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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아야코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 <타인은 나를 모른다>
 소노 아야코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 <타인은 나를 모른다>
ⓒ 책읽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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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많이 소개하고 싶었다. 이 좋은 글을. 어디 기대고 싶은 데 기댈 데가 없을 때, "괜찮다"고 토닥임을 받고 싶을 때 옆에 없는 그 누군가를 찾기 보다 이 책 한 권이면 족하다 싶었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 이야기다.

한 후배는 '인생 좀 살아본 태도로(?) 하나마나한 말' 같은 이런 에세이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 하나마나한 말들을 내가 필요할 때, 내 앞에서 해주는 사람이 늘 있는 건 아니잖나. 내가 이런 류의 에세이책을 곁에 두고 틈날 때마다 읽는 이유다.

상암동 북바이북에서 우연히 집어 들게 된 책. 소노 아야코라는 다소 낯선 에세이스트. 그의 짤막짤막한 글에 내 마음 한 켠을 덜컥 내줬다. 책 뒤표지에 적힌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라는 문구부터 취향저격이었다. 늘 관계에 고민하고 휘둘리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맞춤형 책이었던 것.

1부 나답게가 중요해, 2부 고통은 뒤집어볼 일, 3부 타인의 오해, 4부 보통의 행복으로 구성된 이 책은 화려한 미문은 없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담백한 어투로 읽은 이의 마음을 어른다. 가령 이런 표현들.

"오기를 부려서라도 나보다 뛰어난 타인의 장점을 깎아내리려는 심리가 있다. 자기만의 토대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일에서 맛 본 기쁨, 중에서.
"남과의 비교를 중단하면 자유로워진다. 자연스레 막힘없는 나의 생활을 키워나가는 힘이 생긴다. 나만의 특기가 발견되는 것이다." - 자유로워진다, 중에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미의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기 전까지 막연히 흘러가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 애쓰지 않는다, 중에서.

그런데 말이다. 그의 또다른 에세이 <타인은 나를 모른다>를 사들고 지하철을 타던 날, 이런 트윗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소노 아야코 에세이가 그렇게 잘 팔리는 줄은 몰랐는데 놀랍군... 평소에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인지 우리나라에 잘 안 알려져서 그런가' 이런 내용이었다.

가볍게 들고 보기 좋은 에세이 작가, 일본에서는...

뭐지? 평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기에, 놀랍다는 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일본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그가 한 말들을 알아보기로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래는 <오마이뉴스>에 국제뉴스를 쓰는 윤현 시민기자가 정리해준 내용이다(최근 순으로 정리했다).

1. <산케이신문> 기고문 (2015년 2월 11일)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대비해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올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외국인들은 일본인과 분리되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함.

"나는 남아공의 경우를 볼 때 백인, 아시아인, 흑인이 따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흑인은 기본적으로 대가족의 개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아파트에 입주하면 모든 가족 구성원을 데려와 한 가구에 20~30명이 살기도 한다. 그러나 백인이나 아시아인은 소가족의 개념을 갖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백인이나 아시아인이 아파트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온다."

당시 기고문 보도 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비판이 쏟아짐. 특히 주일 남아공 대사가 <산케이신문>에 항의 서한을 보내 "소노 아야코의 칼럼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정책)'를 옹호하는 것과 다름없다. 수치스럽고 터무니없는 제안이며, 아파르트헤이트는 인류에 대한 범죄로써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주장함.

이에 대해 <산케이신문>은 "소노 아야코의 칼럼은 개인적 경험에 바탕한 의견을 담은 것이며 신문사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를 비롯한 모든 차별을 반대한다"라고 해명함. 소노 아야코는 "생활 관습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은 어렵다는 개인의 경험을 쓴 것"이라고 밝힘. 

2. <주간 현대> 인터뷰 (2013년 8월)
여성이 출산 후에도 직장을 다니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자녀를 보육시설에 맡기지 말고 가정에서 직접 양육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함. 당시 소노 아야코는 아베 정권의 교육 개혁위원회를 역임하고 있었으며, 당시 일본 정부가 2020년까지 여성의 내각 비율을 30%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한 직후 나오면서 큰 논란이 일었음.

3. <산케이신문> 인터뷰 (2004년)
당시 태풍으로 인한 피난민들이 정부의 처우에 불만을 나타내자 "피난 왔으면 바닥에 신문지 깔고 자는 것이 당연. 식사도 제공할 필요 없다. 피난하면서 침구도 챙기지 않고 구호물자에 의존하는 것은 격식이 떨어진다"고 주장함.

