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진출은 잠깐의 기쁨이었다. 새롭게 출범한 신태용호는 답답한 경기력으로 단 2경기만에 국민에게 크게 질타를 받고 있다. 여기에 '히딩크 사태'가 발발하면서 신태용 감독과 그를 선임한 대한축구협회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중연, 이회택 등 대한축구협회 전(前) 임원들과 현 직원들에 관한 비리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한국 축구를 향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최근 대한축구협회 회관 앞에서 일부 팬들이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오는 토요일 광화문 광장 혹은 축구협회 회관 앞에서 촛불 집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거스 히딩크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새롭게 부임하는 일이 옳고 그른 일임을 떠나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국민들 대다수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처럼 국민들이 하나의 축구 사건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흔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3주 동안 대한민국을 들끓게 했던 '히딩크 사태'처럼 한국 축구 팬들의 분노를 샀던 사건들을 살펴보자.

프라이의 오프사이드와 엘리손도의 판정

   온사이드였던 프라이의 위치

온사이드였던 프라이의 위치 ⓒ 유튜브 화면 캡쳐


알렉산더 프라이의 '오프사이드' 사건은 11년이 지난 현재도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회자되는 사건이다. 때는 2006 독일 월드컵이었다. 당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 대표팀은 2002년의 기세를 이어받아 순항 중이었다. 조별리그 1차전 토고와 경기에서 쿠바자에게 선제 실점을 허용하며 끌려갔지만, 후반전 이천수의 그림 같은 프리킥과 안정환의 역전골로 월드컵 사상 첫 원정 승리란 업적을 세웠다.

지네딘 지단과 티에리 앙리 등이 버티는 2차전 상대 프랑스와 승부에서도 앙리에게 먼저 골을 얻어 맞았지만, 후반 종반 박지성이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점 1점을 챙겼다. 토고에게는 반드시 승리하고 프랑스에게는 최소한 무승부 이상을 거두자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한국은 3차전 스위스와 경기를 가지게 됐다. 이기면 조 1위를 확정할 수 있었고 비겨도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었다.

강호 프랑스와 비겼기에 한국은 자신만만하게 스위스를 상대했지만 경기 양상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스위스는 생각보다 단단한 팀이었다. 스위스는 1·2차전에서 1실점도 허용하지 않은 단단한 수비진을 바탕으로 한국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결국 한국은 전반 23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필리페 센데로스에게 선제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한국은 이천수와 박지성을 중심으로 한 공격으로 동점골 사냥에 나섰지만 요원했다. 오히려 후반전 같은 시간 대에 열리던 프랑스와 토고의 경기에서 16강 진출의 경쟁자인 프랑스가 득점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한국은 순식간에 조 2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골득실로 인해 승리 아니면 조별 리그 탈락이 확정되는 한국은 더욱 다급하게 동점골을 노렸다. 그러던 순간 사건이 터졌다. 후반 77분 스위스의 주포 알렉산더 프라이의 발에서 추가골이 터진 것이다. 문제는 득점이 터지는 방식이었다. 프라이는 명백히 한국 최종 수비진 앞에서 공을 받았고, 이를 인지한 부심이 오프사이드 반칙을 선언하는 깃발을 높게 들었음에도 오라시오 엘리손도 주심은 그 장면을 온사이드로 인정했다.

가뜩이나 여러 장면에서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 축구 팬들과 방송 중계진들 모두 울분을 터뜨렸다. 느린 그림으로 프라이가 완벽하게 오프사이드 지역에 위치했고 부심이 깃발까지 들어 올린 장면이 명확하게 전달되면서 팬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결국 한국은 프라이의 득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기존의 언론은 물론이고 이제 태동하기 시작했던 축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엄청난 후폭풍이 이어졌다. 당시 FIFA 회장이 스위스 사람이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편파 판정이 이뤄졌다는 음모론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심지어 500만 명이 서명을 하면 스위스와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말도 안되는 소문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한국 축구 팬들의 분노 크기와 별개로 엘리손도 주심의 판정은 옳았다. 오프사이드 판정은 공을 받는 선수의 위치와 패스를 전달한 선수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프라이가 공을 받는 순간에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스위스 선수가 패스를 시도할 때는 프라이는 온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즉, 상대편의 굴절이란 과정은 오프사이드 판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엘리손도 주심이 온사이드를 선언한 것이다.

