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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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는 해피엔딩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키스가 엔딩이어야만 했던 이유를 이제 알았다. 진짜는 그 후에 시작되니까. 진짜는 아플 수도 어두울 수도 있으니까." -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중에서.

tvN 월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아래 <이번 생>)에서 윤지호(정소민 분)는 이렇게 내레이션 했다. 이에 걸맞게 <이번 생>은 키스로 시작된 '진짜 사랑'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가고 있다.

'모태솔로' 지호, 육체적 욕망에 눈뜨다

일반적인 멜로 드라마에서 남녀의 연애는 15세 이상 관람가 수준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늘 예상밖의 서사를 보여주는 <이번 생>은 이번에도 달랐다. '모태솔로'(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편집자 주) 윤지호는 '앞으로도 키스 따위는 해볼 수 없을 것 같다'는 특이한 이유로 다짜고짜 버스 정류장에서 남세희(이민기 분)의 입술에 박치기를 날린다. 이 어처구니 없는 도발을 통해 드라마는 두 사람 관계의 서막을 열었다.

이어 두 번째 키스신에서 남세희는 "그때 지호씨가 버스 정류장에서 한 건 키스가 아니라 뽀뽀다. 뽀뽀라고도 할 수 없다"며 윤지호에게 '진짜' 키스 한다. 드라마는 이 장면을 통해 일방적인 짝사랑에서 쌍방으로 관계가 전환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이번 생>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른의 연애로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키스로 첫 연애에 입문하게 된 지호는, 이후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스킨십의 욕망에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도 모르게 "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고는 '쓰레기'라며 머리를 흔든다. 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키스의 후유증에 정신을 못 차린다. 심지어 귀걸이를 끼워주는 낯선 여자의 손길에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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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는 여중, 여고를 졸업해 작가가 되기 위해 정진하느라 연애에 한눈 팔 사이가 없었던 모태솔로다. 그렇기에 이 흥미로운 설정은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자유 연애가 당연한 21세기지만 윤지호 같은 모태솔로는 '드라마'로 연애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윤지호의 아버지 윤종수(김병옥 분)가 고집 세고 가부장적인 인물이니 만큼 윤지호는 더욱 연애 측면에서는 억압된 삶을 살았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니 윤지호가 키스 이후 용솟음치는 본능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쓰레기', '변태' 취급하는 장면은 고개를 끄덕일 법 하다.

<이번 생>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다. 지호는 고양이를 찾아 세희의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시집에서 지난 사랑의 아픈 흔적을 발견한다. 많은 드라마에서는 이를 오해와 질투의 복선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모태솔로' 지호는 오히려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세희의 아픔을 기꺼이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녀에게 찾아온 욕망 역시 '청소년 관람불가' 장면으로 표현하는 대신 갈망하지만 주저하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풀어낸다. "키스를 더 해도 될까요?"라고 묻는 세희의 배려 역시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드라마는 두 사람의 행동을 자연스런 연애의 과정으로 그려낸다.

2017년 여성들, 그 욕망의 향배는?

드라마는 '모태솔로'를 탈출한 지호와 함께 우수지(이솜 분) 양호랑(김가은 분), 세 여성의 욕망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그간 세 친구 중 가장 자유분방했던 수지는,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욕구를 조금씩 드러낸다. 맞춤 브래지어 사업에 어느 때보다 흥미를 보이면서도 어렵게 들어간 연봉 높고 안정적인 직장에 연연한다. 또 비혼주의를 추구하는 모습 역시 우리 시대 젊은 여성의 또 다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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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 역시 다르지 않다. '취집'(취업 대신 결혼을 택하는 것-편집자주)과 현모양처를 꿈꾸는 호랑의 욕망은 '전근대적이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호랑은 욕망의 방점을 자신이 아닌 남자친구 심원석(김민석 분)의 자수성가에 찍고 있다. 그러나 2017년 한국 사회에서 그녀의 욕구는 분명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각자의 욕망을 가진 세 여성은 2017년 구체적인 현실에 몸 담으며 각자 다른 상황을 빚어가고 있다. 직장도 잃고, 몸 뉘일 곳 없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 속을 헤매던 지호는 뜻밖에 집세를 깎아주는 집주인 세희를 만났다. 지호는 방을 얻었을뿐만 아니라 이제 마음의 공간까지 공유하는 데 이르렀다. 이는 남세희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썩 괜찮은 경제적 지위의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앞서 지호를 위로하던 친구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수지는 모처럼 눈을 반짝일 만한 일을 찾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녀에게 꿈을 향해 달려나가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모텔을 전전하는 계약 연애는 그녀를 비혼주의자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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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려운 건 호랑이다. 호랑은 원석과 7년의 연애 끝에 이제 막 서른 줄에 들어섰다. 원석이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돼 현모양처의 꿈을 이뤄줄 거라 기대했는데 아직도 옥탑방 신세다. 애플리케이션 개발로 일확천금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원석은 호랑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새 직장을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정을 꾸리기엔 미흡한 수준이다. 물론 원석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사랑만으로 불가능한 법. 호랑의 '현모양처'를 향한 꿈 역시 벽에 부딪히고 만다. 기성 세대들은 가진 것 없이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정을 꾸리며 희망을 꿈꿀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17년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꿈은 이렇게 좌절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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