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한국대표팀 훈련에서 선동열 감독이 훈련을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야구의 국보(國寶)' 선동열 감독이 야구 국가대표 팀 사령탑으로 새로운 도전에 돌입한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이하 APBC·16~19일)에 출전한다. 24세 이하 젊은 선수들이 출전하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숙적 일본과 난적 대만을 상대로 대회 첫 정상에 도전한다. 한국야구 최초의 대표팀 전임 사령탑으로서 선동열 감독의 공식 데뷔무대이기도 하다.
첫 경기부터 빅매치다. 16일 홈팀이자 한국의 영원한 숙적인 일본과 도쿄돔에서 맞붙게 됐다. 양팀 모두 완벽한 최정예는 아니지만 일본은 나이가 어려도 프로무대에서 이미 정상급으로 인정받는 선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서 만만치 않은 상대다.
무엇보다 '한일전'은 그 자체로 국민적 관심을 받는 승부다. 지난 2015년 '프리미어12' 준결승전 이후로 2년만에 다시 성사된 한일전이다. 당시 한국은 8회까지 0-3으로 끌려가다가 9회에만 4점을 뽑는 대역전극을 펼치며 일본을 물리치는 도쿄대첩을 연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일본과의 첫 경기가 사실상 예선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부진을 만회해야한다는 사명감도 있다.
첫 선발은 떠오르는 신예, NC 우완 장현식선동열 감독은 첫 경기 선발 투수로 NC 다이노스 우완 장현식을 낙점했다. 올시즌 KBO리그에서 9승 9패 자책점 5.29를 기록한 장현식은 2017년 가장 뚜렷한 성장세를 보여준 투수 중 한 명이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7이닝 1실점 비자책 호투를 펼쳐, 큰 경기에서도 자신의 공을 뿌릴 수 있는, 배짱 있는 투수임을 증명했다. 퀵 모션과 견제가 좋아 발 빠른 주자가 많은 일본의 기동력을 견제하기에도 유리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불안 요소도 있다. 안 풀리는 날에는 기복이 심하다는 점, 경기 초반에 고전하다가 늦게 몸이 풀리는 '슬로우 스타터' 체질이라는 점을 단점으로 꼽는다. 일본은 올 시즌 15승 3패, 자책점 2.58을 기록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우완 에이스 야부타 가즈키를 선발로 낙점했다.
투수 출신인 선동열 감독의 장기는 역시 지키는 야구와 계투 작전이다. 선동열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과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시절부터 다수의 투수를 일찌감치 불펜에 대기시키는 벌떼야구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단기전인데다 투구 수나 등판 간격 제한이 없는만큼 선 감독의 계투 작전이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선발 장현식이 흔들린다면 초반에 과감하게 교체하고 일찌감치 불펜 싸움으로 돌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선 감독은 공격에서 역시 적극적인 작전 야구를 구사하겠다는 복안을 내비쳤다. 냉정하게 말해 일본 정상급 투수들을 상대로 우리 대표팀 타선이 연속 안타나 빅이닝을 만들어낼 확률은 낮다. 찬스에서 번트를 대서라도 확실하게 1, 2점을 뽑아내고 지키는 야구를 하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이번 대표팀은 장타력을 갖춘 선수가 많지 않다. 올 시즌 리그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린 선수가 김하성(23), 구자욱(21), 하주석(11) 등 3명 뿐이다. 타구가 멀리 뻗어나가는 도쿄 돔의 특성상 홈런 한두방에 승부가 좌우될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삼성에서도 기아에서도, 좋은 평가 못 받는 이유
▲ 10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표팀과 넥센 히어로즈의 연습경기. 장현식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선동열 감독에게도 이번 대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선 감독은 지난 7월 김인식 전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선 감독은 김인식 전 감독과 호흡을 맞춰 투수 코치로서 2015 '프리미어 12'에서 한국 대표팀의 초대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올해 초 열린 WBC에서는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고 김 감독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선동열 감독은 야구 대표팀 최초의 전임 감독이다. 다른 종목에 비하여 전임 감독제 도입이 늦었던 야구는 기존의 WBC와 아시안게임 이외에도 최근 몇 년간 '프리미어12'와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등이 신설되며 대표팀 운영을 전담해 줄 전임 감독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선 감독은 자타공인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간판이자 슈퍼스타 출신 감독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야구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지켜야하는 선 감독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선 감독은 야구대표팀 사령탑으로 현장에 복귀하기까지 지도자로서 몇 년간 부침을 겪었다. 선수 시절의 선동열은 '국보'라는 수식어에서 보듯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선수였다. 하지만 '감독 선동열'의 행보는 다소 호불호가 엇갈린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2005년 사령탑에 오르자마자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2005, 2006)을 차지했다. 선 감독은 삼성에서 6시즌간 5번 포스트시즌에 올라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고 통산 성적은 417승 13무 340패로 승률 0.551에 이른다. 이른바 지키는 야구를 바탕으로 2010년대 초반 한국야구를 지배한 삼성 최전성기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다.
