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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볼만한 공연작품이 생겼다. '토박이' 상품이다. 순전히 '광주산'인 데다 광주에서 생긴 극단 토박이의 신동호 전 대표가 감독을 맡았으니 진짜 토박이 공연이다. 지금까지 무려 120회 정도의 공연을 했다 하니 지방예술품으로는 돋보이는 작품이다.

때로는 깊은 슬픔과 눈물이 보여주다가 가끔은 웃음과 해학으로 관객의 애락(哀樂)을 잡아당긴다. 그러다가 관객들은 결국 광주의 역사, 아니 한국 민주주의가 겪었던 가장 불행한 현대사 속에 빠져들고 만다.

이쯤 이야기하면 알 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 그… 5.18…. 그렇다. 2012년 첫 공연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 만에 '광주의 5월'을 대표하는 상설연극으로 자리 잡은 <애꾸눈 광대>의 이야기다.

광주 5.18 대표 연극 <애꾸눈 광대 - 어머님 전상서>

<애꾸눈 광대 - 어머님 전상서>에서 어머니와 딸이 5.18 항쟁에 참여한 아들로 인한 아픔을 나누고 있다.
 <애꾸눈 광대 - 어머님 전상서>에서 어머니와 딸이 5.18 항쟁에 참여한 아들로 인한 아픔을 나누고 있다.
ⓒ 김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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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더운 여름날 광주문화재단 빛고을 아트스페이스에서 애꾸눈 광대의 <어머님 전상서> 마지막 공연이 열린다는 초청장을 받았다. 사실 애꾸눈 광대 공연을 전에 두 번이나 본 터여서 또 보는 의욕이 당기지 않아 안 가고 있다가 올 마지막 공연이라니 예의상 가본 셈이다.

공연 시작서부터 무대가 달랐다. 초기작품 <애꾸는 광대>가 아니라 애꾸눈 광대가 만든 다른 작품 <어머님 전상서>였다. 아니 그렇다면 부를 때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금방 왔을 것을….

맨 처음 애꾸눈의 1인극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신 감독이 연출하면서 <애꾸눈 광대> 연극이 탄생했다. 이번에는 애꾸눈이 살짝 뒤로 빠져 이야기를 해설하고 새로 이행원씨가 연출을 맡아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와 배우들로 짜인, 이를테면 신작이었다. 물론 감동도 초기와는 전혀 다는 느낌으로 와 닿았다.

그런데 연극 이야기 전에 잠시 애꾸눈으로 불리는 이지현(예명 이세상)씨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85년경 민주화운동단체들이 모여 있었던 광주 YWCA에서였다. 당시 나는 노동현장에서 비합법적인 운동을 하고 있어 대놓고 공개적인 곳에 들락거리기도 힘들었지만 재야단체 행사 중에 그를 보았다. 바로 알 수밖에 없는 것이 키도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큰 데다 한쪽 눈에다 안대를 떡하고 붙여 놨으니 안 튈 수가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과 그 이후에는 늘 민주화투쟁의 현장에서 그를 보고 만났다. 과장된 몸짓과 표현이 유별났으나 정 많고 웃음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5.18 유족들과 더불어 5.18 부상자회 초대회장을 맡아 생업을 팽개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현장에 서 있었다. 군부독재 시기 치열한 가두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일선에 대치할 때도 맨 앞에서 싸웠으나 육중한 키와 그것보다 더 상징적인 애꾸눈 안대로 인해 경찰들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애꾸눈 광대> 주인공 이지현씨가 1990년 수배를 받던 도중 김인곤 국회의원의 승용차에서 연행하려는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
 <애꾸눈 광대> 주인공 이지현씨가 1990년 수배를 받던 도중 김인곤 국회의원의 승용차에서 연행하려는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
ⓒ <동아일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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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과 1989년, 드디어 국회에서 5.18광주항쟁이 다뤄지면서 청문회가 열렸다. 그 끔찍했던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국민들이 함께 놀라던 시절이었다. 그때 진실규명을 촉구하며 국회난입으로 알려진 사건에서도 그를 볼 수 있었다.