오해가 생긴 이유는 패스 과정에서 한국의 미드필더 이호가 발을 뻗었고, 이호의 발에 맞은 공이 굴절되어 프라이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호로부터 발생한 굴절을 최종 패스로 간주했고, 거기에 맞춰 부심이 깃발을 드는 바람에 현혹된 경향이 컸다. 당시 한 방송사의 해설위원이 주심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정확한 해설에도 이미 분노한 국민들은 그를 크게 비난하기도 했다.

물론 이 판정이 완벽한 판정인 것은 아니다. 프라이의 '오프사이드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스위스가 명백한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했지만 심판진 중 아무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 오심 이후 곧바로 프라이의 득점이 터졌다. 분노의 방향이 잘못 된 것은 아쉽지만, 한국 축구 팬들이 분명히 분노할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국민의 적이 된 엘리손도 주심이 독일 월드컵 결승전 주심으로 선정되자 한국 축구 팬들은 또 한번 울화통을 터뜨렸다.

박지성의 결승전 명단 제외

박지성은 시대를 풍미한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었다. 어린 나이에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해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했고, 유럽 무대로 넘어가서도 실력을 입증하며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결정적으로 2005년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아시아 마케팅'을 위해서 박지성을 영입했을 것이라는 항간의 조롱을 박지성은 멋진 플레이의 연속으로 당당히 이겨냈다. 득점력은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지만 특유의 활동량과 강팀과 승부에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박지성에게 국민들은 모두 매료됐다.

이제 설명할 박지성의 '결승전 명단 제외' 사건 발생 직전에도 그러했다. 2007-2008 시즌 박지성은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시즌 중반 부상에서 복귀한 박지성은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고 후반기로 갈수록 후보에서 주전으로 변신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박지성은 준결승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엄청난 활동량과 근성, 간헐적인 공격 가담으로 맨유의 결승 진출의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맨유의 결승행에 일익을 담당했던 박지성의 결승전 선발 출전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첼시FC와 결승전을 앞두고 언론을 통해 공개된 선발 명단에 박지성의 이름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교체 명단에도 박지성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결승전을 보기 위해 밤새 결승전 경기를 기다리던 한국 축구 팬들은 집단으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챔피언스리그가 워낙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기에 선발로 출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정 부분 이해가 가능한 일이었지만, 교체 명단에도 박지성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일부 축구 팬들이 '제출한 명단의 수정이 가능하다', '상대를 현혹시키기 위한 연막 작전이다' 등의 의견으로 애써 희망을 찾았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다.

맨유와 첼시의 결승전 경기 내용은 더이상 한국 축구 팬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박지성이 나오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TV 전원을 껐고, 박지성으로 인해 맨유의 팬이 된 많은 이들이 급기야 첼시의 승리를 바라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됐다. 승부차기 끝에 맨유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양복을 입고 그라운드로 뛰쳐 나온 박지성의 모습은 팬들의 가슴을 더욱 쓰라리게 했다.

후에 박지성이 두 번이나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으면서 한국 축구 팬들의 상처는 상당 부분 아물었다. 그럼에도 그날의 충격은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여러 번 박지성에게 해당 사건에 대한 미안함을 피력했을 정도로 나름 커다란 사건이었다. 결승전이 열린 모스크바에 내린 비처럼 한국 축구 팬들도 눈물을 흘렸던 그날의 밤이었다.

의리 축구의 '알제리 참사'

   알제리와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팬들

알제리와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팬들 ⓒ 위키미디어


2014년에 발생한 '알제리 참사'는 2002년의 성공 이후 처음으로 한국 축구를 향한 믿음이 바닥을 쳤던 순간이다. 이 경기만큼 한국 축구 역사상 논란거리를 많이 만든 경기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3년 전에 발생했던 이 사건을 다시 돌아보자. 러시아 월드컵 진출 과정만큼 어려웠던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을 거친 대표팀은 '시한부' 감독이었던 최강희 감독 대신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의 수장이었던 홍명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짜임새 있는 경기력과 공격진의 결정력이 어울어진 홍명보 축구가 국가대표팀에도 그대로 이식되길 많은 팬들이 고대했다.

