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의 손흥민이 슛하고 있다.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의 손흥민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월드컵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은 이번에도 도전자의 위치에서 미약하게 시작해야할 처지다. 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도 '해보나 마나'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6월 14일-7월 15일)에 나설 본선 32개국이 마침내 확정됐다. 페루가 16일 월드컵 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 2차전 홈경기에서 뉴질랜드를 2-0으로 누르고 1승1무로 러시아로 가는 마지막 티켓의 주인공이 됐다. 페루는 1982년 이후 무려 36년만의 본선진출이다.

월드컵에 나설 32개국이 모두 가려짐에 따라 이제 전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은 12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리는 본선 조추첨 결과에 쏠리고 있다. 이번 월드컵부터 조 추첨을 위한 포트 배정이 기존의 대륙별이 아닌 FIFA 랭킹 순으로 바뀌며서 10월 기준으로 상위 7개국(독일, 브라질,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벨기에, 폴란드, 프랑스)과 개최국 러시아가 톱시드인 1번 포트에 들어가게 됐다.

62위인 한국은 최하위 그룹인 4번포트가 확정됐다. 각 포트에서 한 팀씩 4개팀이 총 8개조를 편성한다. 참가국이 가장 많은 유럽만 최대 2팀까지 한조에 편성될 수 있고 다른 대륙은 모두 1조에 1개팀씩만 배정이 가능하다.

월드컵 조추첨이 임박해오면서 흔히 나오는 화제가 '죽음의 조' 혹은 '최상의 조'에 대한 여러 가지 가상 시나리오들이다. 다크호스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강팀들도 예외는 아니다. 월드컵은 단기전의 특성상 워낙 변수가 많은데다 우승후보들도 조별리그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어 고전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조별리그에서 어떤 팀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월드컵을 대비하는 전체적인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국내 언론과 팬들도 벌써부터 한국의 조편성에 대하여 저마다의 다양한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월드컵 본선서 '1승 제물' 취급 받고 있는 한국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그룹에서는 독일, 브라질, 프랑스, 2그룹에서는 스페인 정도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된다. 다크호스들이 모인 3그룹에서는 덴마크와 코스타리카가 유력한 복병으로 거론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독일(브라질)-스페인(잉글랜드)-코스타리카(덴마크)와 한 조에 편성되는 것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으며, 러시아(폴란드)-페루(스위스)-아이슬란드(이집트, 세네갈) 등과 한조가 되면 그나마 해볼 만한 편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극히 냉소적인 반응도 존재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지금 월드컵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는 씁쓸한 현실론이다. 피파랭킹만 놓고보면 최하위그룹인 한국은 어차피 어느 조에 들어가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승후보이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전력을 갖춘 다크호스 정도는 되어야 상대팀의 수준을 감별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한국은 그야말로 매경기 매순간을 전력투구해야 겨우 '승점자판기' 신세를 피할까말까다. 어쩌면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될 모든 팀이 같은 조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을 '1승 제물' 취급을 받고 있다.

한국축구는 최근 몇 년간 계속된 부진과 피파랭킹 추락으로 인하여 팬들의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상황이다.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부했던 한국이지만 지난 최종예선에서의 부진과 축구협회의 난맥상을 통하여 이제는 아시아 무대에서도 더 이상 강자의 지위를 낙관할 수 없게 됐다. 냉정히 말하면 이번 월드컵 본선행도 100% 자력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었다. 다른 이도 아닌 자국 팬들 사이에서 "이럴바엔 차라리 월드컵 본선티켓을 네덜란드나 이탈리아같은 팀들에게 양보해라"는 조롱이 나올 정도였다.

어차피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의 운명이 조편성의 유·불리에 의하여 좌우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은 역대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항상 최약체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개최국 자격으로 톱시드를 받았던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한국은 당시 우승후보로 꼽히던 강호 포르투갈을 비롯하여 폴란드, 미국과 한 조에 편성되며 개최국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포르투갈과 폴란드를 완파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토너먼트에서는 4강신화를 완성했다.

반면 비교적 좋은 조편성을 받았다고 '설레발'을 떨었던 2006 독일월드컵(프랑스, 스위스, 토고)이나 2014 브라질월드컵(벨기에, 러시아, 알제리)에서는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상대국의 최근 전력이나 준비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막연한 '이름값'으로만 평가했던 안이한 대처가 초래한 결과였다.

한국도 이제 어느덧 월드컵의 단골손님이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대기록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하지만 한없이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에 비하여 아직 한국축구의 세계적인 위상이나 질적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회성 이벤트로 16강이나 1승같은 막연한 구호에 집착하기보다 이제는 '월드컵 본선에 어울리는 팀'으로서의 품격을 고민해야할 시기가 됐다.

요행수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건, 의미 없다

이탈리아나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보듯이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한국축구에게는 큰 축복이다. 한국 축구산업과 문화 전반에 있어서 월드컵 본선행 유무가 미치는 영향력은 해외 축구강국들보다 훨씬 크기에 일단 '닥치고 본선행' 자체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본선에서의 목표와 방향성은 또 달라져야한다. 기왕 4년이나 기다려 월드컵 본선에 나왔다면 최고 수준의 축구를 경험하며 세계축구의 흐름을 파악하고 한국축구의 현재 수준과 나아가야할 지향점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한다. 한국은 당장 월드컵 우승후보도 아니고 세계무대에서 여전히 성장해나가야하는 팀이다.

한국축구는 월드컵같은 큰 무대가 아닌 이상, 독일이나 브라질같은 세계적인 강호들과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 월드컵 본선에 나서는 팀치고 한국보다 약팀은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사 운이 따라준다고 해도 지난 최종예선 때처럼 이란이나 우즈벡같은 팀들을 상대로 지지부진하다가 요행수로 16강에 진출하는 것같은 결과는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없다. 그런 행운이나 바라는 것 자체가 월드컵 본선에 나서는 팀의 자세가 아니다.

한국축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어설픈 '희망고문'이 아니라 당당한 '진검승부'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어느 조에 속하든 어차피 한국에겐 모두 죽음의 조나 마찬가지다. 기왕 피할 수 없는 도전이라면 오히려 강팀들과 만나는 게 낫다. 설사 3패를 하고 조별리그에서 광탈하는 한이 있더라도 강팀들과 부딪치며 진정한 한계를 절감하는 것이 한국축구의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1994 미국월드컵(독일, 스페인, 볼리비아)에서의 선전에서 보듯이 강팀들이 즐비한 조에 편성된다고 마냥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우리 선수들이 네이마르(브라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토마스 뮐러(독일), 앙투안 그리즈만(프랑스)같은 선수들과 한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수 있는 기회는 쉽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만일 다가오는 조추첨에서 이런 팀들과 한조에 편성될수만 있다면 불운이나 절망이 아니라 축복이자 더 큰 기회로 여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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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한국축구,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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