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역사에서 2012 런던 올림픽은 2002 한-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 못지않은 평가를 받는다. 조별리그에서 만난 멕시코(우승)를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했고, 8강전에서는 개최국 영국을 무너뜨리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3-4위전에서 만난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머쥐며, 사상 처음으로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런던 세대는 그만큼 특별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의 주역이었던 기성용을 필두로 구자철과 지동원, 김영권 등은 현재까지도 대표팀 핵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김보경과 정우영, 윤석영, 남태희 등도 대표팀에 꾸준하게 이름을 올리는 선수들이다. 부상으로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 장현수와 홍정호, 한국영 등을 만나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VEB 아레나에서 열린 러시아와 평가전에서 2-4로 참패하던 날(7일)도 마찬가지였다. 선발 출전 명단에는 런던 세대인 구자철과 김영권, 정우영이 있었고, 지동원과 남태희, 오재석은 교체로 만나볼 수 있었다.

우리 대표팀은 자책골만 2번 기록했고, 빨리 경기가 종료되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를 주름잡은 손흥민은 이날도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했고, 구자철과 권창훈 등 다른 유럽파의 모습도 아쉬웠다. 월드컵 본선행 티켓은 거머쥐었지만, 한국 축구는 퇴보하고 있는 느낌을 지워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크게 와닿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런던 세대에 대한 희망의 끈을 너무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이제라도 그들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과 이날 평가전까지, 런던 세대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홍명보 전 감독은 런던 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무너졌다. 박주영 발탁과 활용으로 증명된 믿음은 '미련'이었다. 김보경과 지동원, 김영권, 윤석영 등도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남겼다. 런던 세대에 철저하게 외면당한 손흥민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B급 리거' 김신욱과 김승규가 잃어버린 '투혼'을 되살렸다.

전임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도 런던 세대를 중용했다. 김영권은 장기 부상이 아니었다면, 최종예선 내내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는 신뢰를 받았다. 김기희와 정우영, 남태희, 지동원 등도 슈틸리케 감독의 신임을 듬뿍 챙겼다. 홍정호와 장현수, 한국영 등 런던 세대나 다름없는 이들도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떠했나.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성적은 처참했다. 원정에서는 단 1승도 챙기지 못했고, 우리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상대로 매번 실점했다. 시리아전 두 경기와 신태용 감독 부임 이후 치러진 마지막 2연전(이란-우즈베키스탄)을 제외하면, 우리는 골문을 열어주는 데 익숙했다.

김영권과 홍정호, 김기희, 장현수 등 미련이 가득한 세대는 발전하지 못했다. 특히, 김영권과 홍정호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아쉬움을 날려버리는 데 실패했다. 김영권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유럽 진출이 기대됐지만,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중국 슈퍼리그에 머물렀다. 2012 런던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면,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때는 김민재보다 더 큰 기대를 받았던 홍정호도 다르지 않다. 홍정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중앙 수비수가 유럽 무대를 누비는 영광을 맛봤다. 중·하위권 리그가 아닌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독일 분데스리가였다. '어렵다'라는 평가 속에서도 주전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고,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급작스럽게 중국 슈퍼리그로 향했다. 현재는 장쑤 쑤닝에서 사실상 방출돼 소속팀 없이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중원은 또 어떤가. 대표팀 전력의 51%가 되어버린 기성용을 제외하면, 런던 세대의 활약상은 국가대표와 거리가 멀다. 구자철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부상과 싸우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정우영과 한국영은 꾸준하게 대표팀에 발탁되는 선수들이지만, 국가를 대표할만한 수준인가란 의문이 지워지질 않는다.

공격진도 마찬가지다. 지동원의 현재 모습은 국가대표라 보기 어렵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최근 4시즌 간 성적은 4골이다. 최전방 공격수와 측면을 오갔음에도 4년 동안 4골밖에 넣지 못했다. 20세를 갓 넘긴 2011 카타르 아시안컵과 2012 런던 올림픽이 전성기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 시절을 뛰어넘을만한 활약상은 없었다.

남태희는 10대 시절, 프랑스 리그에 도전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고, 일찌감치 카타르로 향해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12 런던 올림픽을 거치며 유럽 복귀가 기대됐지만, 카타르 최고의 선수에 만족하는 모양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더 성장하지 못한 아쉬움을 감출 수도 없다.

이 세대는 2010년 이후부터 약 7년 동안 대표팀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보다 많은 기회를 받으면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올바른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격이 부족한 선수가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감독이 바뀌어도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이재성(전북 수비수)과 안현범, 김영욱, 신형민 등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들은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우리는 '2012년 런던'과 거리가 멀었던 손흥민처럼 한 세대보다 뛰어난 인재를 찾는 데 게을렀다.

지난 2002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선택은 충격적이었다. 언론과 팬들이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수차례 뒤엎었다. '천재'로 불린 이동국과 고종수를 대신해 '윙백' 박지성을 공격수로 성장시켰고, 설기현을 중용했다. 당시 30세에 가까웠던 최진철을 세계 정상급 수비수로 발돋움시켰고, 당연한 주전이었던 김병지를 대신해 이운재에게 골문을 맡겼다. 히딩크에게 미련은 없었다. 평가 기준은 그라운드에서 흘린 땀방울뿐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침몰하는 한국 축구를 구원해내는 것은 런던 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기성용을 제외하면, 꾸준하게 국가대표급 활약을 선보인 런던 세대는 없었다.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인물, 세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과감한 결단만이 기나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지도자의 역할이고,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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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2012 런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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