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생을 지키고 싶은 형, 윤나무 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으로 분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윤나무를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는 윤나무. <오펀스>는 국내 초연 작품으로,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 탓에 마음을 다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시나 고아 출신인 헤롤드가 이 형제 앞에 나타나 마법 같은 2주일이 펼쳐지게 된다.

▲ 동생을 지키고 싶은 형, 윤나무 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으로 분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윤나무를 10월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는 윤나무. <오펀스>는 국내 초연 작품으로,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 탓에 마음을 다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시나 고아 출신인 헤롤드가 이 형제 앞에 나타나 마법 같은 2주일이 펼쳐지게 된다. ⓒ 곽우신


트릿은 고아다. 어머니를 잃은 이후 트릿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 욱 하고 터져 나오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트릿이지만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만 했다. 그 '뭐든지'에는 도둑질과 강도질도 포함돼 있다. 그래야 헬맨 마요네즈 엑스트라 헤비 사이즈를 구해올 수 있으니까.

아픈 건 트릿만이 아니다. 필립도 아프다. 알레르기 때문에 한 번 죽을 뻔한 필립은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트릿이 절대 나가지 말라고 못을 박기도 했고, 혼자서 신발끈도 묶을 줄 모르니까. 그래서 그의 세계는 이 작은 방이 전부다. 이 안에서 어머니가 입던 옷들이 있는 옷장에 숨어서 그 냄새를 맡거나,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몰래 사전을 찾아보며 신문을 읽는 건 형에게 절대 비밀이다. 트릿은 필립이 공부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 트릿은 필립을 사랑하고 필립도 트릿을 사랑하지만, 트릿은 자꾸만 필립을 새장 안에 가두려고만 한다.

그런 두 고아의 삶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시카고 갱단의 일원 헤롤드다. 꽤나 높은 지위의 헤롤드도 고아 출신이다. 트릿은 그를 취하게 한 뒤 속여서 자신들의 방에 데려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헤롤드는 TV 속 '앵벌이 키즈'를 닮은 트릿에게 마음이 끌렸다. 처음 보자마자 그가 자신과 같은 고아임을, 그래서 손에 더러운 걸 묻히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헤롤드를 인질로 삼아 돈을 갈취할 목적이었지만, 상황은 역전된다. 능숙한 헤롤드는 트릿과 필립을 격려하며, 그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고자 한다.

짧지만 마법 같은 2주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트릿과 필립은 헤롤드에게 많은 것을 받는다. 하지만 트릿은 한편으로 불안하다. 헤롤드 덕분에 성장하는 필립이, 이제 자신의 품을 떠나 날아갈까 봐. 저 세상 밖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나면 자신은 또다시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던 그는 헤롤드에게 애증으로 뒤섞인 감정을 품게 된다. 헤롤드에게 절제하는 법을 교육받던 중, 너무 강하게 몰아세워져 결국 폭발하고 나가버린 트릿. 그의 세상이 또 한 번 변하려고 한다.

오는 26일 폐막하는 연극 <오펀스>는 국내 초연작으로, 지난 9월 19일 개막한 이후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순항 중이다. <오펀스>는 말 그대로 '고아들'의 이야기다. '트릿' 역할을 맡은 배우 윤나무도 초연 연극이 이렇게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데 감사하고 있었다. 그가 작품으로부터 그리고 관객으로부터 받고 있는 격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0월 26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기록이다.

무대 위와 무대 아래의 분리

동생을 지키고 싶은 형, 윤나무 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으로 분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윤나무를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는 윤나무. <오펀스>는 국내 초연 작품으로,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 탓에 마음을 다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시나 고아 출신인 헤롤드가 이 형제 앞에 나타나 마법 같은 2주일이 펼쳐지게 된다.