더 재미있는 전설적 사건이 1990년 7월에 있었다. 당시 중앙 신문 사회면에서 대서특필까지 했고 광주에선 생방송을 할 정도였던 일이 일어났다. 1990년 7월 19일 낮 12시 반 경에 광주 시내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 김인곤 국회의원의 승용차를 전투경찰 3개 중대가 겹겹이 에워싸고 거의 5시간여를 대치했던 사건이었다.

바로 그 차 속에 그 전년도 이철규 사인규명 투쟁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특수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수배 중이었던 이지현 5.18부상자회장이 김인곤 의원과 같이 차를 타고 있었다. 김 의원과 5월단체 대표들이 면담을 갖고 식당으로 가던 중 김 의원과 각별했던지 같은 차를 타고 가다 경찰에 걸렸다 연행을 거부하고 김 의원마저 신병 인도를 거부해서 일어난 에피소드였다. 대치하던 순간이 실시간으로 뉴스에 나왔고, 결국 차량째 경찰서로 유인돼 이 회장은 검거 후 옥고를 치렀다.

편하게 살 오지랖 자체가 없었다

나와 가깝게 지냈던 것은 1990년 넘어 민주연합, 전국연합에서 같이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모임도 같이 하게 됐고 간간히 술도 한 잔씩 마셨다. 오랜 투쟁을 하였으나 생활 형편은 갈수록 힘들어져 부인의 직장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달픈 삶의 이야기를 가끔 나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긴 어려웠지만 5.18 유족이나 부상자들이 받은 보상금도 그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나중에 어려워지는 것이 대강의 사정이었던 것 같다. 보상금도 못 받은 시민들이야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으나 보상자들 역시 보상금으로 생계의 터전을 만들어 보고자 했으나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사업을 잘 할 수도 없어 돈만 날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있는 돈도 치료비나 자녀 교육비 등으로 항상 나가버리는 것이어서 지속적인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5.18 민주화운동의 전설이었던 애꾸눈이었지만 삶의 어려움은 속일 수 없는 것이었고, 정권이 교체되고 동료 운동가들이 잘나가던 시절이 왔음에도 그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좋은 자리 하나 먹고살 여건 하나 만들지 못했다. 오지랖은 넓었으나 자기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꾸눈 광대 - 어머님 전상서>에서 주인공 이지현씨가 극중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고백하고 있다.
 <애꾸눈 광대 - 어머님 전상서>에서 주인공 이지현씨가 극중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고백하고 있다.
ⓒ 김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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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방황 속에서 그가 변신을 해 나타났던 것이 2010년 후였다. 5.18 투사 이지현이 아니라 애꾸눈을 덮은 마스크를 쓰고, 희한한 광대의 복장으로 나타나 마술을 하고, 성대모사나 만담을 하고, 춤을 추는 진짜 광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엔 연예 끼가 넘치는 그인지라 그냥 해보는 것이겠지 했는데 그는 본격적으로 애꾸눈 광대가 되어 그가 살았던 한 많은 삶과 5.18의 이야기를 전하는 희극인으로 재탄생해 버린 것이었다.

2012년 처음으로 선보인 공연은 5.18 당시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다는 설정의 <애꾸눈 광대> 1인극 품바 공연이었다. 5.18 당시 서울에 살다 뉴스를 듣고 광주에 와 총에 맞는 시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다 군인의 개머리판에 맞아 부상당해 실명하고 상무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그의 이야기는 광주시민을 울렸다. 그러나 1인극으론 많은 역사를 표현하기 어려웠고 혼자 관객을 울고 웃겨야 하는 데서 나오는 조잡함도 있었다. 2014년의 같은 작품은 신 감독의 참여와 배우들이 협연으로 수준 높은 작품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올해 무대에 올려진 <애꾸눈 광대 - 어머님 전상서>는 첫 작품보다 더욱 정서적 감각적으로 세밀해졌다. 이야기 자체가 실제 애꾸눈 이지현의 자전적으로 겪은 슬픈 가족의 이야기다. 극에 나오진 않았지만 동생도 5.18 때 시위를 하다 상무대로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연극에 나오는 대로 여동생은 젊은 나이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실제로 여동생의 남편은 망월묘역 묘지변호 114번으로 결혼했다 불행하게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는 공연을 하던 중 어머니의 부음에 마지막 가는 길을 모시지 못했다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연극 <어머님 전상서>는 그 슬프디슬픈 가족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 특히 5.18에 참여한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시각으로 만들어졌다. 거기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불안과 좌절, 슬픔과 분노는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끝내 죽음 앞에서 자식과 역사에 대한 믿음, 사랑과 재회를 통해 아픔은 새롭게 카타르시스(정화) 된다. 광주시민이 아픈 5.18의 역사를 눈물로 싸우면서 결국 희망과 평화로 이겨냈듯이….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러시아 소설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에서 느끼는 혁명의 역사와 그 속에서 변하는 인간의 사랑과 의지의 스토리를 <어머님 전상서>에선 한 부분이 빠진 듯한 느낌이 있었다. 슬픈 역사와 삶이 극을 너무 지배했다. 다소 우울하고 소극적이다. 너무 자전적 실제 이야기에 묶여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자전적 이야기가 보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되고 역사극으로서 승화되기 위해서는 가족이 겪은 이야기서부터 시작하되 시민의 힘으로 총을 든 군대를 이기는 광주시민공동체의 웅장한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슬픔을 용기와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의 정서적인 극으로 폭을 넓히면 훨씬 더 감동적이고 장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새 작품이었으니 공연을 거치며 재탄생할 것이란 기대감도 갖는다.

