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씨가 지난 25일 MBC 파업콘서트에서 발언한 내용

이하늘씨가 지난 25일 MBC 파업콘서트에서 발언한 내용 ⓒ 오마이뉴스


'Motherfucker만 써도 이젠 혐이라 하는 시대, shit!'

얼마 전 그룹 에픽하이의 새 앨범에 실려 논란을 빚은 송민호의 랩 가사다. 이전에 그가 여성 혐오를 했다고 비판을 받은 건 '마더 퍼커(Motherfucker)' 때문이 아니라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 때문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송민호는 부정했지만 과연 '마더 퍼커'라는 단어에는 혐오가 담겨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일찍이 프로이트가 밝혔듯 근대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들에게 엄마는 절대로 성애적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엄마는 '아버지의 소유물'이고 그런 어머니에게 성적 욕망을 품는 것은 아버지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세 공포를 통해 남자아이의 어머니를 향한 성애적 감정은 억눌러지고 대신 그는 이후에 어머니를 대체할 다른 여성을 만나 가계를 이룬다.

'마더 퍼커'가 심각한 욕설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엄마와 성관계를 맺는 남자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정치 체계를 붕괴시키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굳건한 남성 연대를 해치는 배신자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 이러한 구도에서 엄마/아내는 경쟁과 욕망의 대상이 될 뿐 주체가 되진 못한다. 남성 중심의 가계를 재생산하는 도구(그래서 엄마와 아내에게는 강력한 '성 역할'이 부여된다), 그 이상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즉 '마더 퍼커'가 욕설로 기능하는 상황은 여성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사회 시스템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마 송민호는 '마더 퍼커'가 가진 이런 함의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몰라도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단어가 욕이 되는 사회에 산다고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성별 때문에 대상화와 도구화의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다르다. 자신에게 주어진 억압의 굴레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그것에 갇혀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감하게 관찰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여성과 남성 사이에 놓인 권력의 불평등이다. 송민호는 한창 산부인과 랩으로 논란이 일었을 무렵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내가 보기엔 안 한 것 같다.

 쇼미더머니에서 '여성혐오' 가사로 비판을 받은 송민호씨

쇼미더머니에서 '여성혐오' 가사로 비판을 받은 송민호씨 ⓒ 엠넷


문제가 된 이하늘의 발언

문제의 표현 '마더 퍼커'는 의외의 공간에서 또다시 등장했다. 바로 25일 열린 MBC 파업콘서트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의 현장에서다. 이날 축하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오른 DJ DOC의 멤버 이하늘은 이명박, 이정현, 홍준표에 대해 '마더 퍼커'라는 욕설을 날렸다. 자신들의 정치적 연대를 파괴하는 적대 세력에게 향한 표현이었으니 그야말로 정석적인 사용 방식을 보였다 할 만하다.

그런데 이하늘이 언급한 인물이 또 하나 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이다. 조 전 장관은 당시 열린 청문회에서의 위증 사실이 드러나 처벌을 받았지만 최근 항소심 공판에서 '선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증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쳐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이하늘은 그런 그녀를 '마더 퍼커' 대신 '국썅(국민 썅년)'이라고 불렀다. 앞서 언급했듯 '마더 퍼커'가 욕으로 기능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연대를 해치는 '주체'조차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 전 장관은 그냥 '상스러운 여성'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 같은 표현은 불쾌함과 동시에 매우 의아하다.

이하늘이 말했듯 조윤선 전 장관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질 줄 모르고 '잔머리'를 굴렸기에 비판 받았다. 즉 조 전 장관의 문제는 그녀가 여성인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부정의한 권력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을 비판하면서 이하늘은 그녀의 성별을 멸시하는 단어를 썼을까. 생각해보자. 가령 흑인 정치인이 엄청난 부패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를 '니거(Nigger,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흑인을 멸시하는 지칭)'라고 부르며 비난해도 될까? 아마 발언자는 최소한 인종 차별자로 지목되어 사회적 매장을 당할 것이다.

