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가 유행어인 이유는 많은 사람이 그 말을 즐겨 쓰기 때문이다. 유행가가 유행가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어떤 노래가 좋으면 즐겨 따라 부른다. 예전에는 친구끼리 노래방에서 부르고 마는 정도였다면 요즘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많은 플랫폼을 통해 커버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커버 영상이 원곡 가수의 영상만큼이나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사랑받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어떤 노래가 대세라는 걸 증명하는 비공식 지표가 바로 '커버 곡'(원곡 가수의 노래를 다른 이가 부름)이 아닐까 싶다. 음원차트 순위, 음반판매량 같은 공식 지표보다 어쩌면 인기에 대한 '체감도'는 커버 곡이 온라인에 얼마나 많이 게재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되돌아본 'Let It Go' 열풍

손승연 가수 손승연이 영화 <겨울왕국> OST 'Let It Go'를 부르고 있다.

유튜브 채널 'FORTUNE' 영상 갈무리. 가수 손승연이 영화 <겨울왕국> OST 'Let It Go'를 부르고 있다. ⓒ @FORTUNE



요즘은 가수들도 커버 열풍에 활발히 동참하는 추세다. 예전에는 노래 잘하는 일반인의 커버 영상이 다수였다면 지금은 가수가 다른 가수의 인기곡을 부르고 그 영상을 팬들에게 선물하거나 가창력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쓴다. 2014년을 떠올려보라. 영화 <겨울왕국>의 OST 'Let It Go'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커버 영상을 낳았다. 손승연, 에일리, 효린, 은가은, 이해리, 한동근, 디아, 투빅, 박현빈 등 쟁쟁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가수들도 앞다퉈 이 노래의 커버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했다.

그중 손승연의 영상은 미국의 연예매체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Entertainment Weekly)'가 선정한 'Let it go' 커버 베스트 톱10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가수로는 유일하게 10위에 들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대중에게 낯선 이름이었던 가수 은가은은 'Let it go' 커버 영상으로 큰 주목을 받아, 이후 SBS <스타킹>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박현빈은 트로트 버전으로 불러서 신선한 재미를 주었고, 15&(백예린·박지민)는 2014년 연말 SBS <가요대전> 무대에서 'Let it go'를 열창했다.

커버 곡은 유명 가수에겐 신곡을 내지 않고도 좋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다. 또, 신곡을 내고 싶어도 못 내는 무명 가수에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다. 그렇다면 요즘 가장 많이 커버되는 노래는 무엇일까. 가창으로는 윤종신의 '좋니', 퍼포먼스로는 선미의 '가시나'의 커버 영상이 아닐까 싶다.

미교의 여자버전 '좋니' 들어봤니?

수지 SBS <박진영의 파티피플>에 출연한 수지가 윤종신의 '좋니'(미교 버전)를 부르고 있다.

SBS <박진영의 파티피플>에 출연한 수지가 윤종신의 '좋니'(미교 버전)를 부르고 있다. ⓒ SBS


윤종신의 '좋니'는 현재 음원차트 상위권에서 굳건히 롱런 중인, 2017년 하반기 최대 히트곡이다. 그 인기는 역시 커버곡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한 SBS <박진영의 파티피플>에서는 수지가 게스트로 출연해 '좋니'의 여자버전을 불렀는데, 이 영상은 공개 하루 만에 300만 뷰를 돌파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여기서 잠깐, 수지가 부른 여자버전의 '좋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버전은 가수 미교가 지난 8월 1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윤종신의 원곡에 대한 답가 형태로 개사하여 부른 것으로, 공개와 동시에 폭발적인 속도로 퍼져나갔다. 19일 오후 기준으로 조회수가 723만이 넘는다. 원곡 가수 윤종신은 미교가 부른 영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리포스팅하며 "미교, 잘 부르시네요. 감사해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제 괜찮니 너무 힘들었잖아"로 시작하는, 남자의 마음을 담은 윤종신의 원곡은 미교의 개사 버전에서 "이제 괜찮아 너무 힘들었었어"로 바뀐다. 소설 밖의 소설처럼 원곡 밖에 놓인 여자의 입장을 밝히는 '답가'인 것이다. 흥미로운 개사가 아닐 수 없다. 보통 가사를 바꾸는 개사란 걸 할 때, '그'를 '그녀'라고 바꾸는 식의 소극적인 형태가 대부분인데 반해, 미교의 여자버전 '좋니'는 '양측 입장'을 완성시킴으로써 이별의 슬픔을 배가한다.

이 새로운 '스토리'의 결말은 짠하다. 남자는 헤어진 여자가 자신을 너무 쉽게 잊은 채 다른 사람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니 여자도 사실 남자를 쉽게 잊지 못한 채 깊이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대한 여성의 심리가 미교 버전의 가사에 잘 담겼고, 이에 공감하는 누리꾼들은 "미교 버전도 너무 좋아서 매일 듣고 있다", "음원으로 나오면 좋겠다", "가사가 너무 내 마음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남자버전) "좋으니 그 사람/ 솔직히 견디기 버거워/ 네가 조금 더 힘들면 좋겠어/ 진짜 조금 내 십 분의 일 만이라도/ 아프다 행복해줘"
(여자버전) "잘 있어 잘 지내/ 솔직히 보고 싶어/ 네가 정말 행복하면 좋겠어/ 진짜 조금 아주 가끔 보고 싶어질 때/ 아프다 행복해줘"

(남자버전) "좋아 정말 좋으니/ 딱 잊기 좋은 추억 정도니/ 난 딱 알맞게 사랑하지 못한/ 뒤끝 있는 너의 예전 남자친구일 뿐/ 스쳤던 그저 그런 사랑"
(여자버전) "아파 정말 아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라서/ 난 더 솔직하게 사랑하지 못한/ 뒤끝 있는 후회만 남은 사랑일 뿐/ 스쳤던 아픈 그런 사랑"

여자버전은 원곡 노랫말의 분위기와 어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원곡 속 화자의 반대편 입장을 담아냈다. 단순히 자신의 창법으로 다시 부르는 흔한 커버가 아닌, 스토리를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개사 커버'는 꽤 매력적이다.


커버곡 좋니 윤종신 미교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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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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