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한국의 구자철이 자신이 얻어낸 패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한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호가 약속했던 '11월의 반전'에 성공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4일 세르바아와의 평가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앞서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했던 신태용호는 11월 A매치 2연전을 1승 1무라는 호성적으로 마감했다. 월드컵 본선진출국이자 한국보다 피파랭킹이 높은 유럽과 남미의 강호를 상대로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고무적이다.
신태용호는 지난 6월 출범이후 네 차례의 A매치에서 2무 2패에 그치며 험난한 초반 행보를 보였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하고도 실망스러운 졸전으로 혹평을 받았고 10월 유럽원정에서는 러시아-모로코에 잇달아 충격적인 완패를 당하며 위기론이 깊어졌다. 축구협회 내부 비리와 히딩크 복귀설 파동까지 겹치며 신태용호를 바라보는 여론은 상당히 험악했다.
신태용 감독은 11월 홈 2연전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변화를 약속했다. 사실상 이번에도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면 신태용 감독의 거취는 월드컵 본선까지 가기도 전에 벼랑 끝에 놓일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콜롬비아와 세르비아의 전력을 감안할 때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신태용호는 홈팬들 앞에서 훌륭한 경기력으로 분위기 반전을 일궈내며 내년 월드컵 본선을 향한 첫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이번 2연전의 최대 성과는 역시 '손흥민 활용법'과 '4-4-2 전술의 재발견'을 꼽을 수 있다. 손흥민은 그간 한국축구의 간판 골잡이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유독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진다는 우려를 피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소속팀 토트넘의 전술에서 힌트를 얻어 손흥민의 포지션을 측면에서 중앙으로 옮겨 수비부담을 줄이고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카드를 선택했다. 활동량과 연계능력이 좋은 공격수를 손흥민의 파트너로 붙여서 상대의 집중수비를 최대한 분산시키는 투톱 전술을 구사했다.
콜롬비아전에 이어 펄펄 난 손흥민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손흥민은 2연전에서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콜롬비아전에서는 멀티골을 작렬하며 지난해 이후 1년 넘게 이어오던 A매치 필드골 무득점의 악몽을 깨끗하게 떨쳐냈다. 세르비아전에서는 비록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총 7회의 슈팅을 기록하며 결정적인 골찬스를 수차례 만들어낼만큼 상대 수비수들을 곤혹스럽케했다. 손흥민은 역시 '골문에서 가까워질수록 가장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킨 장면이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강팀을 상대로는 무조건 수비적인 전술을 펼쳐야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투톱 전술을 쓰게되면 미드필드의 숫자가 줄어서 공 점유권을 유지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압박과 역습'에서 해법을 찾았다. 최근 몇 년간 전임감독들이 고수하던 무의미한 점유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공간을 활용하는데 무게를 뒀다.
신 감독이 2연전에서 중용한 이근호-권창훈-이재성-고요한 등은 모두 풍부한 활동량과 체력-수비가담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포지션에 구애받지않고 자유롭게 중앙과 측면을 넘나들며 무한 스위칭에 가까운 움직임을 펼쳤고, 최전방에서도 적극적으로 압박에 가담하며 수비수들을 유기적으로 지원했다.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가 높고 이타적인 성향이 선수들이 대거 파트너로 배치되면서, 한국 공격의 중추라고 할수 있는 플레이메이커 기성용과 공격수 손흥민이 좀더 편안하게 공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자연히 경기력도 살아났다.
