숙해졌다. 집에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자주 보이던 공중전화가 보이지 않는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전화가 있지 않을까 하고 돌아서는 순간, 매우 작은 노란색 공중전화를 발견했다. 노란색이었는데 나이를 많이 먹어서 누런색으로 변해있다. 고장나서 작동이 안 될 것 같다.

두려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든다. 옅은 초록색상 화면에 0원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안심하며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꺼낸다. 중간에 끊길지도 모르니 200원을 미리 삽입한다. 다이얼을 입력한다. 익숙한 번호임에도 틀릴까봐 온 심혈을 기울어서 하나하나 누른다. 신호음이 들린다. 끊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미안하다는 마음이 신호음과 동시에 나타났다.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호음 3번을 들으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익숙한 남자 목소리. 엄마가 받을 줄 알았는데. 아빠다. 익숙한 목소리에 긴장했던 신경들이 녹으며 눈치채지 못했던 외로움을 발견했다. 눈물을 들킬까봐 왼손으로 얼굴을 눌렀다.

"아빠..."

도와달라는 음성이 아닌 미안하다는 음성에 목소리가 나왔다. 아빠는 4초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무슨일 있나라는 걱정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아빠 미안한데 나 깜빡 잠이 들어서 종점까지 왔어. 와줄 수 있어?"

아빠는 느릿한 말투로 대답했다.

"잠들었구나. 아빠가 지금 데리러 갈게."

시장에서 자리를 옮겨 버스들이 줄지어있는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오후 6시쯤 되었을 거다. 날씨가 어두워지며 저녁노을이 들어선다. 정류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쳐다보고 있다. 70번 버스 뒷문으로 내리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중년 남성만 봐도 아빠라고 착각했는지 온몸이 찌릿하며 긴장이 된다.

20분 정도 지나 3번째 버스에서 아빠가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를 찾았다. 오른손등으로 눈을 가렸다. 창피하고 미안하다. 왼손등과 오른손등을 번갈아가며 눈을 비빈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계속 비볐다. 아빠는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며 내 옆으로 온다. 연민과 걱정이 섞인 눈빛으로 말한다.

"잠들었나 보구나."

한결같이 느린 말투. 고개를 숙였다. 눈물 한 방울이 아스팔트 바닥에 비가 올 때처럼 작은 동그라미가 생겼다. 동그라미가 4~5번 생기고 나서야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버스가 도착했다. 아빠와 함께 올라간다. 혼자 있을 때 공포가 사라졌다. 뒤에 2인석에 앉았다. 우린 아무말 없이 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종점 오면 똑같은 버스를 타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평소에 재미없고 지겨운 아빠의 존재가 곰처럼 든든한 존재로 바뀌던 순간이다.

난 혼자 산다. 실수로 종점에 갔다는 이유로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다.
 난 혼자 산다. 실수로 종점에 갔다는 이유로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다.
ⓒ pexel

관련사진보기


2017년. 지각해서 팀장이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다시는 실수하지 말자는 다짐 대신, 곧 있으면 여기도 때려치워야겠다며 내 분노를 다스린다.

난 혼자 산다. 실수로 종점에 갔다는 이유로 나를 구해줄 사람은 없다. 장염이나 뼈가 부러졌을 때는 119를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카드빚, 월세, 감기, 외로움 모두 나 혼자 처리해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종점에 도착했을 때 만큼이나 힘들다면 힘들지만 쉽사리 도와달라고 할 수 없다.

혼자서 해결 가능하다면 괜찮지만, 혼자 해결하기 더 어려운 상황들이 많고, 도움을 받아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더 많다. 막상 도움을 청하려고 하면 죄책감에 입이 다물어진다. 말해도 나의 곤란한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불신도 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는 감기와 외로움이 안 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내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을 것이라는 상처를 받은 나라서, 차마 사람들 앞에서는 못 떠들겠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타자로 열심히 떠들어 본다. 나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고, 도와달라고 말이다.


태그:#카드빚, #월세, #회사, #직장, #지하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