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의 꼼꼼하고 치밀한 'MBC 파괴 시나리오', 일명 '공영방송 장악 문건'이 공개된 가운데, 언론노조 MBC본부는 MBC 경영진이 이를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해 나갔는지 폭로했다.

20일 서울 상암동 MBC본사에서 열린 파업 17일 차 집회에는 국정원 문건 속에 등장하는 당사자들, 그리고 탄압 대상이었던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조합원들이 등장해 관련 증언을 보탰다.

지시는 노골적이었고, 기획은 꼼꼼했다. MBC 경영진이 국정원이 내 준 'MBC 정상화 방안'이라는 이름의 숙제를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 당사자들의 증언을 보태 숙제 검사를 해봤다. 

[하나] 지역MBC 사장 및 간부, 논설위원 대폭 물갈이: 성공

"지방사 사장들을 일괄 사퇴시켜 신임사장 친정체제 확립"
"편파방송을 방조해온 국장급·부장급 간부들에 대한 인적쇄신. 정상화 저항 제작본부 산하부서·논설위원실은 대폭적 물갈이 인사"

2010년 3월, MBC 사장이 된 김재철 사장은 취임 사흘 만에 19개 지역MBC와 9개 자회사, 총 28곳 중 22곳의 사장을 전면 교체한다. 절차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본사 사장이 교체됐다고 '3년 임기'가 정해진 지역사 사장을 일괄 교체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해당 문서에 '친노조, 대통령 라디오 연설 공공연히 반대'라는 딱지가 붙은 김정수 당시 라디오 본부장은 "당시 MB가 '공영방송 라디오에 연설하겠다'고 해서 'KBS면 됐지, MBC까지 할 필요 있냐'고 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합리와 상식의 기준에서 결정한 것뿐이었다. 친노조라서가 아닌데 그런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원주MBC 사장 임기 3년을 마치지 못하고 1년 만에 미술센터로 이동해야 했다.

사내 게시판에 'MBC의 독립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이우호 당시 논설위원은 이후 특집TF팀으로 쫓겨났다. 그에게는 '6·25 남침유도설 언급 등 친북좌파'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우호 전 논설위원은 "비슷한 말도 한 적이 없다"면서 국정원의 MBC 사찰에 대해"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황당해했다.

 최장원 언론노조 MBC본부 8기 사무처장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최승호 PD.

최장원 언론노조 MBC본부 8기 사무처장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최승호 PD. ⓒ 권우성


이런저런 이유로 간부급 인사가 요동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바로 김장겸 현 MBC 사장이다. 최장원 당시 언론노조 사무처장에 따르면 "'스트레이트 취재를 관리할 능력이 안 된다'는 평가를 받던 김장겸 생활과학부장이 정치부장으로 온 건 이상한 일이었는데, 이번 문건을 통해 그 배경이 확인된 셈"이라면서 "전영배는 이동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과 고등학교 선후배이자, 대학 동문이었다. 2011년 이동관이 언론특보가 되자 김재철은 사장직을 연임했고, 전형배와 김장겸, 박용찬 등이 등장했다"고 회고했다. 

[둘] 시사 프로그램 파괴: 성공

"편파방송 주도 시사고발프로(PD수첩, MBC스페셜, 후플러스, 시사매거진2580) 제작진 교체, 진행자·포맷·명칭 변경으로 환골탈태 추진"
"대외적 상징성 때문에 당장 폐지가 어려운 「PD수첩」의 경우 사전심의 확행 및 편파방송 책임자 문책으로 공정성 확보"

위 지침이 나온 지 정확히 7개월 만에 <후플러스>는 폐지됐고, 2010년 8월에는 김재철 사장이 느닷없이 < PD수첩-'4대강 수심 6m의 비밀'>에 대한 사전 시사를 요구했다. 당시 해당 방송분은 심의국 사전 대본 심의가 끝난 상태였고, 담당부장과 국장이 이미 자체 시사를 마친 뒤였다. 사장이 특정 제작물에 대한 사전 시사를 요구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후에도 꾸준했던 경영진의 < PD수첩> 사전 시사 요구와, 호평 일색이던 <후플러스> 폐지 미스터리의 답 역시 국정원 문건 속에 있었다. 당시 < PD수첩> 제작진이었던 최승호 PD는 "영화 <공범자들>을 만들면서 분명 누군가가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움직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 증거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1년 이상 < PD수첩>에 있었던 PD들을 다 다른 팀으로 보낸다고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한 발상이었다. 이제 좀 일을 잘 하게 되면 내보내겠다는 것 아닌가"라면서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는데 국정원과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후플러스> 제작진이었던 유충환 기자와 <뉴스후> 제작진이었던 이재훈 기자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후플러스> 제작진이었던 유충환 기자와 <뉴스후> 제작진이었던 이재훈 기자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당시 <뉴스후> 제작진이었던  이재훈 기자는 "재벌이고 종교고, 성역이 없던 프로그램이었고,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호평뿐이었다. 그게 누군가에겐 눈엣가시였던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역시 <후플러스> 팀이었던 유충환 기자는 "당시 프로그램을 폐지하며, 회사는 시청률과 제작비때문이라고 했다. 평균 6~8%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아이템에 따라 20%에 육박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극렬히 저항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는 초반이라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술만 먹었다"고 회상했다. 유 기자는 "성역 없이 비판할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의 MBC장악 시나리오가 담긴 노보를 살펴보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조합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의 MBC장악 시나리오가 담긴 노보를 살펴보고 있다. ⓒ 권우성




[셋] 노조 단체 협약 무력화: 성공

"노조의 인사권·편성권 간섭을 보장한 단체협약 '독소조항' 개정"

언론노조 MBC본부와 사측이 맺은 단체협약 21조는 '편성과 보도·제작상의 실무책임과 권한은 관련 국·실장에게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장 책임제'라 불리던 이 조항은 2011년 9월 '본부장 책임제'로 바뀐다. 국장 책임제가 경영진이나 정부 측의 입장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본부장' 보다는, 현업에서 일하는 제작진들에게 최종 권한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항 덕분에 인사권을 가진 경영진 조차 프로그램 내용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었다.