투톱을 쓰면서도 안정적인 공수밸런스가 가능한 4-4-2 전술은 신태용 감독의 선수 구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신 감독은 세르비아전에서 선수 구성은 다소 바뀌었지만 전술은 같은 포메이션을 들고 나오며 숙련도를 확인했다. 앞으로도 4-4-2가 신태용호의 핵심 전술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번에도 변화의 중심에 선 것은 역시 K리거들이었다. 해외파들로만 치러진 유럽 원정에서는 경기력과 동기부여가 떨어진 선수들이 많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국내파들이 복귀하여 최정예 멤버가 갖춰진 이번 2연전에서는 좌우 풀백과 중앙 미드필더 등 취약 포지션이 보강되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았고 건강한 내부 경쟁체제가 살아났다. 특히 이근호와 고요한은 이번 2연전의 최대 수확이라고 할만큼 '견실한 K리거가 오히려 부진한 해외파보다 낫다'는 진리를 확인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요소도 곳곳에 존재했다. 일단 신태용호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거론되는 수비는 지난 유럽원정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안정적이지는 못했다. 콜롬비아와 세르비아전에서 연이어 실점을 허용하며 이번에도 '클린시트'에 실패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집중력 부족과 문전에서의 위험한 패스 실수같은 최근 대표팀의 실점 패턴을 반복한 장면은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중앙수비조합은 아직도 확실한 베스트 라인업을 예측하기 어렵다. 신 감독은 지난 유럽원정에서 기용했던 수비수 중 김기희와 김주영이 탈락했지만 김영권-장현수-권경원 등을 재신임했다. 콜롬비아전의 장현수-권경원 조합은 꽤 성공적이었으나, 세르비아전의 김영권-장현수 조합은 손발이 맞지 않으며 불안한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했다. 수비수들이 최근 집중적인 여론의 비난에 위축된듯한 플레이를 보인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월드컵 본선이 반년밖에 남지않은 상황에서 이제는 최상의 조합을 선택하고 조직력을 다듬어야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포지션 파괴 부작용은 생각해봐야
▲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한국의 구자철이 자신이 얻어낸 패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나친 '포지션 파괴'의 부작용 역시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 유럽원정 당시 실패로 돌아간 이청용-김영권의 윙백 투입이나 장현수의 포어 리베로 실험에 이어, 이번 2연전에서도 선수들을 새로운 포지션에 기용하는 파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손흥민과 이근호의 투톱 공격수 기용, 풀백 고요한의 중앙 이동, 권창훈-이재성의 측면 배치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들은 소속팀에서도 종종 이 포지션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기에 무리한 기용은 아니었고 결과도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세르비아전에서 구자철까지 공격수로 기용한 것은 과유불급이었다. 구자철이 미드필더로서 상당한 득점력을 갖춘 선수이기는 하지만 공격수로 뛴 경험은 거의 없으며 소속팀에서는 최근 아예 3선에서 뛰고있는 선수다. 구자철은 비록 PK로 득점을 올리기는 했지만 경기력에서는 공격수 포지션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였고 손흥민과의 시너지효과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2연전 내내 정통 스트라이커와는 거리가 먼 선수들을 기용한 것은 물론 신태용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적 색깔과 무관하지 않지만, '만약 손흥민이 막혔을 때'를 가정한다면, 한 번쯤 타깃맨이나 또다른 유형의 공격수를 실험해보는 것은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과거 조광래 감독 시절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본이 바탕이 된 이후에야 변칙도 가능하지, 아예 변칙 자체가 지나치게 주가 되어버리면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할 위험도 높아진다.
11월 2연전을 끝으로 올해 최정예 멤버가 소집된 A매치 일정은 사실상 끝났다. 12월 열리는 동아시안컵과 내년 1월 해외 전지훈련은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치러진다. 공격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만큼 이제 초점은 수비 조직력 강화와 함께, 유럽파들의 부상이나 부진을 대비한 '플랜 B'의 완성에 맞춰진다.
신 감독은 이번 2연전을 통하여 어느 정도 자신의 지도력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월드컵을 향한 여정이 안정궤도에 오른 것은 아니다. 홈에서 열린 평가전과 월드컵 본선은 수준이 다르다. 자신감을 찾은 것은 좋지만 기세등등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신태용호가 이번에 살려낸 작은 '불씨'가 내년 월드컵을 향한 희망의 불꽃이 될지, 아니면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재앙의 화재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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