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한국과 일본의 경기. 선동열 감독이 10회말 2사 2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고 패한 뒤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다.

16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한국과 일본의 경기. 선동열 감독이 10회말 2사 2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고 패한 뒤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다. ⓒ 연합뉴스


젊은 태극전사들은 충분히 잘싸웠다. 꼭 승리만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아쉬움은 피할수 없었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16일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예선 1차전에서 일본에 7-8로 석패했다. 한국은 9회까지 4-3으로 앞서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으나 마지막 이닝을 버티지못하고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을 허용했다.

승부치기로 진행된 연장에서는 먼저 3점을 뽑았으나 10회말 다시 4점을 내주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지난 프리미어 12 준결승에서의 대역전승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이었다.

다 잡은 승리를 놓쳤지만 대표팀을 둘러싼 분위기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가 예상됐던 일본을 상대로 국제 경험이 많지않은 젊은 태극전사들이 기대이상의 선전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한국은 선발싸움에서 장현식이 호투했고, 김하성을 앞세운 타선도 집중력을 보이며 종반까지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선동열 감독은 당초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성적도 성적이지만 젊은 선수들의 국제경험을 쌓게 해주는데 의미를 뒀다. 일본전 패배 이후 가장 많이 거론된 단어도 '경험'과 '가능성'이었다. 선감독은 선수들에게 "패배는 아쉽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며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이 선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히 잡을 수 있었던 경기를 놓친 것은 의미가 좀 다르다. 일본같은 강팀을 상대로 원정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며, 기왕이면 승리의 경험이 주는 자신감과 상승세가 대표팀의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선동열호는 당초 선발진의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풍부한 불펜자원으로 인한 계투작전에 강점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선발 장현식(5이닝 4안타 2볼넷 1실점 무자책)이 기대 이상으로 호투하며 일본의 에이스 야부타 카즈키(3.1이닝 3안타 1홈런 3볼넷 3실점)에 판정승을 거둔 반면 오히려 믿었던 불펜에서 탈이 났다. 선동열 감독이 마무리로 믿었던 9회 김윤동이 무너지면서 모든 계산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지만 8회까지 구위가 좋았던 장필준 카드를 좀더 끌고가는게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김윤동이 대표팀 연습경기에서 호투했지만 정작 소속팀 기아에서도 압박감이 심한 상황에서 등판하면 종종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곤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1점에 승부가 좌우되는 상황에서 김윤동이 눈에 띄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때 선동열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이 한발 늦었다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선동열 감독은 '국제대회일수록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에서 냉정해져야한다'는 지론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일본전만 놓고보면 선 감독의 경기 후반 투수교체 타이밍은 그리 적절하지 못했다. 김윤동이 만루위기에 몰리고 나서야 함덕주를 올렸지만 밀어내기 볼넷으로 뼈아픈 동점을 허용했고 연장에서는 함덕주가 동점 3점홈런, 이민호가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물론 경기는 어디까지나 선수가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치밀한 투수운용과 '지키는 야구'를 내세웠던 선동열호에서 기대했던 모습은 분명히 아니었다. 2014년 기아 감독을 끝으로 대표팀을 제외하면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된 선동열 감독의 경기감각과 판단력이 다소 무뎌진게 아닌가하는 걱정도 드는 대목이다.

와일드카드 선수들을 끝내 뽑지 않은 것도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1루수와 마무리 투수 포지션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일본전에서도 이 약점이 발목을 잡았다. 실점 상황에서 내야진의 미숙한 타구처리와 불펜의 난조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두드러졌다.

선동열 감독은 와일드카드를 포기한 선택을 두고 향후 2018 자카르 아시안게임과 2019 프리미어12, 도쿄올림픽 등을 감안하여 젊은 선수들에게 좀 더 국제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기위한 명분을 내세웠다. 나름 충분히 일리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대만은 물론이고 한국보다 전력이 앞서는 일본도 와일드카드를 활용한 것을 감안할 때 굳이 핸디캡을 자초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이번 대회에 승선한 멤버들이 2~3년뒤에도 모두 함께 간다는 보장도 없는만큼 적어도 취약 포지션에서는 와일드카드를 활용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었다.

국제대회, 특히 한일전이라는 압박감이 큰 경기에서 선수단의 중심을 잡아줄 경험 많은 리더의 필요성도 존재했다. 프로구단의 사례만 보더라도 LG 트윈스처럼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몰아준다고 리빌딩이나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승리의 경험이든 패배의 경험이든 모두 나름의 배울 만한 값어치가 있다. 하지만 경험이 단순히 패배나 실수를 미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대표팀은 경험하는 곳이기 이전에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은 어떤 의미에서 종이 한 장 차이이기도 하다. 일본전 패배의 쓰라림이 값진 자양분이 될지, 아니면 잘못 끼운 첫 단추가 될지는 17일 열리는 대만전 이후의 행보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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