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씨네마(주)


디즈니는 동화적인 화법으로 꿈의 가치를 들려준다. 또한, 미국의 문화와 이념을 전파하는 첨병 역할도 맡는다. 서점가에선 디즈니사를 긍정적인 눈길로 바라본 <애니메이션의 천재 디즈니의 비밀><꿈과 환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가 월트 디즈니 vs 인간 가치를 꿈꾸게 하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처럼 비판적인 시각의 책도 만날 수 있다. 오웬 서스킨드는 이들과 다르다.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만난다.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오웬의 사연을 다룬다. <더 울프팩>처럼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도 특별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영화가 어떤 위안과 의미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화다.

3살 때 갑자기 말문을 닫은 오웬은 자폐증이란 진단을 받는다. 상심에 빠졌던 가족은 오웬이 4살 무렵에 <인어공주>를 보다가 희미한 말을 내뱉자 깜짝 놀란다. 의사는 들은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언어로 뜻을 알고 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웬의 가족은 절망 끝에서 희망을 엿본다. 가족은 오웬이 그저 말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실제 사는 우리 세상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이해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은 자폐증이란 감옥에서 오웬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자폐증이란 감옥 그리고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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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맡은 로저 로스 윌리엄스 감독은 오웬의 아버지인 론 서스킨드와 오랜 친구 사이였다. 론이 아들에 대해 책을 집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감독은 서스킨드 가족의 만든 마법 같은 기적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곧바로 영화화를 추진한다.

"오웬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담고자 했다"는 로저 로스 윌리엄스 감독은 세심한 접근법으로 결심을 뒷받침한다. 영화에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은 가족 외의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던 오웬이 마음을 열었기에 가능했다. 감독은 2년여 시간을 오웬과 보내며 서로를 차근차근 알아갔다.

영화는 오웬이 자폐증을 진단받을 무렵인 과거와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집을 얻으며 독립하는 현재를 모두 담았다.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땐 론의 책을 기반으로 과거를 다루려던 감독은 현재 오웬과 가족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기적을 목격하며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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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이 겪는 과도기적 나날을 포착한 이유를 "전형적인 성인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일들을 담아낼 엄청난 기회"라고 감독은 설명한다. 그는 결함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로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을 보길 거부한다. 보편적인 성인의 이야기로 보길 원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발전 단계의 보편성이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의 핵심입니다."

디즈니가 만들지 않은 디즈니 영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을 보는 오웬의 시선을 담기 위해 영화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환타지아><피터팬><인어공주><라이언 킹><피노키오><밤비><정글북><미녀와 야수><노틀담의 꼽추><덤보><신데렐라><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알라딘><헤라클레스>의 장면을 극 중에 삽입했다. 오웬은 용기가 필요할 때, 친구를 갖고 싶을 때, 진짜 소년이 되는 기분을 배울 때 등 대화나 심리 표현의 수단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활용한다. 디즈니사는 오웬의 사연과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흔쾌히 영상 사용을 허락했다. 디즈니사의 협력은 "디즈니가 만들지 않은 최고의 디즈니 영화"란 찬사로 이어졌으니 홍보 효과는 톡톡히 누린 셈이다.

프랑스 애니메이션 제작사 맥거프가 만든 애니메이션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만든 영상은 오웬의 과거를 보여줄 때나 심리를 드러내는 장면에 사용된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오웬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그렸던 <길 잃은 들러리들의 땅>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었다. 로저 로스 윌리엄스 감독은 "오웬이 만든 악당은 자신이 마주했던 도전에 상응하는 것"이라며 "악당의 힘이 사람의 마음을 흐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의 자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죠"라고 부연한다. 그리고 "어쩌면 오웬은 이야기를 만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썼던 것일지도 몰라요. 저는 그걸 스크린에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었어요"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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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과 가족, 감독과 디즈니가 함께 빚은 마법 같은 장면을 보고 나면 자폐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말아톤>에서 자폐증을 가진 초원 역으로 분한 조승우 배우는 "자폐아 친구들은 꾸밈없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만납니다"라며 "달리 어떤 패턴이나 정의로 자폐아로 묶는다는 건 엄청난 오해라는 걸 깨달았던 경험이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도 자폐를 겪는 이는 많은 사람과 교감하길 원하나 방법에 서툴 뿐이라고 의견을 전한다.

오웬의 여정은 자폐증을 고치는 절대적 치료법이 아니다. 그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도움을 받은 한 가족이 퍼즐을 풀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과장된 표현과 감정을 보여주는 만화 캐릭터가 자폐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특별한 사례이기도 하다. 앞으로 의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가치로 충분하다.

<인생을 애니메이션처럼>의 끝 무렵 오웬은 새로운 도전 앞에 선다. 미래는 두렵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이런 고민은 가족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벗 삼아 전진하던 오웬에게 가족과 영화는 "인생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아니다"라고 털어놓는다. 인생은 해피엔딩만 존재하질 않으며 디즈니가 주는 교훈으로 모든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의존하던 오웬은 텅 빈 극장의 스크린과 만난다. 그는 어린 시절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불이 꺼지고 <라이언 킹>의 장면이 지나간 후 영화는 다음을 보여주질 않는다. 그것이 '끝'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아닌 오웬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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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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