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선망과 선입견의 대상이다. 많은 이들이 아이돌의 화려함을 동경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춤과 노래가 아닌 무언가를 시도하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연기가 그렇다.

'요즘은 아무나 연기한다'는 일부 대중의 투덜거림은, 그러나 이제 조금씩 옛말이 돼가는 것 같다. 연기 잘 하는 아이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연기 잘 하는 아이돌? 연기돌? 하긴 이런 말들도 어쩌면 모순이다. 연기를 하면 그냥 '연기자'다. 날 때부터 연기자인 사람, 가수인 사람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유독 아이돌에겐 '가수 겸 연기자'라는 수식어마저 인색한 것 같다.

물론 연기를 못해서 '연기돌'이란 수식어에 그치는 거라면 할 말이 없다. 연기 하나만 바라보고 노력하는 연기자 지망생들의 자리를 빼앗는 일이 좋게 보일리 없다. 하지만 단지 아이돌이란 이유로 연기력을 평가절하하는 것 또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시완, 수지, 윤아, 도경수, 설현, 수영, 다솜, 이준, 강민혁, 옥택연, 나나, 박형식 등 많은 아이돌그룹 출신 연기자들이 이런 선입견을 깨고 있다. '연기돌'이란 수식어를 벗고 당당히 '연기자 OOO'으로 자리잡아가는 아이돌 중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혹은 영화에 출연 중인 몇몇을 꼽아봤다.

수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당잠사 <당신이 잠든 사이에> 방송 화면 캡처

▲ 당잠사 <당신이 잠든 사이에> 방송 화면 캡처 ⓒ SBS, iHQ


수지는 이제 '미쓰에이의 수지'라는 수식어보다 '연기자'란 수식어가 더 자연스럽다. 최근 가수 활동보다 연기 활동을 더 활발히 해왔다. 지난 2011년 KBS2 <드림하이>에서 까칠하지만 따뜻한 심성의 고혜미 역을 소화했고, 이듬해 2012년에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서연' 역을 통해 국민첫사랑으로 자리매김,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해 KBS2 <빅>, 2013년 MBC <구가의 서>, 2015년 영화 <도리화가>, 2016년 KBS2 <함부로 애틋하게>를 거치며 꾸준히 연기자로서의 행보를 이어간 수지는 현재 SBS 수목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아래 <당잠사>)에서 미래에 닥칠 사건을 꿈으로 미리 보는 남홍주 역을 맡아 호평받고 있다. 

시대극부터 현대극까지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 수지는 사랑스러운 연기에 특화된 배우다. <당잠사>의 남홍주는 수지의 발랄하면서도 때론 진지한 모습이 잘 묻어나는 캐릭터다. 어쩌면 수지가 본래 가진 자신의 매력을 담아내기에 홍주는 딱 알맞은 역할처럼 보인다. 그만큼 다른 작품에서보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듯한데, 특히 귀여운 '자뻑'연기가 하이라이트다.

수지는 2011년 데뷔작인 <드림하이>에서 '발연기'로 비난받았다. 지난 14일 SBS <박진영의 파티피플>에 게스트로 출연한 수지는 "당시 회사에서 시켜서 생각지도 못한 연기를 시작했지만 자신이 없어서 하기 싫었다"고 털어놨다. 연기에 대한 뜻을 미처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속사 JYP의 제안으로 <드림하이> 주인공을 맡게 됐다는 것.

이후 수지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조금은 자연스러워진 연기를 선보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후 드라마 <빅>, 영화 <도리화가>의 흥행엔 처참히 실패했고 연기력에 대한 비난도 꾸준히 받아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방영 중인 <당잠사>에서는 한결 나아진 연기로 호평받고 있다. 극중 사회부 방송기자인 수지가 리포팅을 하는 장면이 방송됐는데 "발성과 발음이 진짜 기자 같다"는 누리꾼의 댓글이 이어졌다. <당잠사> 측은 수지가 현직 방송기자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레슨을 받았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기도 했다.

