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 인조인간 아니 인조임금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 역의 배우 박해일이 27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해일이 사극 영화 <남한산성>으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그가 처음으로 해보는 왕 역할로 말이다. ⓒ 이정민


박해일에겐 두 번의 병자호란이었다. 그러니까 영화 <최종병기 활>에선 조선 최고의 명궁 으로 청나라 정예군사에 맞섰다면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남한산성>에선 인조 역을 맡게 된 것. 연휴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전자가 피해자 캐릭터였다면 후자는 가해자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나라 최고 통수권자를 그는 말 그대로 가해자로 표현했다. 역사적으로 부정적 평가가 많은 인조였기에 배우 입장에서 혹여나 맡기에 꺼림칙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는 "제가 연기해보지 않은 면이 인조에게 있었다"며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있던) 47일이라는 시간에 집중하는 이야기라 그 안에서 인조라는 캐릭터와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병자호란의 장본인


"인조가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평가가 분명하게 내려진 인물이다 보니 굳이 재해석 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정서와 그가 처한 상황을 보이고자 했다. 이 영화가 인조라는 조선 16대왕의 서사를 보이는 게 아니잖나. 그 지점이 매력적이었다. 인조는 서자 출신인데 반정을 꾀해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사망원인 중 하나가 신경쇠약일 정도로 예민했다. 그만큼 의심도 많은 사람이라 그걸 잡아서 영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인조에 대한 호감을 전하는 게 아닌 어떤 불균질하고 불순한 느낌을 지워가며 인물을 보이고 싶었다. 제 기준에서 말하면 이 캐릭터가 만약 관객에게 연기적으로 인정받는다면 제 필모그래피의 확장성에도 좋을 것 같았다. 자신감도 더 생길 것 같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무능한 군주 인조(박해일 분)의 모습 -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영화 속 인조의 모습. ⓒ CJ 엔터테인먼트


원작 소설과 영화 자체가 인조가 중심이 아닌 청나라와 화친을 맺자는 최명길(이병헌)과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김상헌(김윤석)이 중심이다. 제한적일 수 있음에도 박해일은 "그 두 사람 사이에 인조가 들어서면서 삼각구도를 만들어야 했다"며 "그 제한성 안에서 인조의 번뇌와 혼란을 표현하는 게 저만의 도전이자 과제였다"고 전했다.

"쉽게 얘기하면 <최종병기 활> 땐 피해자 중 하나를 연기했다면 이번엔 병자호란을 일으킨 장본인 일 수 있잖나. (백성들이 느끼는) 원망의 감정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원작 소설은 이미 <활> 때 읽었다. 그 책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현재를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영화가 왜 관객과 만나야 하는지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라는 단어가 그렇잖나. 어느 나라나 아픈 역사가 있다. 병자호란도 그런 시기인데 나라엔 백성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에겐 반면교사가 될 사건이다.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 하잖나. 근데 영화를 만들 땐 장르에 기대는데 <남한산성>은 제가 간만에 만난 정통사극이었다.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보인다는 건 사실 쉬운 작업이 아니다. 만드는 과정도 그렇지만 그런 의도를 갖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고 본다. 히어로 영화도 아니고 애써 감추려는 치부를 드러내는 건데, 여기엔 관객들이 꼭 봐야한다는 의도도 깔린 것이라고 본다."

스태프와 배우들의 배려


김윤석과 이병헌을 두고 박해일은 유독 긴장을 많이 했다.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였고, 두 배우 모두 왕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긴 대사와 감정을 주고받아야 했다. 자칫 자신이 실수라도 하면 흐름이 모두 깨질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다행히 서로 배려함이 느껴졌다"며 박해일이 당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촬영 전 마음을 다잡는 과정이 있었다. (연기) 대가들이 나오면 흔들리거든. 작은 반응에도 집중력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 두 분 다 작품으로 처음 만났고, 저보다 앞서 길을 걸어가는 선배시잖나. 한 사람을 알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 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분명 카메라가 돌면 엄청 에너지를 쏟아낼 분들인데, 어떤 배우가 인조를 했더라도 실수하지 않으려 했을 거다. 나름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없다. 많은 분들의 도움 덕이었지."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피곤하거나. 배우가 작품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남한산성>은 후자 쪽에 가까워 보였다. 박해일은 "관객 분들 입장에선 두 충신의 시선을 쫓아가기도 하지만, 인조의 시선이 관객의 시선일 수도 있었다"며 "긴 용포에 몸이 자유롭지 못해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곳에 신경을 안 써도 되니 장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외형적 모습보단 정서에 집중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사실. 박해일은 촬영 전 현장을 미리 찾아 분위기를 익히곤 하는데 <남한산성>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세트장이 지어지고 있을 때 강원도 현장을 찾은 그는 "촬영일 대부분을 보낼 행궁을 보면서 스태프들의 고생도 새삼 실감했다"며 "미리 현장에 가서 공정을 보는 방법이 제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인조가 아닌 자연인 박해일 입장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가치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말이다. 기호 1번 최명길, 기호 2번 김상헌. 이 우문에 그가 웃으며 현답을 내놨다.

"(웃음) 일단 영화가 관객 분들에게 묻는 거라.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인만큼 의견은 최대한 유보하고 싶다. 투표는 분명 할 거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도장 찍기 전까지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니까 일단 유보다(웃음). 

좋은 정치인이라면 영화 속에 나오는 이들과 반대로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실 거다. 관객 분들이 자연스럽게 발견하실 거다. 이런 문화 예술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중에 사극은 빼놓을 수 없지. 꾸준히 사극이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해일 남한산성 이병헌 김윤석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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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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