<택시운전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 지난 2012년부터 해를 거듭해오면서 광주의 대표 연극으로 자리 잡은 <애꾸는 광대>의 힘을 느낀다. 이 연극이 광주와 전국을 통해 120여 회 이상 공연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개가라 할 수 있다.

나는 그간 5.18을 문화화한 적지 않은 작품을 만났다. 거기에는 수많은 소설과 시도 있었고, 뮤지컬도 있었다. 연극도 있었고 판소리와 춤극도 있었다. 역시 대중적으로 대박이 난 것은 영화 부문이었다.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26년> 등의 영화에 이어 이번에 1천 2백만이 넘는 관객이 본 <택시운전사>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택시운전사>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는 것만으론 허전함이 많다. 화려할 수 있는 배우들이나 제작 규모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한 구조 속에서 힘들게 버텨 오며 만들어진 작품들이 겪는 상황이 너무 비교돼 안타깝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의 <택시운전사>는 이전의 수많은 문화예술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는 아니다. 아직도 누군가에 의해 그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새로운 작품들로 나타났고, 나타나고 있고, 나타날 것이다. 그 역사의 주인이었던 광주시민이나 공감했던 국민 그리고 세계인들은 언제든 그런 작품을 반갑게 맞이할 자세가 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세태의 흐름에 너무 치우쳐 있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택시운전사>의 대박에 한마디씩 하고 사진을 찍기에 바쁘지만 정작 더 나은 훌륭한 정치인이라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 지금 많은 자원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더욱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지?'라는 고민을 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꾸눈 광대> 공연 포스터
 <애꾸눈 광대> 공연 포스터
ⓒ <애꾸눈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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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애꾸눈 광대>라는 작품을 보며 우리가 작은 기대감을 가져도 될 듯하다. 어쩌면 지금 이 극에 보다 많은 지원여건이 투입된다면 이 극 역시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크게 부각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애꾸눈 광대가 다음 달 17일 오후 7시 30분 광주시청 대강당에서 앵콜공연을 갖는데 이어, 11월 6일 오후 8시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공연한다고 한다. 모두 무료공연이다.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의 리더들이 관람할 기회가 될 것이다. 큰 성공을 바란다. 아니, 많은 관객의 참여와 박수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감동의 모티브를 받은 현명한 리더들이 이 연극의 보다 성숙된 발전을 위해 지원과 투자의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나의 바람이다.

<애꾸눈 광대>라는 연극 이야기가 길었다. 오랜만에 담가 논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번에도 역시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선배이자 동지인 이지현 회장, 아니 이제 연극인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애꾸눈 광대 이세상(예명)의 인생에 눈물을 흘렸다. 연극 보다 더 연극같이 깊은 그의 인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애꾸눈 광대>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소장해 두시기를 권한다.


태그:#애꾸눈광대, #어머님전상서, #이지현, #이세상, #택시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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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GIST) 대외부총장, 전 UCLA 한국학센터 연구원 참여자치21 대표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장 광주혁신클러스터추진단장 기업주치의센터장 광주광역시장 특보 지역미래연구원장등을 맡았다. <창조도시><김영집의 고전담론>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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