2010년 데뷔한 수지를 우리는 벌써 8년째 봐오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수지는 며칠 전  만으로 23살이 됐다. 아이돌로 새로 데뷔를 해도 될 만큼 어린 나이라는 걸 상기했을 때 앞으로의 연기 발전 가능성도 기대해볼 만하다.

수영, <밥상 차리는 남자>

수영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 8-2회 '세상의 모든 김진영' 영상캡쳐

▲ 수영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 8-2회 '세상의 모든 김진영' 영상캡쳐 ⓒ JTBC 방송캡쳐


소녀시대의 수영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아이돌 출신 연기자다. 2007년 KBS2 <못말리는 결혼>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2013년 tvN <연애조작단: 시라노>, 2014년 MBC <내 생애 봄날>, 2016년 OCN < 38사기동대> 등에서 줄곧 주연을 맡아왔다. 현재 MBC 주말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 주인공 이루리 역을 맡아 순수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 이루리는 수영이 가진 당당한 이미지에 어수룩하고 순박한 모습이 더해진 캐릭터다. 자신을 차별하는 레스토랑 팀장에게 할 말은 하지만, 정작 가족인 아버지 앞에선 무서워서 쩔쩔 매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매력이 표출된다. 

수영은 밝고 씩씩한 연기에 특화된 연기자처럼 보인다. MBC <내 생애 봄날>에서 아픔을 간직했지만 타고난 맑고 쾌활한 심성을 간직한 이봄이 역으로 따뜻한 연기를 선보였다. 또한 생활연기가 꽤 자연스러운데 '가족 치유 코믹 드라마'를 표방하는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 보여주는 은근히 코믹하고 허당기 넘치는 연기가 돋보인다.

수영은 지금까지 연기가 뛰어나다, 혹은 부족하다는 큰 호평이나 지적 없이 무난한 연기를 펼쳐왔다. 그러다 지난 7월 31일 오픈한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에서 주인공 이안 역을 맡아 선보인 연기를 놓고 많은 호평을 받았다. 수영은 이 드라마의 제작발표회에서 "극중 이안과 진영의 관계가 8년 연애한 커플 사인데 저도 오랫동안 공개연애를 하고 있어서 감정 몰입이 깊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우는 연기를 본 누리꾼들은 "보고 있는데 너무 슬펐다", "따라 울었다", "수영이 연기를 잘하는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설현, <살인자의 기억법>

설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설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설현. ⓒ 쇼박스


AOA의 설현도 활발한 연기를 선보이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고 있다. 2012년 KBS2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조연 서은수 역으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이후 2013년 SBS <못난이 주의보>와 2015년 KBS2 <오렌지 마말레이드>에서는 주연을, 같은 해 영화 <강남 1970>에서 조연 강선혜 역을 맡아 열연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연 은희 역을 맡아 연기 지평을 넓혔다. 그는 2018년 개봉하는 영화 <안시성>에도 출연 예정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다수의 인터뷰에서 "설현은 보석 같은 배우"라고 칭찬했다. AOA라는 그룹 자체를 몰랐었다는 원 감독은 설현에 처음부터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이 없었고, 덕분에 주저함 없이 그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설현은 그늘있는 역할에 특화된 듯 보인다. <내 딸 서영이>에서 근심 가득해 보이는 첫인상이 강렬하다. 영화 <강남 1970>과 <살인자의 기억법>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설현은 제 몫을 다했다. 걸그룹으로 활동하는 아이돌이 상큼 발랄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만큼 설현의 어두운 연기는 무대에서와 다른 새로운, 연기자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설현은 수지, 수영에 비해 '아이돌' 이미지가 강한 편인다. 데뷔시점이 가장 늦기도 하고, CF 등에서 워낙 얼굴과 몸매로 주목받다보니 그의 화려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대중이 많다. 때문에 설현은 '연기돌'이란 수식어를 아직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본 한 누리꾼들은 "설현 연기 생각보다 괜찮던데?", "설현 연기 기대했던 것 보다 잘 하더라"며 호평을 보냈다. '생각보다', '기대했던 것보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설현은 아직 '연기자 설현'으로 대중에게 인식되기 보단 '아이돌인데 연기도 한다는' 시선을 더 많이 받고 있고 이는 그가 타파해야 할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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