허나 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짧았고, 2012년의 성공에 취했던 홍명보 감독의 행보는 의문 부호가 계속 따라붙었다. 평가전에서 이렇다 할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불안감은 증폭됐다. 소속팀에서 경기에 거의 출장하지 못하던 애제자 박주영, 윤석영 등을 월드컵 본선 최종 멤버에 발탁하면서 팬들에게 '의리 축구'라는 조롱을 받았다. 월드컵 본선 직전 가졌던 가나와 평가전에서 0대4 패배를 당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브라질 월드컵이 최악의 월드컵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조별리그 1차전 상대였던 러시아에게는 1대1 무승부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쁘지 않았던 러시아전 경기력으로 인해 미지의 팀이었던 2차전 상대 알제리는 한국의 제물처럼 인식됐지만 착각이었다. 알제리는 그동안 월드컵에서 만났던 그 어떤 팀보다 한국을 무참히 짓밟았다.

나름 성공적이었던 러시아전 베스트 11을 그대로 들고 나온 홍명보 감독과 다르게 적장이었던 바히드 할릴호지치는 1차전 선발 라인업에서 다섯 군데나 변화를 줬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전의 긍정적인 모습만 봤던 홍명보 감독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안일한 판단이 됐다. 할릴호지치의 철저한 준비의 결과물인 변화된 라인업은 경기 내내 한국을 유린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알제리는 적극적으로 한국의 골문을 노렸다. 한국 선수들은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흔들렸다. 유럽에서도 인정 받는 알제리 윙어들의 탁월한 개인 드리블에 한국 수비진들은 쉽게 뚫렸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지만 공격은 커녕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전반 26분 이슬람 슬리마니의 선제 득점이 터지면서 참사가 시작됐다.

일격을 맞은 한국 대표팀을 향한 주요 방송사 해설진들의 충고가 끝나기도 전인 전반 28분 코너킥 상황에서 라피크 할리시가 추가 득점을 뽑아냈다. 그래도 아직 2점 차이니 잘 정비하면 반격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관측이 무색하게 10분 뒤 압델무멘 자부에게 세 번째 실점을 허용하면서 한국은 완벽하게 침몰했다. 한국은 알제리에게 세 골을 내주는 동안 단 한 개의 슈팅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밀렸다.

후반전부터 전반전에 순식간에 벌어진 차이를 메우기 위한 한국의 반격이 시작됐지만 미풍에 그쳤다. 손흥민이 후반 5분 만에 만회골을 터뜨렸지만 12분 후 소피앙 페굴리와 야신 브라히미가 네 번째 골을 합작해 결정타를 날렸다. 후반 27분 구자철의 득점이 나오긴 했지만 한국은 추가 득점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고 2대4의 스코어로 경기가 종료됐다.

알제리에게 2대4로 패한 경기 결과도 문제였지만 선수들의 경기력이 더욱 비난을 받았다. 최전방 공격수로 출장한 박주영은 한 개의 슈팅도 시도하지 못했다. 대회 전부터 자격을 의심 받았던 골키퍼 정성룡은 두 번째 실점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조합적인 측면에서 의구심을 들게 했던 중앙 수비수 김영권-홍정호 조합도 처참히 무너졌다. 경기 전 팬들이 신뢰를 보냈던 손흥민, 김신욱 등 일부 선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최악의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팬들을 분노케했다.

대회 시작 전부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고, 본선에서도 최악의 경기력으로 알제리에게 아프리카 팀 최초의 '4득점 승리'라는 선물을 안겨준 홍명보호를 향해서 셀 수도 없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의리 축구'로 대변되는 선수 선발과 단순하고 치밀하지 못한 전술에 모든 팬들이 진노했다. 3차전 벨기에전 패배로 한국은 H조 꼴찌로 대회를 마감했다. 조별 리그 탈락 이후 한 인천 공항으로 귀국한 대표팀을 향해 일부 팬들이 '엿'을 던지는 사태까지 발생했을 정도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21세기에 한국이 맞이한 월드컵 중 최악의 월드컵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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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역대급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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