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디펜딩 챔피언' 기업은행의 홈 개막전을 망쳤다.

이도희 감독이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18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V리그 여자부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1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5-20,19-25,25-21,21-25,15-10)로 승리했다. 현대건설은 시즌 개막 후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승점 4점으로 여자부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지난 14일 시즌 개막 후 여자부 4경기는 모두 풀세트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기업은행의 홈개막전이 시작되기 전, 화성 실내 체육관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바로 기업은행 유니폼을 입고 3년 동안 두 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V리그 최고의 세터 김사니의 은퇴식이었다. 기업은행은 짧은 팀 역사에서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김사니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결정했고 김사니는 감격에 겨운 듯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화려했던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성인배구 11년 만에 우승 경험한 후 런던올림픽 4강 멤버로 맹활약

 김사니 만큼의 뛰어난 신체조건과 기량을 두루 갖춘 대형 세터가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김사니 만큼의 뛰어난 신체조건과 기량을 두루 갖춘 대형 세터가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 한국배구연맹


1999년 한국 여자배구 청소년 대표팀은 세계 청소년배구 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182cm의 장신세터 김사니는 실업팀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도희와 강혜미의 뒤를 이을 만한 재능에 그들이 갖지 못했던 큰 신장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사니는 현대건설, LG정유 등 대기업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했다.

김사니는 도로공사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주전 세터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당시 겨울리그에는 강혜미-장소연-구민정 트리오가 버틴 무적의 현대건설이 있었다. 프로 출범을 앞두고 선배들이 대거 은퇴를 선언하면서 드디어 봄날이 찾아오나 했지만 김사니의 도로공사는 V리그 원년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프전에서 이효희의 KT&G(현 KGC인삼공사)에게 패하고 말았다.

김사니의 서글픈 2인자 인생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김사니는 2005-2006 시즌에도 도로공사를 챔프전까지 진출시켰지만 '사기유닛' 김연경(상하이)이 등장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넘지 못했고 2006-2007 시즌에는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현대건설에게 덜미를 잡혔다. 2006-2007 시즌이 끝난 후 KT&G로 이적한 김사니는 이적 3년째가 된 2009-2010 시즌 드디어 성인배구 입단 11년 만에 우승의 한을 풀었다.

2010년 1억7000만 원이라는 좋은 대우를 받고 흥국생명으로 이적한 김사니는 2010-2011시즌 '김연경도 없고 황연주(현대건설)도 없는' 흥국생명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면서 최고 세터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2011-2012 시즌 프로배구를 강타한 승부조작 사건이 흥국생명을 덮치면서 팀 분위기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주전 센터와 백업세터를 잃은 흥국생명은 두 시즌 연속 5위에 머물며 부진했다.

소속팀의 부진에도 꾸준히 V리그 정상급 세터로 군림하던 김사니는 자신의 마지막 국제대회였던 2012년 런던 올림픽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V리그에서의 라이벌이기도 한 이숙자와 함께 대표팀 세터로 활약하며 한국을 올림픽 4강으로 이끈 것이다. 어지간한 유럽 선수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좋은 신장에 노련미까지 겸비한 김사니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젊은 선수들을 이끌며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동메달) 이후 여자배구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유럽 무대 경험 후 3년 동안 우승 2회 차지하고 현역 은퇴

2013년 세 번째 FA자격을 얻은 김사니는 유럽 진출의 꿈을 안고 아제르바이잔리그로 진출했다. 기대와 달리 낯선 해외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김사니는 설상가상으로 발목부상까지 당하며 1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자부 최초로 V리그에서 곧바로 유럽 무대에 진출한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김연경의 경우 일본을 거쳐서 터키리그로 진출한 바 있다).

2014년 국내로 돌아온 김사니는 도로공사로 떠난 이효희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기업은행으로 이적했고 이적 첫 시즌부터 챔프전에서 이효희의 도로공사와 맞붙었다. 현존하는 V리그 최고의 세터를 가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김사니는 이 시리즈에서 김희진과 박정아(도로공사), 그리고 외국인 선수 데스티니 후커를 절묘하게 살리는 토스워크로 기업은행의 3연승을 이끌었다. 챔프전 MVP 역시 김사니의 몫이었다.

김사니는 2015-2016 시즌에도 세트 부문 1위(세트당 10.78개)를 차지하며 기업은행을 4년 연속 챔프전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리즈 맥마혼이 시즌 막판 손가락 부상을 당하며 챔프전에 결장했고 기업은행은 현대건설에게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3경기 연속 0-3 패배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김사니 역시 무릎, 햄스트링 부상으로 챔프전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초 2015-2016 시즌 이후 은퇴를 생각했던 김사니는 은퇴를 1년 더 미뤘고 기업은행도 트레이드를 통해 이고은 세터를 영입하며 백업 보강을 철저히 했다. 그 결과 김사니는 2016-2017 시즌 챔프전에서 흥국생명을 꺾고 우승반지를 추가했다. V리그에서만 세터상 2회와 챔프전 우승 3회, 챔프전 MVP 1회, V리그 10주년 올스타 세터 부문 선정, 2012년 런던 올림픽 4강 등 화려한 업적을 남긴 김사니는 챔피언 자격으로 홀가분하게 은퇴를 결심할 수 있었다.

비록 날카로운 토스워크와 코트에서의 뛰어난 리더쉽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던 명세터 김사니는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김사니가 배구팬 곁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니다. 김사니는 이번 시즌부터 SBS SPORTS의 배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배구공 대신 마이크를 잡고 한 걸음 뒤에서 후배들의 플레이를 격려하고 응원할 예정이다. 누구보다 '프로 선수'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명세터' 김사니의 앞날에 행운이 찾아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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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도드람 2017-2018 V리그 IBK기업은행 알토스 김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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