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를 좋아합니다. 다큐로 세상을 봅니다. 잘 만든 다큐는 많은데 ‘본방사수’는 쉽지 않은 요즘, 의미 있는 TV스페셜과 다큐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슬슬 '사교육'에 '가성비'(가격 대 성능 비율)를 따지기 시작했다. '못 먹어도 고'였던 상태에서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는 건, 결국 현재의 사교육이 '인풋' 만큼 '아웃풋' 효과를 내지 못하지 않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즉, 지금의 사교육이 교육 수혜자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 SBS 스페셜 >이 지난 10일과 17일 방영된 '사교육 딜레마' 1, 2부의 문제의식은 바로 '사교육의 가성비'에서 출발한다.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통장에서 용 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공감을 얻는 요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통계청 조사 결과 월평균 사교육비 25만6000원, 하지만 이건 전체적인 평균 수치일 뿐이다. 우리나라 중산층 평균 소득을 450만 원으로 산정했을 때, 아이 한 명당 통계청 조사보다 훨씬 많은 사교육비가 들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3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집값에 과중한 사교육비를 제하고 나면 정작 두 부부의 '노후 자금'은? 적자 계산서가 나온다.

사교육 '몰빵'의 적자 계산서, 가성비는?

ⓒ SBS


예전이야 집안에서 자식 한 명이 잘 되면 온 집안 식구가 그 덕에 잘 먹고 잘살았다. 자식 농사를 잘 지으면 부모들이 '벤츠' 타는 게 자명한 결과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교육 시킬 돈이 있으면 차라리 그 돈으로 '포클레인 두 대'를 사서 하나는 자식에게 굴리게 하고, 또 한 대는 임대를 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 낫다는 '가성비'가 등장하는 시절이다. 부모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현실은 700~800명이 정원인 과학 영재 학교를 보내기 위해 초등 5학년 때부터 그 100배가 넘는 학생들이 영재고를 지망하여 각종 사교육 레이스를 질주한다. 어디 과학 영재고뿐인가. 사교육의 메카 강남을 피라미드의 꼭짓점으로 삼아, 국가의 온 학부모가 아이들을 사교육 정글에 내던지고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한껏 하고픈 것을 하고 뛰어놀며 창의력을 키워야 하는 시절'에 '뛰어노는 법을 배우는 학원', '창의력을 키우는 학원'까지 전전하고 있다.

왜 부모들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교육에 매진하는 학부모들은 항변한다. 과학 영재고는 가지 못할지라도 상위 1%의 교육이 아이에게 더 나은 선택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이 사회에서 더 나은 기회의 안전망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 모든 안전망과 기회를 위해 청소년의 시절을 저당 잡혔던 카이스트 출신의 여행 작가는 '그러면 행복은요?'라고 반문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한 대안으로 다큐멘터리가 제시하고 있는 건, 사교육 없이도 '아이 양육'에 성공한 '시크릿'의 공유이다.

사교육 없이도 잘 크는 시크릿?

ⓒ SBS


그 '시크릿'의 대안 첫 번째는 충남 아산의 예꽃재 마을이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노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부모들의 생활 공동체 예꽃재 마을. 이곳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이집 저집, 이 마당 저 마당을 뛰어놀며, 놀고 또 논다. 초등학교 4학년, 이제 공부에 신경 쓸 나이가 되었다는 이웃 학부모의 충고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비록 성적표는 미흡하지만, 아이 본인이 이해하고 있으면 됐단다. 심지어 굳이 고등학교, 대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는 학부모들이 모인 공동체가 이곳이다.

그다음에는 아빠가 주 교육자로 나선 이상화씨 집의 '몰빵 교육법'이다. 큰 아이가 태어난 뒤, 큰 병을 앓는 바람에 아이들 교육에 직접 나서게 된 아빠.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큰 아이를 하나고등학교에 보냈고, 지금은 작은 아이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 안 하는 듯하면서 아이와 도서관을 놀이터로 삼고, 안 하는 듯하면서 영어, 컴퓨터, 수학 공부를 시킨다. 아빠의 모든 관심은 웬만한 사교육 이상의 효과를 낳는다.

