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한 달, 재개봉영화의 소소한 흥행이 이어졌다.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자리한 작품은 없었으나 <아키라> <라스트 모히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에 각 수천 명씩의 관객이 들며 배급사와 극장에 쏠쏠한 수익을 남겼다. <아키라>는 메가박스, 다른 세 편은 CJ CGV 단독 개봉으로 최근 멀티플렉스에서 일고 있는 재개봉 열풍을 체감할 수 있었다.

반면 지난 몇 년 동안 재개봉작 흥행을 주도한 독립극장은 재개봉작보다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신작 상영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작지만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작품이 여럿 개봉해 선택지가 늘어난 탓으로 풀이된다. <저수지 게임> <김광석>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여배우는 오늘도> <시인의 사랑>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멀티플렉스와 독립극장에서 상당한 상영관을 점유하며 각 수만에서 수십만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10월에도 여러 편의 재개봉작이 스크린에 걸린다. 신작과는 또 다른 맛과 멋이 있는 재개봉작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눈여겨 봐둘 만한 정보가 되겠다.

[하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멀홀랜드 드라이브 재개봉 포스터

▲ 멀홀랜드 드라이브 재개봉 포스터 ⓒ 감자


정식 개봉조차 못하고 있던 첫 장편 <이레이저 헤드>가 한 극장주의 눈에 띄어 장기상영의 기회를 잡은 이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늘 다수가 아닌 소수를 지향해왔다. 그가 첫 단편을 찍은 1966년으로부터 50년 넘게 지난 오늘 린치는 가장 열광적인 팬층을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인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반 백 년의 영화 인생 동안 소수의 열광적인 팬층을 넘어 평단의 광범위한 지지까지 확보한 린치의 필모그래피에서 단 한 편의 영화를 꼽아야 한다면 과연 어떤 작품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영화팬들에겐 커다란 관심거리였다. 이와 같은 질문에 2016년 영국 공영방송 BBC는 '21세기 영화 TOP 100' 리스트를 통해 이렇게 답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데이비드 린치의 필모그래피는 물론 21세기 개봉한 모든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이라고.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가 일찌감치 '까이에 뒤 시네마' 같은 유서 깊은 영화 매체에서 뽑은 2000년대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영화팬들에겐 BBC의 선택이 그리 놀랄 만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무엇이 그리도 대단하고 훌륭한 것일까. 과연 무엇이 이 영화를 데이비드 린치의 가장 그다운 작품으로 불리게끔 한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가 5일 열렸다. 다수 대중에게 선택받지 못했지만 대다수 평론가와 일부 관객들에게 최고의 영화로 기억되는 이 영화는 5일 한국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재개봉 포스터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재개봉 포스터 ⓒ (주)영화사 오원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피천득, <인연> 중에서


혹자는 불륜을 미화하는 영화라고 한다. 다른 누군가는 한 편의 사랑영화라고 말한다. 영화가 처음 개봉한 1995년 당시엔 양측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으나 그로부터 20년 넘게 흐른 오늘에 이르러 후자가 더욱 힘을 얻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시대를 앞서 개봉한 영화임이 분명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연출과 주연을 맡고 상대역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로 손꼽히는 메릴 스트립이 출연했다. 이들은 깊이 있고 섬세한 연기력으로 메마른 바람이 부는 아이오와 한복판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금지된 사랑을 표현해낸다.

잡지표지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오와주 작은 마을 매디슨 카운티를 찾은 사진작가 로버트. 초행길에 길을 잃고 헤매던 그의 앞에 맨발의 여인 프란체스카가 나타난다. 아들, 딸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의 부탁에 차에 올라 길을 알려주고 둘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된다.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차츰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둘. 하지만 떠나야 하는 로버트와 떠날 수 없는 프란체스카 사이엔 쉽게 건널 수 없는 강이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만찬에서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 전에는 단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그런 단어로. 이런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오는 거라고, 그래서 당신이 나를 따라나섰으면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그에게 프란체스카는 아들과 딸에 대한 책임과 함께, 그를 따라나서면 다시 둘의 감정이 변할 거라고 답한다.

둘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사랑과 책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원작 작가 제임스 월러는 지난 3월 10일(현지시각) 향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옥주현이 주연하는 동명 뮤지컬이 올 4월부터 3개월간 한국에서 첫선을 보였고 영화는 애초 4월 중 재개봉이 예정됐으나 배급사 사정에 따라 이달 25일로 일정이 미뤄진 바 있다.

[셋] <루터>

루터 포스터

▲ 루터 포스터 ⓒ THE픽처스


1517년 10월 31일, 신학박사이며 수도자인 서른넷의 젊은이 마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 내걸었다. 즉각 로마 교황과 독일 정부가 루터에게 반박문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나의 양심을 철회할 수 없다"며 저항한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고 루터를 지지하는 민중과 교회는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 유명한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기독교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10월 극장가에 기독교 영화가 여러 편 내걸린다. 지난 2003년 제작된 <루터>도 그 가운데 하나로 앞서 몇 차례 군소 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바 있으나 일반 관객 앞에 선보이는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는 루터가 교단에 몸을 담고 교회와 대립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냈다. 루터 외에 종교개혁에 큰 역할을 한 울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등은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다. 조셉 파인즈, 알프리드 몰리나 등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해 연기한다.

[넷]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터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세븐> <파이트 클럽> <나를 찾아줘>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긴 데이비드 핀처의 판타지 로맨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10월 말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애초 크라우드펀딩 업체 등을 통해 투자금을 모집해 4월 중 재개봉을 계획했으나 배급 문제로 10월 말까지 개봉이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2월 개봉해 174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핀처의 작품 가운데 한국에서 최다관객 기록을 가진 흥행작이다.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미술·분장·시각효과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카데미 외에도 전 세계 65개 영화제에 출품, 7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18년 1차대전 말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80세 외모의 아기 벤자민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어려지는 벤자민은 우연한 계기로 데이지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자타공인 할리우드 대표 배우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벤자민과 데이지 역을 맡아 호평받았다.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을 모티브 삼아 제작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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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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