▲ <오펀스> 트릿 연기의 재미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좀 재밌는 구석들이 무대에서 나오는것 같아요. 1막에서 좀 노련하지 못하잖아요. 필립은 밖의 사람들을 창으로만 보지만, 트릿은 밖에서 맞닥뜨리면서도 정작 외부인이 방에 딱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한테 쫄기도 하죠. 트릿이 밖에서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는 모습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곽우신


최근에는 브라운관에서도 간간이 모습을 비춘 배우 윤나무지만, 역시 그의 바탕은 대학로 무대다. 특히나 그는 아픔을 가진 인물들을 여럿 연기했다. 어렸을 적 트라우마로 기억을 잃고 괴로워하는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의 요나스,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아래 <한밤개>)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자폐아 크리스토퍼, 장애 때문에 휠체어 위에서만 지내야 하는 와중에 사춘기를 겪게 되는 연극 <킬 미 나우>의 조이까지. 표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인물들인데도, 윤나무는 극 중 캐릭터의 아픔에 관객이 잘 이입할 수 있도록 무대와 객석 사이 감정의 가지들을 잘 엮어나갔다. 이런 역들을 소화하는 일이 배우 스스로 힘들지는 않을까.

"누구나 다 마음속에 어느 정도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겠지만…. 굉장히 어렸을 때 큰 트라우마를 갖고 이렇게까지 살아온 트릿의 인생이, 평범하게 살아온 저한테는 처음에 조금 부대꼈어요. 전 평소에 화도 잘 안 내는데, 분노 조절이 잘 안 돼야 하는 캐릭터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멀리서 '트릿이라는 아이가 어떤 마음일까' 그걸 계속 집중해서 들여다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논리적으로 잘 안 맞고, 화를 내야하고, 감정이 조절이 잘 안 되던 트릿이 변해가는 모습, 조금씩 성장을 해가는 모습에 요즘엔 더 집중하고 있어요.

처음에 <블랙 메리 포핀스>를 했을 때는 실생활에도 지장을 많이 받았어요. 공연하고 나서 제 '윤나무'로서의 삶과 구분이 잘 안됐거든요. 공연이 있든 없든 간에 심박수 자체가 되게 빠르고, 몸에 미열이 계속 있고, 불안하고, 좁은 데 갇혀있으면 답답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려고 하고, 친구들하고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막 이랬었는데 해소가 잘 안됐어요. 이게 좀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얘기하기도 뭐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했죠. 공연 끝나고도 한두 달 정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찾아보니까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었더라고요. 그런 증상을 겪고 나서 <한밤개>나 <킬 미 나우> 공연을 했을 때는 좀 더 정확하게 구분하려 했죠. 그렇게 구분하는 게 연습실에서든 극장에서든 상대방, 같이 연기하는 사람들한테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순간 집중해서 한 번을 하더라도, 공연이 끝나거나 연습이 끝나면 좀 털어버리려고, 아예 생각을 안 하려고 했죠. 그 생각을 계속 갖고 있으면 막 꿈에도 나오고, 윤나무로서의 삶이 약간은 피폐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건강하게 관리를 해야 무대 위에서 정확한 컨디션으로 올곧게 딱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때부터는 좀 생각을 다르게 하고 있어요.

대신 '순간 집중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고민했어요, 무대는 어차피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무대 위에서 만나는, 나랑 만나는 사람들. <한밤개>에서 에드 아빠가 됐든, 주디 엄마가 됐든, 시오반 선생님이 됐든…. <킬 미 나우>에서 아빠 제이크나, 친구 라우디, 고모 트와일라, 로빈 아줌마까지…. 제가 가진 장애나 트라우마에 집중하기 보다 오히려 주변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집중하니, 보는 사람들이 제가 (무대 위에서) 갖고 있는 장애를 어떻게 볼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무대 위에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제가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는가의 문제, 이 드라마에서 내가 어떤 역할이고, 내가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게 노하우라면 노하우랄까요?"

연출과 함께하는 배우

동생을 지키고 싶은 형, 윤나무 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으로 분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윤나무를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는 윤나무. <오펀스>는 국내 초연 작품으로,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 탓에 마음을 다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시나 고아 출신인 헤롤드가 이 형제 앞에 나타나 마법 같은 2주일이 펼쳐지게 된다.

