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묵>

ⓒ CJ 엔터테인먼트


<침묵>은 유명 여가수인 약혼녀, 유나(이하늬 분)가 살해당하고 용의자로 자신의 딸, 임미라(이수경 분)이 지목되자 딸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남자, 임태산 (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전반은 술에 취해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임미라의 기억을 둘러싼 미스터리, 그리고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헌신을 그린 후반의 가족 드라마로 구성된다. 간단히 말하면 전반부는 실패고 후반부는 성공이다.

그럼에도 <침묵>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정지우 감독의 장기가 또 한 번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정지우는 감정의 클로즈업을 잘 잡는 감독이다. 그는 가깝기에 형성되는 다층적인 감정, 이를테면 증오/사랑, 질투/연민 등 마음의 거리를 배신하는 반어적 감정들을 잘 잡아낸다. <은교>에서의 지우와 은교가 그랬고 <해피엔드>에서의 민기가 보라에게 갖는 증오적 사랑이 그랬다.

 영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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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작품들은 수려하게 짜인 감정적 섬세함보다 서스펜스가 약하다. <해피 엔드>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영화를 이루는 살인 사건이 궁극적으로 부부, 즉 내밀한 관계의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해피 엔드>에서도 살인의 과정 자체 보다 그 행위를 초래한 남자의 분노와 감정적 프롤로그가 치밀하게 그려진다. 이번 작품, <침묵>에서 정지우 감독의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추천 하고 싶은 영화, 혹은 아닌 영화라고 선을 그어 말하기가 힘들다. 가족 드라마가 좋은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만족스러울 테지만, 미스터리/스릴러의 팬이라면 전반부를 인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령, 미스터리의 사건을 재구성함에 있어 주요 인물들의 플래시 백이 이어지는 데, 영화는 하나의(플래시 백) 에피소드에서 다음 인물의 에피소드로 질주하듯 전진한다. 에피소드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모티브나 단서 혹은 심증 등이 생략되거나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은 사건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가상의 이야기 전개를 조립하는 것이 아닌 나열 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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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후 기자회견에서 정지우 감독은 관객들이 "법정 드라마 장르의 범인 찾기에서 오는 재미를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대로 <침묵>의 상당 부분이 법정 장면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범인 찾기'의 전율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영화 전반부의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매끈하게 연결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분명 <침묵>은 보는 재미를 주는 영화다. 영화의 쾌감은 아버지 역할을 맡은 최민식의 호연이 주도하는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기존의 한국 영화, 특히 아버지나 어머니가 주인공인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유도하는 억지 신파를 <침묵>은 최대한 자제한다. 대신, 여러 인물의 시점이 뒤섞여 있는 전반이 중반부부터 자수성가 사업가인 주인공의 계산적이고 냉철한 시점으로 변환되면서 영화가 동력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선택, 모티브 등이 기존의 신화적 존재의 '아버지' 에서 오는 신파가 아닌, 입체적이고 이해 가능한 인물의 선택이기에 더욱 처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침묵>은 좋은 맺음을 가진 영화다. 대부분의 실패한 영화들의 공통된 경향 중 하나는 강력한 도입부에 비해 미약한 결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침묵>은 약간의 집중력만 잃지 않는다면 수작으로 기억될 영화임이 분명하다.

 영화 <침묵>

영화 <침묵> ⓒ CJ 엔터테인먼트



최민식 침묵 정지우 박신혜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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