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 관련 사진.

영화 <남한산성>은 원작 소설 분위기처럼 차분하고 담백하다. ⓒ CJ엔터테인먼트


380년 명청 교체기 조선에서도 일대 국운이 달린 사건이 있었다. 동북아 정세가 뒤바뀌는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당쟁과 사리사욕에 눈이 먼 과거 정치인들은 곧 한 나라의 왕이 신흥국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케 하는 수모를 만들어냈다.

이미 김훈 작가의 손에 재구성된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이 동명의 영화 <남한산성>으로 재탄생했다. 150억 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에, 추석 대목을 노렸다. 그렇기에 영화를 목전에 둔 예비관객들은 우선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왜 하필 패배의 역사인가'.

잊힌 맥락들

이 질문에 적확한 답은 아니겠지만 25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황동혁 감독이 말했다.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 한반도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한국을 둘러싸고 정세와 외교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380년 전 역사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었다"고 운을 뗀 황 감독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운명이라 보는데 그때의 일을 되새겨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총 11개의 챕터로 인조(박해일)가 남한산성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47일 간 벌어진 사건을 묘사한다. 이미 명의 쇠퇴를 읽은 최명길(이병헌)은 임금 앞에서 화친을 주장하고, 명분을 내세운 김상헌(김윤석)은 전쟁 불사론을 펼친다. 사실 이미 역사적으로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영화 역시 특별한 반전이나 극적 장치를 더하지 않고 이 두 사람의 논쟁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간다.

"세 번째 사극이지만 픽션이 가미된 게 아닌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에 고증에 따르려 노력했다"던 이병헌의 말에서 예상할 수 있듯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틀과 캐릭터성 안에서 최대한 생기를 불어넣으려 노력했다. 영화계에서 그 실력을 이미 인정받은 이병헌과 김윤석의 맞대결은 마치 실제의 당시 현장을 복원하는 듯 생기 있다. 무조건 서로의 주장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국익'이라는 대전제에 두 사람은 때로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서로를 지지하기도 한다.  

'남한산성' 김윤석-이병헌, 명배우들의 호흡척척 배우 김윤석과 이병헌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남한산성> 시사회에서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설명하며 웃고 있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0월 3일 개봉.

▲ '남한산성' 김윤석-이병헌, 명배우들의 호흡척척 배우 김윤석과 이병헌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남한산성> 시사회에서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설명하며 웃고 있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0월 3일 개봉. ⓒ 이정민


소설처럼 역시 영화 속 클라이맥스는 인조가 결국 청 앞에 나가 무릎꿇기로 결정하는 순간이다.

"대사양도 어마어마했고, 분위기도 숙연했다. 촬영 때 다들 오랜 시간 준비했을 거다. 대사 실수는 거의 없었다. 함께 한 김윤석 배우는 불과 같더라. 보통 리허설을 하고 몇 번 촬영해 보면 상대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기 마련인데 그는 매번 다른 연기를 했다. 탁구로 치면 내가 이 순간 공격해야 하는지 수비해야 하는지 감이 안 오더라. 순발력 있게 해야 했다." (이병헌)

"비하인드가 있다. 제가 실수로 대사가 바뀐 걸 몰랐다. 예전 시나리오를 외워왔는데 현장에 왔을 때 바뀐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모골이 송연하더라. 그 많은 대사를 다시 외우려고 하다 보니 병헌씨가 고생했다. 일부러 변화구, 직구 섞어 던진 게 아니다. 그가 잘 받아줘서 좋은 장면이 나왔다." (김윤석)

담백함의 두 얼굴

 영화 <남한산성> 관련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두 배우의 말처럼 일단 최명길과 김상헌 캐릭터가 영화에서 얼마나 큰 비중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관객 입장에선 각자 가치관에 따라 이 두 캐릭터에 저마다 다르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영화는 충분히 속도감을 조절해 가며 나아간다.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말이다.

약점은 오히려 캐릭터 비중의 분배에서 드러난다. 간결한 문체로 많은 인물의 시점을 담은 소설과 달리 영화는 선택과 집중의 묘미가 중요하다. 이야기의 속도감과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제 3의 캐릭터의 배치와 비중이 어쩌면 <남한산성>의 성패에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영화 중후반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장장이 날쇠(고수)나 중간 관리자인 무관 이시백(박희순), 그리고 노비 신분으로 고통 받다가 청나라의 역관이 된 정명수(조우진)가 오히려 이 알려진 이야기의 영화화에 생기를 불어넣을 캐릭터로 보인다. 감독 입장에선 이들 캐릭터 역시 최대한 절제해서 표현했는데 좀 더 풍부하게 이들의 고뇌나 고민점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가장 중점 둔 게 최명길과 김상헌의 사상 대결이었다. 다른 캐릭터에 대한 분량을 다 담을 수 없어 생략한 지점이 있지만 그들의 동기를 부여하고 심정을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황동혁 감독)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한 담백함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쉽게 판단하긴 어렵다. 감독과 배우 입장에선 추석 연후 "온 가족이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눌 만한 영화"로 입을 모았지만 극장에 발을 들여 선택하기까지 작용할 변수들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정치인들은 존재하고, 북한을 두고 반응하는 미국, 중국 등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남한산성>이 그것을 재현했다면, 관객들에겐 적극적인 해석 내지는 대화의 장이 요구된다. 팝콘 무비는 아니라는 뜻이다.

<도가니>(2014) <수상한 그녀>(2014) 등으로 비극과 희극을 오간 황동혁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 현대 영화 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는 건 충분히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

'남한산성' 다시 뭉치기 힘든 조합 25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남한산성> 시사회에서 배우 박희순, 박해일, 이병헌, 김윤석, 고수, 조우진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0월 3일 개봉.

▲ '남한산성' 다시 뭉치기 힘든 조합 25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남한산성> 시사회에서 배우 박희순, 박해일, 이병헌, 김윤석, 고수, 조우진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0월 3일 개봉. ⓒ 이정민


한 줄 평 : 담백함 속에 숨은 진심의 힘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평점 : ★★★☆(3.5/5)

영화 <남한산성> 관련 정보
각본 및 연출 : 황동혁
출연 :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제작 : 싸이런 픽쳐스
제공 및 배급 : CJ 엔터테인먼트
크랭크인 : 2016년 11월 21일
크랭크업 : 2017년 4월 23일
러닝타임 : 139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7년 10월 3일


남한산성 고수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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