혐오 발언이 만들어 내는 효과

 'ㅇㅇ녀'라는 명명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남성중심적인 시선을 고착화한다

'ㅇㅇ녀'라는 명명은 여성을 대상화하고 남성중심적인 시선을 고착화한다 ⓒ pixabay


조윤선 전 장관은 자격 없는 공직자였지 자격 없는 여성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문제를 그녀가 '상스러운 여성'이기 때문인 것처럼 만드나. 왜 조 전 장관의 지위와 의무가 아닌 성별을 부각시키는 욕설을 할까. 이하늘의 발언이 매우 문제적인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언설이 여성을 문제가 있는 '썅년'과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누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구도가 그리 낯설진 않다. 오래전부터 이어온 '성녀/창녀'의 틀이 그렇고 최근의 사례를 찾자면 '된장녀·김치녀/개념녀' 프레임이 있다. 남성들은 이렇게 여성을 하나의 성별 집단으로 호명한 후 두 그룹으로 분리시키고 손쉽게 통제한다. 계속해서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그어진, 여성으로서 넘어선 안 될 선을 주지시키면서 말이다.

이 같은 발언의 효과는 이어진 이하늘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그런 '썅년'을 만날까봐 결혼을 못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그런 여성이 조윤선 한 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고 교활한 사람이 '썅년'이 되는 걸까. 국정을 파탄시키고 국회에서 위증 정도는 해야 할까. 이하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기준을 정하는 권력은 오직 남성인 그에게만 존재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OO녀 프레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OO녀'으로 호명될 수 있기에 여성은 계속해서 남자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구도에서 남자들은 그만큼 부당한 힘을 취한다. 아마 이하늘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한 사람도 '썅년'이라며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다

DJ DOC, MBC파업콘서트 열창 2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 -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DJ DOC가 '수취인불명' '삐걱삐걱' 등을 열창하고 있다.

▲ DJ DOC, MBC파업콘서트 열창 지난 25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 -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DJ DOC가 '수취인불명' '삐걱삐걱' 등을 열창하고 있다. ⓒ 권우성


물론 이하늘이 이처럼 복잡한 계산을 깔고 말을 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한 발언은 단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꾸로 언어는 우리가 사는 현실을 구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말은 공동체가 지닌 끔찍함의 증거 정도로 남겨질 수 없다. 언급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 없이 'OO녀'라는 말이 횡행하는 사회에선 그 말이 애초에 지닌 목적, 여성에 대한 분리와 통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껏 '김치녀'가 되지 않기 위해 코르셋으로 자신의 일상을 조이며 살아온 여성 개개인들의 구체적인 삶이 그 방증이다. 때문에 '마더 퍼커'든 '썅년'이든 혐오 발언을 하지 말자는 것은 단지 도덕적인 언어 생활을 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개념의 반복된 사용은 그것이 전제한 편견과 낙인 그리고 이를 통해 구성된 체제를 견고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다.

이번 사태가 더 특별히 씁쓸했던 것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투쟁의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촛불 집회와 정권 교체의 동력으로 다시 시작된 언론 파업은 이전과는 다른 제대로 된 민주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과 맞닿아 있다. 때문에 투쟁의 방식과 발언의 내용은 중요하다. 무엇이 되고 안 되는지를 공동체가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사소한 해프닝이 아니다.

나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 그리고 이에 기반한 통제를 아무런 문제로 여기지 않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다. 일단 내가 설 자리도 없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개인들의 평등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누군가는 손쉽게 멸시되고 그래서 배제되는 곳이 아니다. 이하늘은 이미 작년 <수취인분명>의 가사로 한 차례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 다시 반복된 문제이니 만큼 이번에는 더욱 책임있는 대응을 요구한다.

여성혐오 혐오발언 페미니즘 이하늘 송민호
댓글7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