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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반역자들 책 표지
ⓒ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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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라고 했다. 정부기관이 나서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각종 사업에서 배제하고 TV나 라디오, 영화에 나오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눈엣가시 왕따' 리스트 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국가정보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리스트를 작성·관리했고 이에 따라 상당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설 자리를 위협받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는 요즘이다.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문화예술계 관계자가 불이익을 받아온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각종 지원사업에서 이유없이 탈락하고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밀려나며 계좌정보가 조회되고 관계업체가 세무조사를 받는데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대다수는 침묵했고 제 자리에서 제 할 일에 바빴다. 세월이 좀 엄혹해야지, 모나면 정 맞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말이다.

가수는 노래하고 배우는 연기하며 작가는 글만 쓰는 걸 당연시하는 세상에서 소수의 사람만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웠으나 이들이 있어 정복되지 않은 땅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관련기사 : 루스 퍼스트, 이 위대한 운동가를 알고 있나요?]

앞서 루스 퍼스트를 소개했지만, 책 <아름다운 반역자들>에 등장하는 열 명의 운동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존 바에즈(Joan Chandos Baez, 1941-)다. 그는 국가권력과 부당한 관습에 맞서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한 사람이다.

그녀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에즈를 포크음악의 근본, 곧 저항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음악가로 꼽는다. 맑은 목소리로 꾸밈없이 부르는 노래로 약관의 나이에 최고의 포크가수 반열에 오른 그녀는 실제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온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언론이 극찬하고, 음반 회사들은 곧바로 계약하려고 기를 썼다. 존 바에즈는 계속해서 전국 순회 공연을 하면서 골드 앨범을 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인 카네기 홀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콘서트를 열 때마다 매진을 기록했다. (...) 스물한 살짜리 가수의 음반이 역사상 다른 어떤 여성 포크 가수들보다도 많이 이 팔렸다고 했다. - 107, 108p

바에즈는 자신의 목소리를 돈 버는 데에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전쟁과 인종 차별, 불평등에 맞서는 투쟁운동에 참여했고 전 세계의 관객을 향해 자신과 함께 저항자고 설득하는 데 진력했다. 이로 인해 감옥살이를 하고 경력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지만 한 번도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책은 존 바에즈의 신념에 두 가지 요소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적고 있다. 바로 종교와 멕시코 혈통이다. 바에즈의 부모는 멕시코 이민자 출신으로 그 외양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바에즈는 백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더욱이 스페인어를 할 줄 몰라 멕시코인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한 데는 이 같이 고립된 상황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근원적인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퀘이커교도의 분위기 속에 성장하며 바에즈는 간디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사상에 감화를 받았다. 특히 킹 목사의 연설을 직접 들은 이후 바에즈는 그가 주도한 항의행진에 참여하는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킹 목사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에서 바에즈는 '우리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는 노래를 부르며 군중을 이끌었다.

모두가 몸을 사릴 때, 바에즈는 그곳에 있었다

1963년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 The Great 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에서 공연하는 존 바에즈와 밥 딜런.
▲ 존 바에즈와 밥 딜런 1963년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 The Great 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에서 공연하는 존 바에즈와 밥 딜런.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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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에즈는 저항 운동을 하면서 수차례 생명의 위험을 감수했다. 미국 남부에서 시민권 행진을 할 때는 흑인이 백인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는 이유로 벽돌과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흑인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존은 텔레비전 뉴스 카메라들이 따라다닐 정도로 유명인인 자기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폭력을 저지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러기를 바랐다. 시민권 운동가 제시 잭슨은 "적대감이 가득하고 위험한 장소에는 존 바에즈가 있었다"고 말했다. 잭슨은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시민권 투쟁에서 점점 멀어져 가면서 자기 경력을 보호했다면서 "하지만 존은 왔어요"라고 덧붙였다. - 118p

바에즈는 연인이며 동지였던 밥 딜런을 만나며 한층 성숙했다. 그녀는 딜런의 히트곡들을 함께 부르며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조지 소로우 이후 유서 깊은 시민 불복종 운동도 그 일환이었다. 바에즈는 자기가 내는 세금 중 얼마 정도가 베트남 전쟁에 들어간 지를 계산해 그만큼의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서신을 정부에 보냈다.

이는 전국적인 납세 거부 운동으로 이어졌지만 그녀는 그 대가로 정부로부터의 소송과 공공연한 공격에 직면해야 했다. 워싱턴 DC 컨스티튜션 홀에서 콘서트를 열지 못하게 된 바에즈가 워싱턴 기념비 앞에서 무료 콘서트를 여는 것으로 대응한 일화는 유명하다.

존은 이런 활동에 많이 참여하는 동시에 베트남에 가지 말라고 군인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베트남으로 파견될 징집 군인들이 있는 군 본부를 방문해 징병 저항자, '징병 기피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징병 기피자란 징병을 피하기 위해 캐나다로 달아나거나 숨어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징집 명령에 저항하는 것은 위법이지만 군인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는 존에게 야유를 하고, 침을 뱉고, 발길질을 했다. -115p

바에즈가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저항하는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미국인 다수가 베트남에 있는 미군을 지지했다. 하지만 차츰 베트남에서의 참상이 알려지며 반전운동의 규모가 커졌고, 결정적으로 수만의 미국 청년들이 전쟁에서 죽어 나가며 반대여론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1973년 마침내 베트남에 있던 마지막 미군 부대가 철수했다. 바에즈가 반전운동을 시작한 지 9년 만이었다.

바에즈는 여전히 열성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 당시에도 그녀는 군중 가운데서 노래를 불렀다. 50여 년 전 워싱턴 대행진에서 그랬듯, 그녀는 사람들의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마땅한 몫을 주장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바에즈는 여전히 바쁘다.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자가 이 위대한 활동가의 새로운 상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반역자들 / 봄볕 / 조이 크리스데일 지음 / 손성화 옮김 / 2017. 3. / 12,000원>



아름다운 반역자들 - 역사에 도전한 여성 운동가

조이 크리스데일 지음, 손성화 옮김, 봄볕(2017)


태그:#아름다운 반역자들, #조이 크리스데일, #존 바에즈, #손성화,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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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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