▲ 동생에 대한 압박 "동생이 집을 벗어나면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형으로서의 불안감이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활자나, 단어의 뜻 그리고 지도도 못 보게 하는 거고. 보호하기 위해서 동생을 그런 것들로부터 차단을 하는 건데, 아마 트릿도 은연 중에 알 거예요. 혼자 있을 때 필립이 TV도 보는데 모르겠어요." ⓒ 곽우신


무대 위에서 표현하던 아픔이 잔향처럼 남아서 무대 아래에서도 괴로웠었다는 윤나무. 그만큼 깊이 있게 빠져들어 인물을 대변했기 때문에,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에 관객이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집중하는 포인트를 다르게 뒀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만난 '트릿'과 인사하기 위해서는 분명 많은 것을 참고했을 것 같다. 국내 초연작이기에 더더욱 '너무 낯설지 않게'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심했을 터, 윤나무의 트릿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자료나 레퍼런스들을 크게 찾아보진 않았어요. 트라우마, 분노조절장애나 감정조절장애 이런 것들에 대해서요. 찾아보기는 했는데…. 대신 왜 이렇게 됐을지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트릿이 원래부터 장애가 있진 않았을 텐데, 그때(어머니를 잃고) 충격이 얼마나 크면 얘네들이 이렇게 됐을까에 대해 동생들과 얘기를 많이 했었죠. 사실 명확히 보이지는 않거든요. 김태형 연출도 그걸 대놓고 너무 친절하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하셨죠. 사실 그것보다는, 그 일을 겪고 이렇게 변해버린 애들이 다시 어떻게 성장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잖아요. 더 초점을 맞추고 있거든요.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는 편이에요. 제 스타일은 대본 안에 근거가 있는 소스를 찾아서 그걸 부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오펀스>가 영화도 있고, 유튜브 보면 해외 공연이나 학생들이 한 버전도 있고 여러 가지 나오거든요. 그런데 별로 안 봤어요. 저 한국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한국 관객들이 이 공연을 보실 거니까요. 1983년도에 초연이 올라왔던 이 대본을, 2017년도 대한민국에서 왜 필요로 하는지, 제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저라는 배우가 제 감성으로 극을 해석을 하고 보여드려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동생을 지키고 싶은 형, 윤나무 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으로 분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윤나무를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는 윤나무. <오펀스>는 국내 초연 작품으로,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 탓에 마음을 다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시나 고아 출신인 헤롤드가 이 형제 앞에 나타나 마법 같은 2주일이 펼쳐지게 된다.

▲ 동생의 의미 "필립에게 지적인 능력이 생기면 생길수록, 나를, 나라는 사람을 벗어나고 나라는 사람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건 사실 저(트릿)한테는 진짜 절망적인 거거든요. 트릿 삶의 목적은 필립을 지키는 거였는데, 그 필립이 떠나면 제(트릿) 인생이 끝나는 거라고 받아들여지니까…." ⓒ 곽우신


어려운 역할인 만큼 많은 자료를 참고했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대본에 충실한 대신 2017년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적 맥락에서 <오펀스>의 메시지가 관객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했다는 그의 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비단 이런 고민은 배우 개인의 몫만은 아니다. 함께 무대 위에 서는 배우들 그리고 같이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창작진과 공유하며 깊이를 더해야 한다. 연출 김태형도 이런 부분에서 군데군데 애쓴 부분이 무대 위로 드러난다. 그러고보면 연출 김태형과 배우 윤나무의 관계도 참 오래됐다. 배우 윤나무는 '김태형의 아들' '김태형의 페르소나'로 불릴 정도로 자주 호흡을 맞췄다. <카포네 트릴로지>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에게는 아버지가 세 명 있다'면서 자신의 친부와 배우 이석준 그리고 연출 김태형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으니까.