하지만 두 번째 지휘봉을 잡았던 친정팀 기아 타이거즈로의 컴백은 선 감독에게나 기아에게나 지우고 싶은 '흑역사'로 남았다. 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3년간 기아는 단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읻. 통합 성적은 167승 9무 213패(승률 0.439)에 그쳤다. 고(故) 김동엽 감독(82년, 13경기 5승 8패)을 제외하고 최소 1년 이상 지휘봉을 잡은 역대 타이거즈 사령탑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기아 사령탑에서 자진 하차하는 과정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국내 프로야구 팬들게 선동열 감독의 캐릭터는 흔히 말하는 '스타 출신 감독'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팬들은 선동열 감독 본인이 스타 출신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높고 엄격하다거나, 권위적이고 선수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것 같다고 흔히 생각한다.
실제로 선 감독은 이종범 양준혁 등 소속팀을 대표하는 레전드 선수들을 전력 외로 분류하면서 반 강제로 은퇴하게 한 전례로 팬들의 원성을 샀다. 또 외국인 선수들과의 갈등이나 극단적인 불펜 중심 야구 등으로 여러 번 논란에 휩싸였다. 좋은 성적을 거뒀던 삼성 시절은 물론이고, 친정 팀인 기아 시절에 대해서도 팬들 사이에서 감독 선동열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이제는 대표팀 감독으로, 선동열 명예회복 가능할까하지만 대표팀만 놓고 보면 선 감독은 충분히 유능한 지도자였다. 특히 코치로서는 역대 최고의 투수 코치 중 하나로 꼽힐 만했다. 2006년 WBC, 2015 프리미어 12, 2017 WBC에서 모두 투수 코치로서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며 대표팀의 선전에 기여했다.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김인식 감독도 선동열 코치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고 존중했다는 후문이다. 단기전인 국제대회에서 불펜 중심의 계투전과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지키는 야구에 최적화된 선동열 감독의 장점이 한국 대표팀의 스타일과 잘 맞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선 감독의 데뷔무대인 APBC는 최정예 1진이 아닌 젊은 선수들 위주의 대회다. 그러나 여유롭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한국으로서는 장기적으로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20 도쿄 올림픽 등을 대비한 전초전의 의미를 갖는 데다 앞으로 선동열 호의 색깔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는 무대라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경쟁국인 일본, 대만은 와일드카드 엔트리까지 모두 채우며 이번 대회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선 감독은 가급적 젊은 선수들 위주로 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사실상 지금 연령대의 선수들이 차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주축이 될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전력상 만만치않은 일본과 대만을 상대로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가 얼마나 통할 수 있을지가 이번 대회의 중요한 관전포인트로 보인다. 동시에 감독 선동열의 명예회복과 재기 여부가 걸려있는 무대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