마지막 주자는 현대판 '맹모삼천지교'이다. 유명 학습지 대표 김준희씨 부부는 아이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도록 만들었다. 이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강남 8학군이 아니라, 외딴 강화도 주택으로 집을 옮겼다.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2부의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아마도 그런 것일 듯하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줘라. 아이들에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책임감을 부여해라. 억지로 무언가를 강요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라. 아이들은 아낌없이 주는 만큼 자라는 나무와도 같다.

물론 현재 거의 '학대'에 이른 사교육 현실에서 가장 기본적인 되새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 프로그램을 본 학부모들이 그런 다큐멘터리의 취지에 공감할 수 있을까?

사교육이 필요없는 시스템이 먼저다

ⓒ SBS


외려 다큐멘터리에서 보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사교육의 방식을 바꾸면 대학에 잘 갈 수 있어요'가 아닐까? 충남 예꽃재 마을에서 실컷 뛰어놀던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이르자, 스스로 '대학을 가겠다', '학원을 가겠다'며 나선다. 아버지와 함께 도서관을 가고, 책을 읽던 아이는 4개 국어에 능통하여, 가장 유명하다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유명 학습지 대표의 네 아이는 이른바 명문대도 부족하여, 의학 전문 대학원에, 치의학과 대학원생으로 성장했다.

다큐멘터리가 제시하고 있는 건, 결국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붐을 이루었던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 그게 아니면, 단지 이상화씨의 말처럼 '돈을 들여 남에게 시키는 사교육'이 아닐 뿐이지, 아빠가 거의 컨설턴트 수준으로 1:1 마크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일 수 있다.

이미 교육 시스템에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대안 학교나 홈스쿨링이 존재함에도, 왜 '사교육' 범람의 현실은 변화하지 않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다큐멘터리가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사교육'의 '가성비'가 문제 되고 있는 현실, 다큐는 '이런 시크릿 방식으로도 아이를 잘 교육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보이는 건 '이렇게 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어요'이다. 더구나 그 방식이 '사교육'보다 오히려 시청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진다.

대도시에서 맞벌이하며 혹은 한 부모 가정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남의 예꽃재 마을은 비록 대도시 아파트보다는 싸겠지만 그림의 떡이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부모가 생이별하며 전적으로 교육에 매진하는 이상화씨의 방식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비일비재한 기러기 가족의 또 다른 양상일 뿐이다. 유명 사교육 업체 대표의 사교육 없이 성공적인 자녀 대학 진입기는 말 그대로 '아이러니'다.

1부의 마지막, 평범하게 살아가는 학부모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사교육은 힘들어요, 공교육에서 다했으면 좋겠어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유명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다. <경향신문>에 연재된 일본 학부모의 연재기 중 '박철현의 일기일회' 역시 공부하지 않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다.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서,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방학 중에 참여해야 할 각종 행사가 많아서, 굳이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동네 센터가 있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중 결국 결정적인 건, 일본 사회가 업종과 상관없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인정해 주고 있다는 이른바 '신분 상승의 욕구가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당장 추석 연휴, 정부가 내세운 10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긴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도 가며 즐기는 사람들은 대기업 혹은 그에 부합되는 위치의 사람들이다. 중소기업 재직자들이나 그 이하의 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10일을 다 놀지도 못한다. 대학생들에게 눈을 낮추라고 하기 전에, 중소기업 직원과 대기업 직원의 월급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줘 보라. 비정규직 직원이라 해도 추석 연휴에 월급이나 자리 걱정 없이 다 놀고, 여행 다닐 수 있다면 굳이 왜 애를 써서 아이들을 온종일 학원에 가두어 놓겠는가. 이런 기본적인 모색 없는 '사교육 가성비' 비교와 '시크릿' 제안은 결국 또 다른 치맛바람, 다른 버전의 사교육 제시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SBS스페셜-사교육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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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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