"좀 세보고 싶은데, 몇 개나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요. (웃음) 제가 손에 꼽는, 정말 열심히 하는 연출가 중에 한 명이에요. 근데 사실 저는 (김)태형이 형과 작업하는 게 다른 연출 분들과 하는 것보다 힘들어요. 직접적으로 얘기는 안했지만, 김태형 연출은 제 카드를 너무 다 알고 계세요. 제가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상대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더 새로운 제 안의 여러가지를 무궁무진하게 꺼내야 하니까 절대 쉽지 않죠. 좀 힘들지만, 그래서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고 저도 몰랐던 더 새로운 모습들을 계속 찾아가는 거죠.

이번 작품도 제가 김태형 연출과 만나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로기수> 때도 제가 동생 역할을 했었고, <아가사>에서도 제일 막내인 소년 역할을 했었고, <카포네 트릴로지>에서는 여러가지 역할을 했었지만, 이런 결의 연기는 제가 아직 해본 적이 없었죠. 그래서 연출과 같이 만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았죠.

지겹지는 않아요. (웃음) 왜냐하면 그 사람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새로운 얘깃거리, 새로운 것을 계속 찾고 있는 와중에 뭔가 계속 손발이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니까요. 이제는 가족 개념이라고 해야 할지, 약간 그런 느낌이에요. (웃음) 재밌고 새로운 걸 계속 찾을 수 있다면 앞으로도 쭉 가겠죠."

트릿의 폭력성 그리고 성장

동생을 지키고 싶은 형, 윤나무 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으로 분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윤나무를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는 윤나무. <오펀스>는 국내 초연 작품으로,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 탓에 마음을 다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시나 고아 출신인 헤롤드가 이 형제 앞에 나타나 마법 같은 2주일이 펼쳐지게 된다.

▲ 필립과의 갈등 작품 중에 등장하는 하이힐은 꽤 여러번 언급되는 오브제이다. "그건 엄마 구두입니다. 엄마가 그 사건이 있을 때에 신었던 구두이고, 코트도 그때 입었던 코트죠. 그래서 더 그거에 대해서는 감추고 싶어 하는 거죠. 그걸 보면 볼수록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배척을 하려고 하고, 필립에게 그때 그 기억이 살아나지 않게 하려고 자꾸 못 갖고 있게 하는 거죠." ⓒ 곽우신


앞서 말한 것처럼, 트릿은 폭력적인 인물이다. 폭력이 일상화된 인물인 그는 폭력을 통해 살아간다. 그리고 폭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도덕 관념이 부족한 인물임에도, 관객이 그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건, 그가 이토록 잘못된 인식을 갖게된 게 그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야만적인 세상에 던져진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그 폭력을 학습할 수밖에 없었다. 1막에서는 칼로, 2막에서는 총으로.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생긴 폭력성인 것 같아요. 강도질을 하고, 도둑질도 하고 그거에 대해 막 장황하게 설명하잖아요? 하지만 정작 동생한테 그렇게 말한 것처럼 하지는 못했을 것 같거든요. 굉장히 전문적인 강도는 아니고, 대담하게 뭐 하지도 못하고, 고작해야 소매치기를 한다든가. 아니면 되게 연약한 사람 옆에 칼로 협박하면서 '달라고, 빨리 달라고' 했겠죠. 누군가가 나를 해칠까 봐, 나를 지키고, 내 동생을 지키기 위해 폭력성이 생긴 그런 느낌이랄까요. 동생 앞에서 뽐내는 것처럼 실제로 그렇게 대담하게 하지는 않았을, 아니 못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동생이 '피가!' 그러면 '뭐, 피 났어?!' 이런 거는 사실 진짜 살짝 스친 정도로 넘어간 건데 동생 앞에서 일부러 더 과장되게 표현하는 거죠."

고아들이 격려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이지만, 2막에서의 트릿이 1막과 비교했을 때 급격하게 바뀌진 않는다. 헤롤드는 자제할 줄 모르고 있는 대로 다 터뜨리는 트릿이 걱정이다. 트릿은 헤롤드에게 빨리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 나 있지만, 헤롤드는 트릿에게 쥐여준 총의 방아쇠가 언제 당겨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트릿은 그 총을 통한 폭력을 '정의로운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친다. 폭력을 통해 구현되는 정의. 인과응보 그 이상으로 되갚는 정의.

