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로맨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메인 포스터.

일본 로맨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메인 포스터. ⓒ NEW


01.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스미노 요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소설이 국내에 정식 출간되던 올해 4월만 해도 예사롭지 않은 타이틀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을 정도. 푸른 하늘 아래에 아련하게 흩날리던 벚꽃을 배경으로 한 표지와 어울리지 않는 문구,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독자들에게 호기심 혹은 거부감을 주었다. 동일한 타이틀을 이어가는 영화 역시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누군가는 식인을 소재로 하는 고어물을 떠올리며, 또 다른 누군가는 높은 수위의 공포물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전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서 흩날리는, 아련한 벚꽃과는 역시 별개로 말이다. 타이틀의 어떤 부분이 고약하게 느껴지게 되는 일인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인 '췌장'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인간의 장기 일부를 '먹고 싶다'는 서술적 표현 때문일까? 물론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두 용어의 만남에서 원초적인 거부감이 발생한다는 건 여전한 사실이다.

02.

타이틀에서 기인한 작품에 대한 거리감은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직접 경험하고 나면 완전히 생각은 바뀌게 된다. 어떤 매체를 통해 이 작품을 먼저 접하든 양쪽 모두는 과거 일본 멜로/로맨스 장르의 작품들이 가진 고유의 감성을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에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섬세한 시선 혹은 잔잔한 분위기와 같은 것. 최근 일본 드라마 작품들이 <동경가족>(2013)이나 <행복 목욕탕>(2017)처럼 가족에 관해 이야기했던 작품들과 조금은 다른 지점의 것이다.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주어진 하루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같다고 생각하며 모두에게 비밀로 한 채 마지막까지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는 사쿠라(하마베 미나미 역). 우연한 기회에 그런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쿠라의 삶에 관여하게 되어버린 나(키타무라 타쿠미 역). 우정과 사랑의 경계에 있는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이 작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다루고 있는 주된 내용이다.

 어쩐지 겉으로 보기에는 영화의 분위기와 타이틀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다.

어쩐지 겉으로 보기에는 영화의 분위기와 타이틀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다. ⓒ NEW


03.

영화는 학창시절 도서 위원이었던 주인공이 같은 학교의 선생님으로 부임해 도서관 정리를 맡게 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12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사쿠라와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 과거의 이야기와 그녀와의 추억만이 남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사실 이 부분의 내용은 원작에는 없는 이야기를 영화적 표현을 위해 재구성한 것인데, 홀로 남게 된 이의 기억을 통해 과거를 회상한다는 형식으로 인해 영화는 조금 더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게 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쿄코(키타가와 케이코 역)와 연결되는 이야기도 이와 같은 형식을 통해 극적인 표현이 가능해진다. 원작에서 설정된 주인공의 성격 자체가 타인에게 흥미가 없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켜온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사쿠라로 인해 그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04.

이 작품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의 등장과 함께 가장 먼저 제시되는 정보가 인물의 이름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 영화의 특징적인 부분이라 할만하다. 원작의 경우에는 작품의 후반부에 사쿠라가 써 내려간 공병 문고 속에서야 그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영화 역시 그런 설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런 방식의 표현은 그 표현 자체가 어쩌면 이 영화의 시선 자체를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만드는데, 항상 소극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하는 그의 캐릭터를 내포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를 바라보는 사쿠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미 마음속에 자라났지만, 마지막까지 차마 할 수 없었던 감정처럼 말이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타이틀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끝까지 숨겨져 있었던 이 작품의 진면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듯싶기도 하고 말이다.

05.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마저 클래식함을 잃지 않는(최근에 등장하는 대부분 메신저, 메시지 전송의 모습은 기기를 직접 들여다보는 방식이 아니라, 화면 위에 덧입혀지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매력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두 사람의 결말이 지어지는 것이 유치한 느낌이 아니라 이 작품의 핵심처럼 느껴지는 이유 역시 과정을 그려내는 작품의 힘 때문이다. 이 부분의 연출과 내용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직접 언급할 수 없지만, 감독은 이 부분을 위해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그 사건에 대한 복선을 수면 아래에서 치밀하게 설정하고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관객들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까닭은,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문장의 뜻이 제시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쿠라의 상태가 보편적인 결말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하루의 가치는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사쿠라의 초반부 대사 속에도 그런 암시가 충분히 담겨있지만, 그 순간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관객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하게 느끼도록 남겨놓는 감독의 인내와 의뭉스러운 연출이 인상적이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일로 인한 것이었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일로 인한 것이었다. ⓒ NEW


06.

두 사람이 외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주인공 나와 달리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가득한 사쿠라에게 외톨이라는 단어가 적절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이 곧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는 사소한 일에도 애써 괜찮은 척을 하는 부모님과 자신의 비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녀는 정말로 조금의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을까? 자신의 선택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라고는 하나, 처음부터 혼자인 채로 지내온 나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어렵게 꺼냈던 죽기 싫다는 그녀의 한마디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구슬프게 들린다. 공병 노트 따위 처음부터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게 아닌가.

07.

과거에도 그랬듯이 일본 멜로 장르는 관객들의 취향에 의해 선택이 좌우되기 쉽다. 좋아하는 관객들은 감정을 숨죽여가면서까지 몰입하는가 하면, 싫어하는 관객들은 상종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그 편차가 크다는 뜻이다. 이번 작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역시 동류의 작품으로 이 부분의 취향적인 지점만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의외로 괜찮은 작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는 말 속에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비현실적이고 간절한 욕망과 사랑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무비 너의췌장을먹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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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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