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우 감독의 <옵티그래프>(2017) 한 장면

이원우 감독의 <옵티그래프>(2017) 한 장면 ⓒ 이원우


이승만 정권 시절 치안국장과 내무부장관을 지냈던 고 장석윤(1904-2004)은 백수(99세) 잔치가 끝난 후 외손녀 이원우 감독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써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2년 뒤, 장석윤은 숨을 거두고 베를린 배낭여행 중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이원우 감독은 외할아버지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보던 중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그냥 자상한 외할아버지인줄 알았던 장석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신 OSS의 특수요원이었다는 흥미로운 과거를 접한 이원우 감독은 그 때부터 외할아버지가 남긴 발자취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지난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상영한 이원우 감독의 <옵티그래프>(2017)는 감독의 외할아버지 고 장석윤에 관한 다큐멘터리이자 이원우 감독 개인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 시절 이승만과 인연을 맺은 이후 독립운동에 가담한 장석윤은 OSS 특수요원을 거쳐 해방 이후 치안국장, 내무부 장관 등 이승만 정권 시절 다양한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자신이 그간 해왔던 일에 대해서 친히 메모까지 남긴 장석윤은 외손녀인 이원우 감독에게 자서전을 부탁할 정도로 역사에 남겨질 자신의 이름, 기록에 대해서 많은 공을 들인 인물이다.

반면, 외할아버지로서 장석윤을 사랑하지만, 당시 치안국장으로서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할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던 이원우 감독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외할아버지 장석윤의 삶과 그를 둘러싼 기록물들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동시에 감독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미국, 버마(미얀마), 중국 등 세계 각 지역을 떠돌아다닌 장석윤이 남긴 흔적을 찾으며 국가는 무엇이고 국가에 의해 부여된 개인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외할아버지를 그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감독 본인의 이야기이다

 이원우 감독 <옵티그래프>(2017) 한 장면

이원우 감독 <옵티그래프>(2017) 한 장면 ⓒ 이원우


외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OSS 특수요원이 활동한 미얀마,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중경(충칭)으로 향했던 감독은 조국 독립을 위해 말도 안 통하고 낯설기만 한 타지에서 고생했던 외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그러나 결혼 이후 집안 사정으로 잠시 미국에서 살게 된 감독은 메릴랜드에 위치한 기록보관소에서 장석윤의 기록을 찾던 중, 한국전쟁(6.25) 관련 기록물이 남아 있지 않거나 미국에게 유리한 쪽으로 영상기록물이 편집되거나 연출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어느 곳에서도 외할아버지(장석윤)나 미국이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다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외할아버지가 생전 어떤 매체와 인터뷰를 나누던 중, 그가 지시했다던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장석윤은 그와 관련하여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축한 바 있다.

외할아버지를 둘러싼 놀라운 사실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감독은 서서히 외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군 홍보단 아르바이트를 했던 감독은 2003년 이라크전 파병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진보 운동에 눈을 뜨게 된다. 용산 참사 희생자 추모 집회,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운동, 삼성 반도체 피해자 집회 등 각종 사회 운동에 참여했던 감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필름 카메라로 국가와 자본이 국민에게 행한 각종 폭력들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국가 폭력을 자행한 사람들은 과거 장석윤이 거쳤던 치안국장과 동격인 경찰청장이었고, 그렇게 외할아버지의 역사는 2010년대를 살고 있는 감독 본인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모든 기억은 편집되고, 모든 기록은 연출된다. OSS 특수요원으로 활동했고, 이승만 정권 시절 요직에 있었던 외할아버지(장석윤)가 남긴 자랑스러운 기록과 달리, 이원우 감독이 그녀의 카메라로 기록한 국가폭력과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투쟁은 공적 역사(기록)가 되지 못했다. 최근 다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도 공적인 역사로 인식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야했다.

국가의 기억과 기록이 어떻게 남겨지는가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오던 이원우 감독은 외할아버지와 자신을 둘러싼 기억과 기록을 편집하고 연출한다. 그리고 공적 역사(기록)에 기입되지 못한 기억들을 호명하며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역사의 일부로 소환한다. 감독 자신의 가족과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가 남긴 공식 기록을 해체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이야기를 되짚어보고자 하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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