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가운데 한 대목이다. 고 김광석은 군에 입대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큰 형을 기억하며 쓴 곡이라고 했었는데, 이 곡은 내게도 참 각별한 기억이 서린 곡이다.

솔직히 입대 전까지만 해도 뭐 이런 노래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이 곡을 강원도 훈련소에서 다시 들었다. 그때가 1993년 7월이었는데, 2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마침 그날 비가 말 그대로 억수로 쏟아졌다. 비 때문에 훈련은 모두 취소되고 막사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확성기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 이 곡을 듣자 나도 모르게 내무반 밖으로 뛰쳐나왔다. 곡을 더 잘 듣고 싶어서 그랬다. 곡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던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고, 그 비를 다 맞고 있었지만, 그땐 그런 줄 몰랐다.

전역한 후에도 이 곡만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났고, 그 시절을 생각하며 남몰래 눈물지었다. 이런 기억 때문이었을까? 고 김광석의 죽음은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세상을 떠난 시점이 내가 전역한 지 4개월이 채 안 된 시점이라 그의 죽음은 흡사 큰 형의 죽음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가 떠난 날,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그냥 목 놓아 울었다.

19일 오후 방송된 JT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아래 <스포트라이트>)를 보면서 새삼 훈련소 때 기억이 떠올랐다. 이날 <스포트라이트>는 '기록과 증언으로 재구성한 김광석 미스터리' 편을 통해 고 김광석과 딸 서연 양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했다.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의 불씨 되지 않았을까?

 19일 오후 방송된 JT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고 김광석 타살 논란을 분석했다.

19일 오후 방송된 JT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고 김광석 타살 논란을 분석했다. ⓒ JTBC


<스포트라이트>는 부제에서 밝혔듯 가급적 감상을 배제하고 기록과 증언으로 고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 행적을 추적했다. 속된 말로 '얼굴 팔린' 연예인들이 얽힌 사건엔 늘 선정성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고 김광석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그의 아내 서해순씨가 다소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정황이 곳곳에서 불거졌다. 여기에 서연 양의 사망 사실이 최근에야 알려졌고, 여기에도 역시 서씨의 사후대처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이 주제를 다루기에 따라서는 선정성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선정성의 함정을 비껴가기 위해 노력했다. 취재진은 고 김광석의 주변 인물을 찾아 증언을 확보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검감정서와 그가 남긴 일기장을 입수해 공개했다. 여기에 고 김광석이 숨진 상황을 재현하고,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국과수)과 박종태 전남대 법의학 교수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했다. 기록의 결론은 간단명료했다. 고 김광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여기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박종태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체중이 끈에 실려서 사망하는 의사의 형태…. 여러 검사 소견들도 사인을 (달리) 고려할만한 것은 없습니다."

고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싸고 타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부검감정서 내용은 보는 이를 허탈하게 만든다. 물론 부검감정서의 결론이 진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고 백남기 농민이 숨을 거둔 직후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가 사망진단서에 고인의 사인을 병사로 기재해 논란이 일었듯, 기록은 조작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포트라이트> 취재결과 아내 서씨의 진술과 부검감정서의 결론이 맞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찰이 자살현장에서 발견된 두 종류의 담배와 맥주병에서 DNA 검사나 타액 검사도 하지 않았고, 주변인을 상대로 탐문 수사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점이 자살이라는 부검감정서의 결론을 뒤집을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의혹 제기 하지만...

 19일 오후 방송된 JT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고 김광석이 남긴 일기를 입수해 보도했다. 고 김광석은 행복한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일 오후 방송된 JT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고 김광석이 남긴 일기를 입수해 보도했다. 고 김광석은 행복한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JTBC


JTBC <스포트라이트> '기록과 증언으로 재구성한 김광석 미스터리' 편은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팩트'에 충실히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보는 내내 슬펐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그의 죽음의 본질이 단순 자살이든 감정타살이든 그가 이 세상에 살면서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산 것 같지는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고인의 사인 논란이 일어난 것 자체가 원망스럽다. 사인 논란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고인이 내밀하게만 간직했을 마음의 상처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고인의 아내 서씨를 사실상의 용의자로 몰고자 하는 분위기가 있다. 개인적으로 서씨를 감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서씨가 '경황이 없다'는 이유로 고 김서연 양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는 건, 우리 사회 제도를 적극적으로 기망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서씨의 행동거지가 세상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점과, 그를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은 여론재판의 용의 선상에 올려도 좋다는 것인가?

물론 의혹 제기는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한다. 또 언론의 취재가 미치지 못하는 금단의 영역은 존재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특정한 개인을 향해 살인혐의를 제기하려면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강력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법정에서도 살인 혐의는 중대하게 다루지만,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에게 형벌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확실한 증거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막연히 서씨가 의심스럽다고만 주장하는 건, 근거가 취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JTBC <스포트라이트>는 부검감정서를 입수했고, 주변인들과 당시 수사 경찰, 부검전문의, 심리 부검 전문가 등에 자문을 의뢰해 고 김광석의 죽음을 재조명하고자 분투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역시, 이 미스터리의 진실을 완전히 밝혀내지는 못했다. 어떤 주장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판단하는 일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았다.

고인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언제 들어도 심금을 울리는 명곡들을 남기고 떠났다. 그런데 그의 저작권 수입이 사회를 기망한 사람에게 간다는 건 썩 유쾌하지 않다. 경찰이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만큼, 더 이상 논란이 일지 않도록 수사력을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또 작품 저작권과 관련해서도, 그가 남긴 곡들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문화계와 관련 부처가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등병의 편지'를 반복해서 들어야겠다.

김광석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이등병의 편지 서해순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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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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