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정으로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다운로드, IPTV에서 바로 만나는 영화들이 있다. 최근 부가 판권 시장으로 직행한 영화들 가운데 추석 연휴 동안 볼만한 영화 10편을 골랐다. 일명 '추석 9박10일 비디오 가이드'를 두 편의 글로 정리했다. 관람 등급과 장르를 고려하여 골고루 선정했으니 마음껏 즐기시길!

<수어사이드 쇼> 영화의 한 장면

▲ <수어사이드 쇼> 영화의 한 장면 ⓒ 주식회사 레드아이스


1. <수어사이드 쇼>
미국/드라마/105분/청소년 관람불가

미디어 산업의 팽창은 콘텐츠의 급증을 불러왔다. 제작자는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자극적인 볼거리를 쏟아낸다. 영화 <킬 위드 미> <더 테러 라이브>는 인기에 목매는 미디어의 그늘을 담은 바 있다. <수어사이드 쇼>는 흥행을 위하여 출연자들이 자살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TV쇼를 소재로 삼았다.

진행자 아담(조쉬 더하멜 분)은 방송국은 자살 환경을 제공할 뿐 선택은 참가자의 몫이라면서 우리 모두는 죽음을 결심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죽음까지 화젯거리로 소비하는 <수어사이드 쇼>엔 현대 사회의 욕망이 녹아있다. 더 많은 피를 보여 달라는 사람들과 삶은 소중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서로 충돌한다.

이런 묘사를 통해 <수어사이드 쇼>는 넓게는 폭력과 관음에 중독된 세계, 좁게는 이념이 부딪히는 미국의 현재를 은유한다. 승승장구하는 진행자인 백인 아담은 트럼프,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쇼의 출연자로 나서는 흑인 메이슨(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분)은 오바마로 치환할 수 있다. 그들을 보여주며 영화는 미국이 잃어가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극 중엔 미국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과 함께 탄핵에 가장 근접했던 대통령이다. <수어사이드 쇼>는 트럼프의 탄핵을 경고한 셈이다.

<프로젝트 패기> 영화의 한 장면

▲ <프로젝트 패기> 영화의 한 장면 ⓒ (주)알투픽처스


2. <프로젝트 패기>
한국/코미디/100분/15세 관람가

무명 가수 하시용(박종환 분)과 미사리 카페에서 활동하는 가수 남도민(이지훈)이 이 감독(강희만 분)과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록한 영화. 전작 <577 프로젝트>를 '리얼 예능'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던 이근우 감독은 <프로젝트 패기> 역시 유사한 화법으로 접근한다. 이번에도 화두는 '도전'이다.

영화는 청춘이 꾸는 꿈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그린다. "실력이 없으면 현실감을 가지든가"나 "우리 이제 도전할 나이 아니야"란 대사는 현실을 곱씹게 한다. 객기라는 핀잔에 패기로 맞서고, 꿈을 폐기하지 않은 채로 패기로 현실을 돌파하는 좌충우돌담은 보는 이에게 재미와 용기를 준다. 쉽사리 갈등을 봉합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영화의 거침없는 패기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영화 <롤러코스터>에서 안과의사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지훈은 미사리 인기 스타 남도민, 자칭 '도밍게즈 남' 역할을 멋지게 소화한다. 남도민이 자신의 1집 <꽃뱀보다 여자>의 '나 당신께 사정해요'를 부르며 춤추는 공연 장면은 박장대소가 절로 터진다. 하시용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르는 '가져가'는 "흔적도 없이 싸그리 싸그리 내 전두엽까지 싹 다 도려내 버려"란 가사 때문인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 귓가에 맴돈다. 영화에 나오는 음원은 유튜브에 모두 공개된 상태나 자유로이 감상할 수 있다.

<승풍파랑> 영화의 한 장면

▲ <승풍파랑> 영화의 한 장면 ⓒ 선약필름


3. <승풍파랑>
중국/드라마/102분/15세 관람가

각본가 밥 게일은 아버지의 졸업 앨범을 보다가 자신이 10대 시절의 아버지와 친구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던 중에 <백 투 더 퓨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승풍파랑>은 <백 투 더 퓨처>의 영향 아래에서 소재를 찾았다. 2022년 차이나 랠리에서 우승한 카레이서 아랑(덩차오 분)는 자신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아버지 아정(펑위옌 분)을 태우고 위험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당하며 1998년으로 시간이동을 한다. 그곳에서 아정은 초라한 중년의 아버지와 딴판인, 야심만만한 젊은이 아정을 만난다.

