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먼저 울고 싶었을 잔루이지 부폰은 입술을 다문 채 실의에 빠진 동료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축구 선수로서 존경받을 만한 품격을 잔루이지 부폰이 그의 마지막 A매치에서 보여준 것이다. 월드컵 단골 손님 이탈리아가 60년 만에 아주리의 이름을 러시아까지 밀어 올리지 못했지만 부폰의 품격은 그라운드에 짙게 드리워졌다.

잠피에로 벤투라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이탈리아 남자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14일 오전 4시 45분 밀라노에 있는 주세페 메아짜에서 벌어진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스웨덴과 0-0으로 비겼지만 1차전 0-1 패배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끝내 본선 진출권을 따내지 못했다. 지난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본선 탈락 이후 60년 만에 벌어진 사건이다.

끝내 열지 못한 스웨덴의 골문

사흘 전 스웨덴 솔나에서 나온 야콥 요한손의 결승골(스웨덴 1-0 이탈리아,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1차전)이 이렇게 높은 벽으로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 전후반 추가 시간까지 포함하면 약 98분 동안 여섯 개의 유효 슛이 스웨덴 골문으로 날아들었지만 연장전이나 역전승의 기적은 이탈리아에게 이어지지 않았다.

전반전 40분, 이탈리아 골잡이 임모빌레의 결정적인 오른발 슛이 스웨덴 골문을 향했다. 오프 사이드 함정을 기막히게 허물고 빠져 들어갔기 때문에 누가 봐도 러시아 월드컵으로 가는 외나무다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임모빌레의 슛은 각도를 줄이고 몸을 날린 스웨덴의 로빈 올센 골키퍼에게 막히고 말았다.

87분에도 후반전 교체 선수 스테판 엘 샤라위가 기막힌 동작으로 오른발 발리슛을 날렸지만 로빈 올센은 그 각도를 꿰뚫고 있었다는 듯 몸을 날려 기막히게 그 공을 쳐냈다. 이탈리아에게 정말 안 풀리는 날이라는 뜻이었다.

주장 완장을 찬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까지 후반전 추가 시간 코너킥 세트 피스에 가담하여 기적의 골을 노렸지만 한 골 지키기에 매진한 스웨덴 선수들을 끝내 주저앉히지 못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 5분도 허무하게 흘러 안토니오 마테우 라호스(스페인) 주심의 종료 휘슬이 원망스럽게 들릴 뿐이었다.

2002년부터 골문 지킨 부폰의 마지막 인사

이렇게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29번째 진출 팀이 스웨덴으로 결정된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이탈리아 선수들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노란 옷의 스웨덴 선수들은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처럼 기쁨의 질주를 펼쳤다. 몹시 슬펐지만 여기서 맏형 잔루이지 부폰의 품격이 필요했다.

부폰은 동료 선수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며 실망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들 중에는 부폰과 함께 이탈리아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겠다는 키엘리니와 바르찰리도 있었다. 그들의 포옹은 눈물로도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야속할 정도로 슈퍼 세이브 실력을 자랑한 스웨덴 골키퍼 로빈 올센에게 축하와 격려의 인사도 아끼지 않았다. 베테랑의 품격이 느껴지는 마지막 인사 장면이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뛴 지난 20년이 부폰의 눈앞을 스쳐가는 월요일 밤이었을 것이다. 이제 부폰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가대표는 물론 소속 팀 유벤투스에서도 곧 장갑을 벗을 예정이다.

부폰의 국가대표 후계자는 AC밀란에서 뛰고 있는 18살 유망주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폰은 이 경기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아직 어리지만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돈나룸마에 대한 깊은 신뢰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부폰의 진정한 작별 인사는 유벤투스 클럽에 남아 있다. 이제 그는 눈물을 닦고 이탈리아 세리에A 일정과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특히, 23일 토리노에서 열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D조 FC바르셀로나와의 홈 경기가 이번 시즌 유벤투스 성적표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골키퍼 글러브를 낀 손으로 필드 플레이어 동료들을 격려하고 있는 그에게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팬들의 박수와 함성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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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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