"그 정의라는 단어 때문에 연출님과도 얘기를 했었거든요. 강도짓을 하면서 사는 애가 어떻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을까. 같이 얘기하다가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그 단어가 나온 거예요. 트릿이 생각하는 정의 사회 구현은 누군가가 나를 터치하거나, 내가 사랑하는 구두를 밟았을 때, 얘 다리를 가서 걷어차 버리는 거죠.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요. 그 얘기를 하면서 신군부 독재 시절 전두환을 그렸어요.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 사회 구현은 광주에 가서 포탄을 쏴서 빨갱이들을 학살을 하는 거라고 착각을 하는 것처럼, 트릿한테는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가했을 때 반드시 응징을 하는 게 정의라고 착각하는 거죠.

그런데 헤롤드 아저씨한테 2막 1장에서 '열까지 세 본적 있느냐' 이런 얘기를 처음 듣고, 자제가 중요하다는 걸 배운 거죠. 그래서 2장 때 비상식적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사람한테, '보스가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 얘가 나가더라'를 배운 거죠. 이 총이라는 권력도 나한테 생겼고, '아, 정의 사회는 이런 식으로도 구현할 수 있구나. 열까지 세니까 이게 되네? 총도 있고 하니까?'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시키는 대로 한 건데, 계속 어긋나고, 그래서 미워하고."

트릿의 성장과 필립의 성장이 모두 중요하지만, 그 성장의 과정은 다소 다르다. 헤롤드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품고, 서로 따뜻하게 호흡하는 필립에 비해 트릿과 헤롤드 사이는 묘한 긴장관계가 계속된다. 극이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자제를 못하는 트릿이 혹시나 무슨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불안해진다. 하지만 시카고 갱단의 일원인 헤롤드는 낯선 사내들에 의해 불의의 습격을 받는다. 마지막까지 이 '앵벌이 키즈'를 지켜주고, 그들이 자신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기를 바랐던 헤롤드는 2주간의 따뜻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이별한다. 트릿과 필립의 마지막 오열, 트릿이 헤롤드에게 품는 감정은 극적으로 변화한다.

"저랑 지금 제 아버지의 관계도 비슷한 것 같아요. 만약에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져 갑자기 돌아가시면, 저는 굉장히 후회하겠죠. 헤롤드에 대한 마음이 굉장히 복잡하기는 해요. 굉장히 인정을 받고 싶었다가도, 필립이 변해가는 걸 느끼면서 동생에 대한 소유권을 뺏기는 것 같고. 그런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걸 헤롤드를 통해 느낀 거잖아요. 이 사람은 날 믿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난 이 사람을 믿고 싶죠. 이 사람은 나에게 모든 걸 주지만, 그 구석에 저에 대한 믿음은 없는 것 같고, 동생한테는 있고…. 거기다가 동생을 잘 지키고 있었는데 뺏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은연 중에 나온 거죠.

<오펀스>라는 공연 자체가 1막과 2막 다 합해서 2주하고도 이틀 정도의 얘기거든요. 트릿한테는 그 기간이 너무 짧았죠. 더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이 사람과의 2주 좀 넘는 시간이 행복했는데…. 헤롤드가 돌아가시는 순간, 주마등처럼 그게 다 지나갈 것 같아요. 처음 헤롤드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후회가 많이 남아서 우는 것 같아요. 헤롤드의 역할 덕분에 서로 안고 살아갔던 형제가 세상에 한 발 더 디딜 수 있을 만큼 성장했잖아요."

관객에게 격려 받는 배우

동생을 지키고 싶은 형, 윤나무 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으로 분해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윤나무를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는 윤나무. <오펀스>는 국내 초연 작품으로, 부모를 잃은 후 트라우마 탓에 마음을 다쳤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역시나 고아 출신인 헤롤드가 이 형제 앞에 나타나 마법 같은 2주일이 펼쳐지게 된다.

