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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클래식음반이 보기 좋게 장식된 경북 포항의 북카페 클래식북스.
 책과 클래식음반이 보기 좋게 장식된 경북 포항의 북카페 클래식북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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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창을 통해 세상의 곡식과 과일을 익히는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 경북 포항시 북구 양덕동에 위치한 '클래식북스(ClassicBooks)'에 들어서자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감미로운 선율이 가장 먼저 기자를 반겼다.

고풍스런 책꽂이엔 <일리아드 오디세이>와 <돈키호테>, <프란츠 카프카 선집> 등이 가지런히 꽂혔고, 향긋한 커피 향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있었다. '클래식'과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공간. 클래식북스가 지향하는 "책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 크는 인문고전 북카페"가 어떤 의미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됐다.

지난 2015년 8월 문을 연 클래식북스가 고전음악과 고전(古典·오랜 기간 널리 읽힌 문학작품)을 아끼는 포항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지방 중소도시와 서울 할 것 없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 '북카페'다. 그러나 이름에 값하는 북카페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이 과제를 하고, 친구들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공간으로 변색된 북카페들.

"여기서만은 책과 고전음악에 집중했으면..."

하지만, 클래식북스는 다르다. 표방하는 '운영원칙'만 봐도 알 수 있다. 휴대폰을 이용한 통화는 바깥에서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릴만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도 금한다. 이는 클래식북스에서만은 '책'과 '클래식'에 집중하자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클래식북스는 70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SLC(Seven habits Leading CEO)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고전을 읽고, 인문학 토론을 하며,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교류하는 모임이다. "회원이 7명만 돼도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올 4월 시작한 SLC연구회는 6개월 만에 예상의 10배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보통의 북카페에선 보기 힘든 클래식북스의 운영원칙과 고전·인문학 프로그램의 배후에는 작가 조신영(54)씨가 있다. <성공하는 한국인의 7가지 습관> <경청-마음을 얻는 지혜> <나를 넘어서는 변화의 즐거움> 등의 책을 쓴 조씨는 자기계발 분야의 국제 강사이기도 하다.

미국, 중국, 러시아, 홍콩 등에서 수백 회에 걸쳐 세미나를 진행했던 조신영 씨는 '한국인문고전 독서포럼'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가 낯선 도시 포항에서 클래식북스를 연 이유는 뭘까?

"우연이었습니다. 이전에 독서모임 등을 함께 했던 지인이 이곳에 건물을 구입했고, 포항에 '의미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왔습니다. 저 또한 도시마다 책과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 카페가 한두 개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기에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보증금이 없다는 장점도 있었지요.(웃음)"

보통의 카페와는 다른 분위기에 어색해하는 손님들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과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오셔서 클래식북스를 즐기시면 됩니다. 한두 번만 와보면 여기가 특정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전화번호 등을 남겨 우리가 만드는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분들이 요즘은 2천명쯤 됩니다"라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조신영씨는 어릴 때부터 철학과 인문학, 고전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고전을 통해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조씨에게 SLC연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학생이 되는 공부모임이자 친교의 공간이다.

사업가와 교사, 의사와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SLC연구회 회원들은 책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고민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더 나은 삶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이 토론을 할 때면 바흐와 헨델, 멘델스존과 쇼스타코비치가 배경이 돼준다.

조신영 작가가 턴테이블에 올릴 클래식 음반을 고르고 있다.
 조신영 작가가 턴테이블에 올릴 클래식 음반을 고르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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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비추는 빛'은 무얼까?

클래식북스는 문을 여는 순간부터 폐점할 때까지 고전음악이 흐르는 스피커를 끄지 않는다. 관악기와 현악기의 조용한 하모니는 독서의 집중력을 높이는데도 도움을 준다.

조신영 씨를 포함한 SLC연구회 회원들은 "한 시간의 독서로 가라앉지 않는 슬픔은 없다"라는 문장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클래식북스가 발행한 뉴스레터에 실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모두 다 꽃'이란 작품에 등장하는 '빛'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장미는 어떻게 심장을 열어
모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주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의 격려 때문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언제까지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책에서 멀어지고 있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이들이 책 속에서 '길'을 발견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하피즈가 말한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빛'이란 SLC연구회가 읽고 있는 '고전'과 동일한 의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조신영씨는 "클래식북스와 같은 곳이 포항만이 아닌 다른 도시에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수익만을 창출하는 카페가 아닌 책과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문화공간도 몇 개쯤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덧붙일 의견이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클래식북스, #조신영, #포항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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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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