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표는 2017년 한 해 성실하게 달렸다. 2016년 말 SBS <질투의 화신>이 끝나고 연달아 tvN <시카고 타자기>를 찍더니 이번에는 KBS <최강 배달꾼>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최강수 역할을 해냈다. 그는 "체력적으로 한계가 왔었다"면서도 씩 웃으면서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5일 오후, 삼청동에서 만난 그의 티 없이 웃는 표정에서 만족감이 새어 나왔다.

 KBS2 드라마 <최강 배달꾼>의 배우 고경표가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2 드라마 <최강 배달꾼>의 배우 고경표가 지난 9월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는 25일, 사진 촬영은 별도로 26일 진행됐다. ⓒ 이정민


"나의 연기관은 '새로운 도전'"

- 올해 드라마를 쉼 없이 찍었다.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야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는데 <시카고 타자기>도 그렇고 <최강배달꾼>도 즐거운 현장이었기 때문에 재밌었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주어질수록 힘이 난다."

- 무엇이든 새로운 걸 도전하기를 즐기는 편인가?
"그것이 내 '연기관'이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고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드렸던 캐릭터와 다른 모습들을 어색하거나 위화감 없이 표현하고 싶다.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 '연기관'이라. 확고해 보인다. 그 연기관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나?
"'히스 레저'라는 배우를 너무 좋아한다. 그를 처음 접했을 때 한 사람이 그 모든 배역을 연기했다는 걸 알고 너무 놀랐다. 그를 보면서 공부한다. 관객들이 그에게 느꼈던 감동을 나라는 사람에게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 공부?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건가?
"일단 작품을 많이 봐야 한다! 그 안에서 그가 펼치는 연기도 따라 해 보고 목소리 서 있는 걸음이나 행동, 손동작, 사소한 습관들도 연구한다. 표정도 거울 앞에서 연습해보고. 한국 배우들 같은 경우에는 끝 음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감정 전달이 달라진다. 그것도 따라 해본다."

 KBS2 드라마 <최강 배달꾼>의 배우 고경표가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경표 "나의 롤모델은 히스 레저다." ⓒ 이정민


- 최근에 연기를 따라 해 본 한국 배우가 있나?
"(<최강 배달꾼>에 함께 출연했던) 김기두 형! (웃음) 정말 가진 게 많은 사람이다. 형의 것도 내 것처럼 만들려고 많이 따라 했다."

- 곧 히스 레저 다큐멘터리가 개봉할 텐데 그럼 그 영화도 보러 가겠다.
"맞다. 나는 아마 그 영화의 'GV(관객과의 대화)'를 맡거나 낭독회에 참가할 것 같다."

- 이번 작품에서 소위 '타이틀롤'을 처음 맡았다. 스스로 기존 작품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점이 있나?
"책임감을 좀 더 가지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전에는 현장에서 연기만 했다면 이제는 함께 고생하는 스태프들도 눈에 보인다. 워낙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시지 않나.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과 안타까움이 있다. (드라마 현장) 시스템이 잘 개선되지 않는데 그런데도 배우들과의 시너지를 내주시고 드라마가 가진 색깔이 증폭될 수 있게 해주신다. 고마운 일이다."

- 그게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변화된 모습인가?
"맞다. 주연이라는 자리에서 연기하는 분들에 대해 존경심을 한 번 더 느꼈고 '나도 앞으로 좋은 배우로서 주연으로서 연기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한 번 주연했다고 해서 계속 주연을 할 수 있나? 역할을 나누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주연이 아니더라도 나는 연기를 꾸준히 할 거다."

'흙수저 청춘' 연기... "가장 가까운 현실"



- 짜장면 배달부로 일하는 최강수 역할을 맡았다. 일명 '흙수저 청춘'이라고.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가장 가까운 현실이다. '시작점'이 다르다는 건 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그 환경은 지금 많은 젊은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나. <최강 배달꾼>은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표하고 만화적인 에너지로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드라마였다. 단순히 막연한 공감대 형성이 아니라 그 이상 용기를 주고 다소 유치해보일지언정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 '착한 드라마'라는 반응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맞다. '착한 드라마' 안 나온지 좀 되지 않았나? 너무나도 외로운 시대고 젊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 이상의 뭔가... 이상향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촛불 시위가 그랬듯이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모두 고생했어'라면서 다독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내보자' '이겨내보자'는 응원도 공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최강 배달꾼>이 그런 작품이 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가끔 '힘내'라는 말만큼 무책임하거나 힘든 말이 없다는 말도 있던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힘내'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힘들면 그때는 쉬어야 한다. 본인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재충전할 시간적 여유를 내야 한다. 그런데 그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큰 용기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걸 포기하고 정지시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 배우 고경표에게도 무너지기 직전까지 힘든 순간이 있었나.
"있었다. 이런저런 구설수도 있었고.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겪고 나니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을 보고 달리는 시간만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친구들이랑 '행복의 이상향'을 가까이 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 '행복의 이상향'?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 끼 맛있게 밥을 먹는 것, 엄마랑 통화하는 것, PC방에 잠깐 가서 게임을 하는 것,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 캔 하는 것. 그런 작은 행복들. '이것이 행복이구나'를 인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행복을 가까이 뒀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도 결국 나중에는 지나간 시간이 돼버릴 거고 후회가 남을 텐데 지금에 충실해서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최강 배달꾼>의 촬영도 어느새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스스로 '최강수' 역할과 얼마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나.
"오지랖 넓은 건 비슷하다. (웃음) 나는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그 캐릭터한테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점을 찾기보다는. 그러니까 작품이 끝나면 그 '싱크로율'이라는 게 올라가 있는 거다. 촬영 전에는 그저 연기해야 할 캐릭터였다면 '최강수는 이런 고난 속에서 이렇게 대처하는구나!' 혹은 '이렇게 고통을 감내하는구나!' '내 인생에서도 고난이 오면 이 캐릭터가 그랬듯 이겨낼 수 있겠구나' 그런 걸 배운다."

