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프레지던트> 영화 포스터

▲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 포스터 ⓒ 인디플러그


바야흐로 정치 영화의 시대다. 최근 나왔던 정치를 소재로 삼은 영화를 살펴보자. 극영화에선 <내부자들> <특별시민> <더 킹>이 대표적이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노무현입니다> <자백> <공범자들>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저수지 게임> <더 플랜> 등 다큐멘터리 영화는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영화를 만들 당시엔 현직이었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연출을 맡은 김재환 감독은 우리 사회의 권력(자)에 맞서는 작품을 줄곧 내놓았다. <트루맛쇼>(2011)는 방송사의 조작을 고발했고 < MB의 추억>(2012)은 현직 대통령을 풍자했으며 <쿼바디스>(2014)는 종교라는 성역을 파헤쳤다. 문제적인 감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미스 프레지던트>도 감추었던 이면을 조명하거나 어이없는 행동을 풍자하는 내용일까? 이번에는 전작들과 결이 사뭇 다르다. 김재환 감독은 <미스 프레지던트>를 '박정희 대통령은 잘했고 육영수 여사는 그립다'는 정서를 공유하는 '박정희 세대'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한다. 영화는 박정희와 박근혜의 지지자를 관찰하고 그들이 가진 믿음의 정서가 어디에 뿌리를 두는지 찾는다.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의 한 장면

▲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청주에 사는 농부 조육형 씨는 매일 아침 의관을 갖추고 박정희 사진에 절을 한다. 그는 새마을 운동 역군으로 자신의 존재를 불러준 박정희에 대한 감사가 삶의 의미이고 사람의 도리라 여기며 매일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한다. 울산에 사는 김종효 씨 부부는 6.25 직후 한국의 보릿고개를 해결해준 박정희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에게 육영수는 어머니와 다름없는 존재로 남았다.

전작에서 내레이션 등 직접적인 목소리를 넣었던 것과 달리, <미스 프레지던트>는 설명을 일절 배제한다. 풍자하려는 의도 역시 없다. 조롱과 희화화를 경계한 채로 따뜻한 접근을 시도한 점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까지 내가 풍자한 분들은 가장 힘센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박정희 세대는 풍자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박정희 시대에 가장 고생한 분들이고 지금 가장 소외된 세대다. '박정희'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자기가 겪었던 고난과 세월이 해석이 안 되는 분들이다."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의 한 장면

▲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제목에 붙은 '미스'는 박정희 세대를 다각도로 접근하는 길잡이로 작용한다. 박정희 세대에게 박정희는 하나의 신화(myth)다. 1960년대 후반에 시작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박정희를 역사의 인물에서 신화로 바꿔 주었다. 영화는 여러 곳에 세워진 박정희의 동상과 추모행사를 보여주어 우상화와 신격화가 현재진행형임을 나타낸다.

김재환 감독은 박정희 세대가 자신을 박정희에 동일시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국가의 다른 이름이며 박근혜는 박정희와 같은 말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한강의 기적'을 체험했던 박정희 세대는 그 시절을 지금도 그리워한다(miss). 자신의 젊은 시절과 국가의 경제 발전을 나란히 놓는다. 박정희 또는 박근혜를 부정하는 건 내 시간을 부정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광경을 조육형씨는 보여준다.

'미스(Miss)'는 박근혜를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김종효씨 부부가 속한 박사모는 박근혜에게 강한 동정심을 가진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총탄에 잃은 상처 때문이다. 정치에 입문한 박근혜는 자신을 '영국과 결혼한' 엘리자베스 1세를 연상케 하는 인물로 꾸몄다. 박정희 세대는 박근혜를 결혼도 안 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미스'는 잘못(mis)을 뜻한다. 박정희 세대에게 향수로 남아있던 박정희 신화는 IMF 외환위기를 즈음하여 박근혜를 정치로 불러내면서 되살아났다. 부활한 신화는 박정희의 이미지를 흉내 낸 이명박과 박정희와 육영수의 유전자를 지닌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신화에서 출발한 정서와 지지는 결국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이란 결과로 돌아왔다.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의 한 장면

▲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미스 프레지던트>엔 조육형씨가 탄핵 정국 당시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단상에서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과 태극기를 맹렬히 흔드는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카메라는 그 얼굴을 포착한다. <미스 프레지던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여기에 있다. 그들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고 손을 내민다.

김재환 감독은 "촛불 세대와 박정희 세대 사이에 장벽이 놓여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박사모 집회에서 무대에 선 사람들과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정희 세대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질 않는다. 적대감을 느끼지 말길 원한다. 귀를 기울이자고 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동반자로 감싼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성숙한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바라본다. 박정희 세대와 촛불 세대는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상대방을 배척하거나 모욕하는 식이 되어선 곤란하다. 앞으로의 길이 험난할지라도 같이 가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힘을 역설한 고별 연설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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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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