또, 종전에는 해고 노동자의 경우 법원이 1심에서 부당 해고 판결을 내리면 바로 복직되도록 했지만, 사측은 대법원까지 가야한다는 내용을 요구했다. 당연히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체협약이 사라진 지금, 사측은 제멋대로 자신들의 요구대로 이행하고 있다. 때문에 이용마·박성호·박성제·정영하·최승호 등 해직 언론인들이 1,2심에서 모두 이기고도 아직 회사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업무방해·파업 등 일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규에 따른 징계는 물론 법적대응을 확행하여 고질적 정치투쟁 타성 제거"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 특히 노조 집행부를 향한 해고, 소송 등 전례 없는 '보복 조치' 역시 국정원이 건넨 숙제였다.

2010년 파업 이후 해고 2명을 포함해 총 47명이 징계를 받았고, 2012년 파업 이후에는 해고 6명을 포함해 총 155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받았다. 현재까지 누적된 대기발령, 감봉 이상의 부당징계가 200명을 넘는다.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안준식 8시 노조 편제 민실위 간사,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안준식 8시 노조 편제 민실위 간사,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언론노조 MBC본부 주최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2010년 39일 파업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이근행 PD는 "파업 이후 징계를 예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공정방송 확립을 위한 노사의 충돌이었고, 파업 이전의 상황이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에 정당성이 있다고 봤다. 해서 정직 정도 예상했지, 해고까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측은 노동조합에 190억 가량의 손해배상소송을 걸고, 집행부의 개인 재산에까지 가압류를 걸었다.

뿐만 아니라, '타임오프법'에 따라, 노사 합의 하에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월급을 줄 수 있었는데 사측이 일방적으로 이 인원을 대폭 축소했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때문에 몇몇 집행부는 육아휴직을 내고 노조를 이끌었고, 해직 조합원들이 해직자 신분으로 집행부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안준식 8기 노동조합 편제 민실위 간사는 "몇몇 경영진들은 방문진 이사회마다 불려가서 숙제검사 하듯 단협 협상 과정을 보고했다"면서, "문건이 작성된 시기와 시차가 좀 있기는 하지만, 문건을 보면 사측이 하나하나 숙제를 다 해나간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넷] '건전 노조' 만들기: 실패

"이OO 노조위원장 임기만료를 계기로 건전성향 노조위원장 당선을 측면 지원, 건전 노사질서 회복을 위한 단초 마련"
"공정방송노조를 통해 좌파정부시절 비리의혹 및 노조 배후인물들의 부도덕성 등 내부비리 폭로 독려, 개혁 명분으로 활용"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1년 3월, 임기 만료 예정이던 이근행 노조위원장 후임으로 '건전(?)' 성향 노조위원장을 앉혀 노조 성향을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공작은 실패했다. 후임인 정영하 위원장은 이미 이근행 집행부 임기 종료 4개월 전, 94.6%의 압도적 지지 속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2012년 170일 파업 선봉장에 섰고, 그 과정에서 해고됐다.

국정원은 MBC 제2 노조인 '공정방송노조'를 활용해 언론노조를 무력화시킬 계획도 세웠다. '공정방송노조' 소속 인사들을 적극 기용하고, 이들을 활용해 언론노조 소속 조합원들의 비리 폭로를 독려할 '꼼꼼한'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부장급 이상 간부 100여 명이 소속됐던 공정방송노조는 현재 10여 명 안팎의 '친목 단체'로 축소되고 말았다. 이 역시 '실패'한 것이다.

이와 관련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작전을 담은 이 문서에서 단 한 가지 성공하지 못한 것이 노동조합 파괴"라면서 "저들은 건전 성향 노조위원장을 당선시키고 노조를 무력화하려 했지만 못했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나서 조합원을 해고하고 징계하고, 2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거는 등 사상 초유의 파괴 공작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다. 노동조합을 지켜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바로 여기 앉아계신 조합원분들, 우리가 지켜냈다. 우리가 그 증거"라면서 "그렇게 살아남은 우리가 바로 MBC 재건, 공정방송 재건의 희망이다. 옆에 앉아있는 우리 동료에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큰 박수 보내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김연국 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김연국 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상암사옥에서 열린 '국정원 MBC장악 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이에 앞서 김 본부장은 "지금까지는 이들의 노동법 위반 행위가 주목을 받았지만, 이제 이들이 왜 노동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면서까지 노동조합을 파괴하려 했는지가 드러났다"면서 "청와대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공영방송에 개입하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수사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노동조합 역시 이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권력의 개입이 작동할 수 있었던 내부의 약점들을 철저하게 성찰하고 밑바닥부터 바꿔낼 것을 다짐한다"고 외쳤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김주성 국정원 당시 기조실장, 원세훈 국정원장,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최시중 방통위원장,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문건의 작성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최종 책임자일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법적인 검토를 거쳐 모두 형사고발하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언론노조 MBC 국정원 이명박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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