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쪼개듣기'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화제작 리뷰, 업계 동향 등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편집자말]
 유재하 1집 앨범 CD 커버.  유재하와 전태관(봄여름가을겨울)의 어린 시절 친구인 현대미술가 서도호가 그린 작품이다.

유재하 1집 앨범 CD 커버. 유재하와 전태관(봄여름가을겨울)의 어린 시절 친구인 현대미술가 서도호가 그린 작품이다. ⓒ 킹핀엔터테인먼트


지금으로부터 30년 전(1987년) 여름, 어느 재능 많던 싱어송라이터가 데뷔 음반을 발매했다. 그 무렵 소위 다운타운가, 언더그라운드로 불리우던 신촌 대학가 주변 음악다방 등에서 '지난 날' '사랑하기 때문에'가 입소문을 타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게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줄은 그때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주인공이 잘 알려진대로 바로 유재하이다. 비록 그는 단 한 장의 음반만 내놓은 채 유명을 달리했지만 이후 등장한 상당수의 8090 발라드 가수 및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고인의 가족들이 설립한 유재회 음악 장학회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해 재능 많은 젊은 음악인들을 배출하는 기회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비록 세월이 지나고 유행의 흐름이 달라지다보니 그가 남긴 음악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에' '지난날' 그리고 영화 <살인의 추억>에 삽입된 '우울한 편지' 등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뛰어난 능력의 작곡가, 키보디스트이자 기타리스트

 지난 1999년 발매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10주년 기념음반 <무지개> 표지.  1회 금상 수상자 조규찬(1회에만 금상을 최고상으로 수여함)을 시작으로 토이 유희열, 루시드폴 등의 싱어송라이터, 영화음악가 박인영-이재진, 프로듀서 방시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인들이 이 대회를 거쳤다.

지난 1999년 발매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10주년 기념음반 <무지개> 표지. 1회 금상 수상자 조규찬(1회에만 금상을 최고상으로 수여함)을 시작으로 토이 유희열, 루시드폴 등의 싱어송라이터, 영화음악가 박인영-이재진, 프로듀서 방시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인들이 이 대회를 거쳤다. ⓒ 유재하장학회


1980년대 이른바 '뽕끼'가 녹아있던 대부분의 국내 발라드와는 달리 유재하의 곡에는 이와 차별되는 독특함이 담겨져 있었다. 유재하는 제임스 잉그램, 배리 매닐로우, 필 콜린슨과 같은 해외 팝 스타들의 곡에서 영향을 받은 세련된 화성을 사용했다. 이는 30년이 흐른 지금도 유재하의 곡들이 결코 촌스럽게 들리지 않게 만든 밑바탕이 되었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의 엔딩 처리라든지 마이클 프랭스의 분위기를 담은 보사노바식 곡의 전개를 보여준 '우울한 편지'가 그 좋은 예다.

또한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연주자로서의 능력 역시 1집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 바가 컸다. 잘 알려진대로 유재하는 클래식 전공자(한양대 작곡과)다. 그러면서도 가수 조용필, 김현식, 밴드 위대한 탄생,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당시로선 쟁쟁한 음악인의 백업 밴드 연주자(건반)로 활동할 만큼 이미 20대 초반에 실력을 인정 받았다. 

음반 녹음 중 기본 리듬 섹션에 해당하는 베이스(그룹사운드 동방의 빛 출신 조원익), 드럼(안기승, 유영수)은 전문 세션들이 전담했다. 하지만 건반과 기타 연주는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특히 록밴드 토토(Toto)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팝-록 형식의 '텅빈 오늘밤'에는 곡 중간을 장식하는 기타 솔로 연주가 포함돼 있다. '우리들의 사랑'에서는 오버 더빙으로 구현한 일렉기타 2대의 '유니즌 플레이(2개 이상의 악기가 한 멜로디에서 동일한 음을 연주하는 방식)'로 기타 애드리브 연주를 전개한다. 두 연주는 1980년대 국내 가요 녹음에서도 단연 발군이라고 평해도 좋을 만한 작업물이다.

한편 훗날 유재하의 절친 김종진의 인터뷰에 따르면 애초 '사랑하기 때문에'의 기타 솔로 연주는 본인이 맡았지만 이 연주를 유재하는 그리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음반에는 유재하가 직접 연주해서 최종 수록됐다.

뒤죽박죽 리마스터링... 2014년이 돼서야 재정비

 유재하 1집 LP 표지. 당초 1집 초판은 담배가 그려진 일러스트 형태였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흑백 사진 표지로 교체되었다.  시중에서 거래되는 중고 LP 및 테이프와 2014년 재발매 LP는 모두 이 표지가 사용되었다.

유재하 1집 LP 표지. 당초 1집 초판은 담배가 그려진 일러스트 형태였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흑백 사진 표지로 교체되었다. 시중에서 거래되는 중고 LP 및 테이프와 2014년 재발매 LP는 모두 이 표지가 사용되었다. ⓒ 킹핀엔터테인먼트




유재하 정규 1집 <사랑하기 때문에>는 지난 1988년을 시작으로 몇 차례 CD 재발매가 이뤄졌다. 작업 과정에서 원본 테이프의 재생 속도 조절을 잘못하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런 탓에 지난 1994년 판본 CD와 2012년 재발매 CD는 원작 녹음보다 살짝 느리게 재생되어 모든 소리가 다소 낮은 키로 들리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가령 '지난 날'의 경우 1994년, 2012년 판본이 재생시간 5분 14초 안팎인 반면 2001년과 2014년 리마스터링에선 4분 58초 정도로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 그렇다보니 이 음반은 발표 시점인 1980년대 후반 기준으론 비교적 잘 녹음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한동안 퇴색되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2014년 원본 테이프를 토대로 최대한 원음에 가까운 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복원이 이뤄졌다.