- 작품이 끝나고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최강수'라는 캐릭터를 처음 선택한 이유도 있을 텐데.
"착해서.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내가 힘들지언정 남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멋있었다. 내가 그런 성격이기도 하고. 그런 모습에 매료됐던 것 같다.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나쁘게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게 더 어렵다."

 KBS 금토드라마 <최강 배달꾼> 속 고경표(최강수 역)의 모습.

KBS 금토드라마 <최강 배달꾼> 속 고경표(최강수 역)의 모습. ⓒ KBS

- '짜장면 배달부' 역할이라 첫 회부터 스쿠터를 멋지게 모는 장면이 나왔다. 얼마나 연습을 했나.
"사실 바이크를 아예 못 탔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한 달 정도 연습을 했다. 이제 스쿠터 정도는 탈 수 있다. 하지만 클러치가 있는 바이크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오토바이를 즐겨 타진 못할 것 같다."

- 처음 작품을 선택하실 때 그런 점이 망설여지진 않았나.
"사실 그걸 간과했다. (웃음) 그냥 대본으로 읽을 때는 이걸 내가 하나하나 연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글이 재밌고 전개가 빠르니까 좋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가 그걸 표현해야 하니까 어렵더라. 사실 <최강 배달꾼>의 재밌는 요소 중의 하나가 화려한 액션들이었지 않나."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면"


- 올해 앞만 보고 달렸다. 얼마 정도 휴식을 취할 계획인가?
"이번 작품이 끝나고 좀 쉬고 싶다. 한두 달 정도? 마냥 논다고 해서 좋을 건 없을 것 같다. 연기도 현장 경험이 계속 있어야 감이 살아있다. 오래 쉬면 현장이 어색해지고 감이 떨어지면 연기하기가 어려워진다. 감을 놓치고 싶지 않고 충분히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 만큼 비워내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때 본업으로 돌아가 열심히 하겠다."

- 감이 떨어질 정도로 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한 번 있다. '행복한 왼쪽'이라고. (웃음) 내 사진 중에 입금 전후라고 유명한 사진이 있다. 굉장히 살이 쪘을 때였는데 그때 한 반년 쉬었다. 행사하러 다니질 말았어야 했는데 행사하러 다녀 사진이 증거로 남았다. 그런데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응답하라 1988> 하면서 살을 조금 뺐고 영화 <7년의 밤>을 찍으면서 더 뺐고 <질투의 화신> 찍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 이제 또 쉬면서 내려놓을 계획인가? (웃음)
"잠깐 내려놓고, (웃음) 행사 안 가고 잠적할 거다."

- 아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달려오다가 돌아보니 어떤가.
"사실 아직 돌아볼 시간을 내지 못했다. 쉬면서 천천히 시간을 낼 생각이다. 나는 '어떤 과정이든 그것이 곧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룬 것을 결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떤 걸 이루기까지 모든 과정이 결과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게 작품의 시청률(결과)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높게 나오면 높은 대로 좋은 거고, 적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 서로 촬영한 사람들끼리 좋은 시간을 공유하면 그걸로 된 거다. 그게 가장 큰 자산이다. 그 과정이 행복하면 시청률이 높은 것보다 더 값지다. 사실 <시카고 타자기>도 시청률은 저조했다. 하지만 '고경표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려면 어떤 작품을 찾아봐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시카고 타자기>를 추천할 거다. 과정도, 캐릭터도 연기도 좋았다. <시카고 타자기>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시청률은 상관없다."

- 최강수의 신조는 '착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고경표의 신조는 무엇인가.
"나는 내가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주어지는 제약들에서 자유로운. 사실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쉽게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익명의 다수를 상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자유로웠으면. 사람 고경표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경표 최강배달꾼 시카고타자기 응답하라198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