4. 알베르토 후지모리 환영 논란 (2000년)
일본 출신의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각종 부정부패와 헌법유린, 선거조작 등으로 탄핵당한 후 일본으로 도피하자 소노 아야코가 숙식을 제공해 비판을 받음. 당시 소노 아야코는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사정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함.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다시 페루로 돌아갔다가 체포되어 2010년에 징역 25년형 선고받음.

이쯤되면 소노 아야코가 누군지 원점에서부터 궁금해진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책에는 이렇게 나온다.

"소노 아야코는 소설가. <멀리서 온 손님>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선천적인 고도근시를 앓았기에 작품을 통해 표현된 어린시절은 늘 어둡고 폐쇄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조리는 소설가로서 성장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소설가에 대한 편견이 심하던 시대였으나 반골 기질인 소노 아야코는 망설임 없이 소설가의 길을 선택하였다.

한편 평생 독신을 꿈꾸었지만 같은 문학 동인지 멤버였던 미우라 슈몬을 만나 22세의 나이에 결혼하여 지금까지 평온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소노 아야코는 50대에 이르러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위기를 맞는다. 좋지 않은 눈 상태에 중심성망막염이 더해져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절망을 경험한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안경 없이도 또렷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본다..."

윤현 기자가 알려준 저자 정보는 위와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1931년 9월 17일 태어난 소노 아야코는 성심여자대학(미션스쿨)을 나와 2013년 아베 정권의 교육 패널을 역임했고, 자민당의 오랜 자문 활동을 했다. 자민당에 오랫동안 조언을 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보수 작가. 남편과 함께 정기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는 거다. 작가로서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민당 자문역을 자진하차했단다.

"정치 성향에서 대해서는 비판할 부분들은 있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니. 일본 총리와 일본 관리들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책임이 가장 큰 A급 전범 14명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하나다. 그 자체가 일본이 전쟁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신사 참배를 함으로써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되는 사안이다. 책을 낸 도서출판 리수에 확인하고 싶었다. 김현정 대표와 26일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 소노 아야코가 일본에서 한 발언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 궁금해 그 내용을 찾아봤다. 다소 놀라운 내용이었다. 리수에서는 소노 아야코 책을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어떤 책들을 내게 됐는지 궁금하다.
"소노 아야코를 처음 접한 것은 2001년부터입니다. 그 후로 이 작가의 에세이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주로 '나이듦의 지혜'를 다루는 내용의 책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실버 출판이라는 분야가 생소했던 시절이라 그러한 내용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 소노 아야코의 보수적인 발언 그리고 신사 참배 사실 등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출판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한 건가. 일본 내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인물의 책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텐데.
"보수적인 발언을 처음 접한 것은 소노 아야코 선생님 책을 낸 뒤 10여 년 후였습니다. 이분이 맞나 싶었는데... 일본의 보수 성향을 지닌 작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사 참배 사실은 몰랐는데, 인터뷰 문항을 받은 후 내용을 확인해보니 가톨릭신자로서 (전범과 일반 전몰자를 분리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대체추도시설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전범을 뺀 야스쿠니신사의 대체추도시설은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에 제안한 내용이었으나,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이 무시한 사항입니다(대체추도시설 찬성 입장과 별개로 소노 아야코는 남편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왔다 - 기자말)."

-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코 아야코 글의 매력 같은 게 있다면(독자들이 생각해줬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보수적인 성향은 맞지만, 우리가 펴내는 에세이에서는 부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저자의 에세이는 삶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고, 일상적인 예와 함께 촌철살인 예리한 언어로 표현된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 정치적인 성향보다는 그분의 종교적인 부분,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을 장점으로 봤다는 건가.
"네. 정치 성향에서 대해 비판할 부분들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측면에서 볼 때는. 그렇다고 너무 보수우익으로 치부하는 식의 여론몰이는 염려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소노 아야코는 '결점을 보여주면 편안해진다' 대목에서 이렇게 썼다.

"결점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이상하게도 친구들이 늘어난다. 사람들은 나의 장점에만 호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결점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중략)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가장 큰 체력소모는 결점을 감추는 데 소비된다. 타인에게 나의 결점을 감추느라 거짓말을 하게 되고 나중에 이것이 탄로나 서로 곤혹스러워진다. 차라리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사전에 절약할 수 있다면 각자의 장점을 통해 더 큰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운이 생기는 것이다."

글과는 또다른 작가의 새로운 면이 알려져 더 많은 한국 팬들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아니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책읽는고양이(2016)


태그:#소노 아야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약간의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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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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