현재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에선 2012년, 2014년 판본이 모두 서비스되고 있는데 가능하면 후자를 선택해서 감상하길 바란다. 특히 2014년 리마스터링을 토대로 한정 제작된 LP에 한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유작 녹음 'Vincent'(원곡 돈 맥클린)가 수록돼 음반 수집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1980년대 조용필, 김현식, 이문세... 그의 곡을 녹음했던 가수들 

 유재하 생전에 그의 곡을 제공받아 녹음했던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1985년 조용필을 시작해서 이문세, 김현식, 한영애 등이 그 주인공이다.

유재하 생전에 그의 곡을 제공받아 녹음했던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1985년 조용필을 시작해서 이문세, 김현식, 한영애 등이 그 주인공이다. ⓒ KBS미디어/예전미디어/케이엔씨미디어





딱 한장의 음반만 내놓고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나간 탓에 생전 그가 다른 음악인들에게 자신의 곡을 제공한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제일 먼저 유재하의 곡을 불렀던 이는 바로 조용필이다. 1985년 발표된 조용필 7집 앨범 <여행을 떠나요>에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담겨있다.  당시 이 음반은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여행을 떠나요' '아시아의 불꽃' 등 다수의 곡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사랑하기 때문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어 이문세, 김현식에 의해 각각 '그대와 영원히'(1985), '가리워진 길'(1986)이 발표됐다. 이때 작곡가 이영훈과 첫 작업을 진행했던 이문세는 자신의 3집 음반 전곡을 이영훈에게 맡겼지만 유일하게 수록된 외부 작곡가의 작품이 바로 '그대와 영원히'였다.

원래 유재하와 친분이 있던 이문세의 부탁으로 수록되었던 이 곡은 타이틀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등에 가려지긴 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뒤늦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지난 날'의 후렴구 코러스를 담당했던 이문세는 1996년 '조조할인'이 수록된 10집 앨범 <화무>에 새로운 편곡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애초 김현식의 백업 밴드였던 봄여름가을겨울의 원년 멤버였지만 곡에 대한 욕심 등으로 인해 유재하는 일찌감치 팀을 떠났다. 하지만 1986년 발표된 김현식 3집에는 다행스럽게도 그가 김현식에게 줬던 곡 중 '가리워진 길'이 수록되었다. 클래식 소품스러운 편곡으로 녹음된 유재하 버전과 달리 김현식은 다소 평이한 구성의 팝 형태로 재해석했다.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1988년)에는 한영애의 '비애', 김현식의 '그대 내 품에'가 공개됐다. 한영애의 경우, 2집 작업을 위해 여러 군데 곡 의뢰를 하던 과정에서 유재하가 직접 부른 `비애`의 데모곡을 받게 되었는데 음반은 이듬해에 발표된 탓에 유재하는 완성된 곡은 접해보지 못한 채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김현식은 4집 음반에서 유재하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그대 내품에'를 녹음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인 1990년, 공교롭게도 유재하와 같은 날인 11월 1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규찬, 유희열, 방시혁, 박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배출한 스타들
지난 1989년 유재하의 부친이 사재를 털어 유재하 장학회를 설립했고 젊은 음악인들을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시작했다. 재정난으로 한때 대회가 열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고정된 후원사가 없어 지난 수년 사이 SK커뮤니케이션스, 네이버 등 여러 후원사를 거쳐야 했다. 올해는 CJ의 후원으로 제28회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8일 최종 경연이 열릴 예정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는 어쿠스틱 기반의 포크-팝 등을 중심으로 최신 유행의 장르와는 차별되는 독자적인 색깔을 지닌 유망주 발굴의 장이 되어 왔다. 1989년 1회 대회 이래 배출된 주요 음악인들은 아래와 같다.

조규찬 (1회 금상 / 싱어송라이터)
고찬용 (2회 대상 / 낯선 사람들)
박인영 (2회 금상 / 오케스트라 편곡자, 영화음악감독)
나들 (2회 동상 / 일기예보)
강현민 (3회 동상 / 일기예보, 러브홀릭)

유희열 (4회 대상 / 토이)
심현보 (4회 은상 / 싱어송라이터)
말로 (5회 은상 / 재즈 보컬리스트)
이규호 (5회 동상 / 싱어송라이터)
윤영배 (5회 동상 / 싱어송라이터)

이한철 (5회 동상 / 싱어송라이터, 지퍼, 불독맨션 활동)
루시드폴 (5회 동상 / 싱어송라이터)
방시혁 (6회 동상 / 작곡 및 프로듀서..방탄소년단 제작)
나원주 (7회 대상 / 자화상, 편곡자)
김연우 (7회 금상 / 토이 객원 보컬, 솔로 가수)

이재진 (7회 은상 / 영화음악가)
강민국 (7회 은상 / 영화음악가)
정지찬 (8회 대상 / 자화상, 원모어찬스, 작-편곡가)
김정범 (11회 장려상 / 푸디토리움)
박경환 (14회 동상 / 재주소년)

윤형렬 (14회 장려상 / 뮤지컬 배우)
임헌일 (15회 동상 / 메이트, 아이엠낫 기타리스트 )
스윗소로우 (16회 대상 / 그룹 최초 수상)
정준일 (16회 은상 / 메이트, 솔로 가수)
노리플라이 (17회 은상)

오지은 (17회 동상 / 싱어송라이터)
박원 (19회 대상 / 원모어찬스, 솔로가수)
박세진 (19회 장려상 / 옥상달빛)
김정균 aka 김거지 (22회 대상 / 싱어송라이터)
이설아 (24회 금상 / 싱어송라이터, K팝스타 출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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