<승풍파랑>에서 벌어지는 타임 슬립은 <페기 수 결혼하다>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일어난다. 아랑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과거로 건너가 아정이 이끄는 갱단에 들어간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죽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엄마 소화(조려영 분)도 만난다. 아정, 소화와 얽힌 다양한 사건이 나열되는 통에 산만하게 보이기도 하나, 부모와 친구가 되어 그들의 승픙파랑(원대한 포부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공유하는 설정은 그 자체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을 향해 불쑥 말을 건네는 자유로운 전개도 독특하거니와 상황과 인물엔 <영웅본색><첩혈가두><열혈남아> 같은 홍콩 누아르의 정경이 겹쳐져서 8090 시절의 향수도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선 2017년 전체 박스오피스 12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아이 엠 어 좀비> 영화의 한 장면

▲ <아이 엠 어 좀비> 영화의 한 장면 ⓒ (주)케이엠에이치


4. <아이 엠 어 좀비>
미국/공포/88분/15세 관람가

지금은 좀비의 전성시대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좀비 바이러스는 감염자를 늘려가는 추세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영화로 나왔던 흥미로운 좀비물을 꼽자면 <멜라니: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소녀><컨트랙티드><더 배터리>가 떠오른다. <아이 엠 어 좀비>는 좀비와 파운트 푸티지 장르의 교배를 시도한다. 뱀파이어에게 물린 자들의 변화과정을 파운드 푸티지로 담았던 <앤드 오브 디 어스>를 참고한 느낌이 강하다.

<아이 엠 어 좀비>엔 위기를 극복하는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암울함과 고통으로 가득한 감염자의 처절한 생존기록이 있을 뿐이다. 영화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 엠 얼론>의 진행자 제이콥(가레스 데이비드 로이드 분), 카메라맨 메이슨(건너 라이트 분) 등을 주인공으로 삼은 건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프로그램 촬영이란 목적 때문에 다양한 카메라를 활용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보다 생존 능력이 높다는 설정에도 무리가 없어졌다. 여기에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5일째 되는 현재와 5일 전 과거를 오가는 방식으로 이야기와 푸티지의 폭을 넓혀주었다.

극 중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처럼 <아이 엠 어 좀비>는 흔하디흔한 관습을 나름의 해법으로 슬기롭게 벗어났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와 좀비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 이런 소재나 형식으로 영화를 찍으려는 분이라면 꼭 감상하시길 추천한다.

<아스널: 리로디드> 영화의 한 장면

▲ <아스널: 리로디드> 영화의 한 장면 ⓒ (주)다날엔터테인먼트


5. <아스널: 리로디드>
미국/액션/97분/청소년 관람불가

스티븐 C. 밀러 감독은 장르 팬들에겐 제법 친숙한 이름이다. <서머지드> <사일런트 나이트>로 공포 영화 마니아를 즐겁게 해주었다면, 브루스 윌리스와 작업한 <익스트랙션> <신시내티 잡> <퍼스트 킬>은 액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이었다. 그가 새롭게 손잡은 배우는 니콜라스 케이지. 파산 위기의 여파인지 마구잡이(현재 그의 출연작은 90여 편에 달하며 2017년에만 8편을 기록했다)로 출연하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곁엔 존 쿠삭(현재 출연작이 84편으로 만만치 않다)이 자리한다. 두 배우는 <콘 에어><프로즌 그라운드>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났다.

<아스널: 리로디드>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쿠삭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정작 주인공은 다른 이들이다. 영화는 납치된 형 마이키(조나단 스캐치 분)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생 JP(아드리언 그레니어 분)의 사연을 다룬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악당 에디 킹으로, 존 쿠삭은 JP를 돕는 경찰 샐 역을 맡았다.

형제의 갈등, 조직과 대결을 다루는 97분의 전개 속에 자동차 추격, 주먹질과 발길질, 총격전 등 넣을 만한 액션 요소를 몽땅 들어갔다. 제작비가 모자랐던 탓일까? 액션은 슬로우 화면으로 늘렸다. 이것만으론 심심하다고 여긴 모양인지 엄청나게 짧은 정사 장면도 가미했다. 평범한 만듦새에서 배우 경력 35년 동안 60번이나 노미네이션 되고 40회 이상 수상한 니콜라스 케이지는 '쓸데없이 고퀄'인 연기로 빛을 발한다. 사실 이 맛에 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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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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