▲ 트릿이 배운 것 "트릿은 사람과의 관계를 전혀 못 맺는 인물이었어요. 그랬던 애가 헤롤드를 만나면서 조금씩 순화되고, 성장을 하죠. '나는 그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중요한 그런 감정이 생기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게 된 거죠. 그게 제일 크지 않을까요." ⓒ 곽우신


<오펀스>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모자라고, 가슴 한구석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 상처를 보듬을 기회는 흔치 않다. 우리는 사실 누군가로부터 격려를 필요로 하는, 외롭고 연약한 존재들인데 말이다. 관객들은 <오펀스>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작품과 배우로부터 트릿과 필립이 받았던 것 같은 격려를 받는다. 정작 배우 윤나무는, 관객을 통해 자신들이 받는 격려가 더 크다고 얘기한다.

"관객 분들께 이 작품이 친절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배우들하고 연출하고 얘기를 했어요. '최대한 진심으로 서로 격려 받을 수 있고 격려해줄 수 있는 방법이 이 극 안에서 뭐가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죠. 이 필모그래피를 통해서 제가 성장하는 것 보다는, 관객 분들께 받는 격려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따뜻해요. 그 격려를 받으면서 '내가 관객 분들한테 할 수 있는 게 과연 뭘까' 계속 생각하게 되어요. 진심으로 무대 위에서 같이 하는 동료들과 끈끈한 교감해서, 올곧이 전달할 수 있는 방법…. 매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배우들끼리 텐션 유지하는 걸 항상 고민하게 되고, 관객들께도 감사함을 더 느끼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뭔가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 되고 이런 거는 명확하게 별로 없고…. (웃음) 초연 공연을 많이 해봤지만, 하면 오픈되기 전에 굉장히 불안한 것도 있고, 설레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거든요. 근데 관객 분들이 이 공연을 이렇게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동하 형이나 우진이 형이나 선생님들하고 같이 두 달 동안 지지고 볶고 한 게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요. 연출도 마찬가지고요. 더 많은 분이 공연을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남녀노소 즐길 수 있고, 누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분명히 극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무대에서 계속 하고 싶거든요. 남은 기간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교감하면서."

이제 후반부로 들어선 공연 일정. 배우 윤나무에게 초연 연극 <오펀스>는 또 어떤 필모그래피로 남을까. 그리고 트릿은 어떤 인물로 남을까. 공연 후반부에도 여전히 그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고, 어쩌면 폐막 때까지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물음표 때문에 지금의 윤나무가 있는 것이고, 앞으로의 윤나무를 기대하게 되는 게 아닐까. 윤나무라는 배우가 거목이 되어, 대학로 전체를 품을 그날이 그렇게 멀어보이지는 않는다.

"공연을 계속 여러 회차 거치면서 좀 더 감정이 깊어질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좀 더 섬세하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거는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안 되고요. 무대 위에 선 헤롤드 선생님들하고 동생들하고 같이해야죠. 어떤 방법이 관객들한테 이 주제를 더 선명하게 전달시켜드릴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고민을 멈추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계속해야하는 게 배우로서의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끝까지 한번 물고 늘어져봐야죠. (웃음)"

윤나무의 트릿 연극 <오펀스>의 배우 윤나무 버전의 포스터.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윤나무라는 배우는 그의 예명처럼, 마치 나무 그늘처럼 관객을 보듬고 품는 연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 덕분에 관객이 받은 위로가 크고, 그 역시 관객의 사랑을 받아 무럭무럭 크고 있다. 이제 배우로서 가장 찬란한 시기를 보내게 될 그. 앞으로는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안아줄까 기대된다.

▲ 윤나무의 트릿 연극 <오펀스>의 배우 윤나무 버전의 포스터.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윤나무라는 배우는 그의 예명처럼, 마치 나무 그늘처럼 관객을 보듬고 품는 연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 덕분에 관객이 받은 위로가 크고, 그 역시 관객의 사랑을 받아 무럭무럭 크고 있다. 이제 배우로서 가장 찬란한 시기를 보내게 될 그. 앞으로는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안아줄까 기대된다. ⓒ (주)악어컴퍼니



윤나무 트릿 오펀스 트리트릿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