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영화제가 문을 열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한국사회의 여성인권은 어디쯤 와 있을까요? 스크린에는 여성을 폭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연출한 영화가 범람합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채널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하나의 흥미로운 콘텐츠처럼 취급됩니다. 2017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생각보다 멀리 와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주제는 '지금, 당신의 속도로'입니다. 여성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향해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분명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치열하고 용기있는 도전을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CGV아트하우스 압구정에서 만나보세요.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 여성인권영화제


영화 <라 차나> ㅣ 감독 루치아 스토예비치

혁신적인 스타일과 숨 막히는 리듬으로 전세계의 관객을 사로잡았던 플라멩코 댄서 '라 차나'. 그러나 1970년대, 최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런 그녀가 3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영화는 감춰졌던 비밀을 밝히며, 한 여성댄서의 일대기를 감각적으로 담았다.

이토록 강렬하게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영화 <라 차나>는 살아있는 플라멩코의 여신 라 차나(La Chana)의 춤과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녀의 본명은 안토니아 산티아고 아마도르(Antonia Santiago Amador)이며, 스페인의 관습에 의해 'Santiago'는 부계의 성이고 'Amador'는 모계의 성이다. 그녀는 1946년생으로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전성기는 66년에서 79년이었고 6년간의 휴식기를 갖고 다시 85년부터 91년까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그녀의 매니저이기도 한 첫 남편은 최고의 무용가인 부인을 내세워 돈벌이를 시키며 자신이 멋대로 모든 것을 관장했다. 라 차나는 남편에게 맞아서 갈비뼈가 2개나 부러진 채로 춤을 추기도 했다. 결국 춤을 추지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하게 되자, 남편은 그녀가 벌어둔 모든 돈을 갖고 그녀와 딸을 버리고 떠난다. 그녀는 스스로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인생임을 확실히 깨닫고 다시 춤을 추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 여성인권영화제


플라멩코의 주요 원리는 발바닥에 중력을 실어서 리듬을 창조하고 손으로는 수평의 힘으로 박수를 치며 리듬을 만드는 것이다. 즉 몸의 수직의 힘과 수평성이 만나서 조화하고 반응하며 새로운 리듬을 창조하고 그에 따라 영혼과 몸이 춤추는 것이다.

영화의 처음은 비트와 강렬한 그녀의 춤으로 시작되는데, 이미 이 대목에서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들어간 그녀의 춤이 영화의 맥락을 잡고 있다. 라 차나의 춤의 특징은 '넘나듦(liminality)'과 '불러일으킴'이다. 그녀는 내면에 몰입할 때 미로를 본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여러 개의 문이 있다. 어느 문은 보석의 문, 다른 문을 열면 빛과 색채의 세계가 있다. 이 넘나듦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리듬이다. 한 리듬이 끝나면 그녀는 다른 리듬을 만들고 다른 세계에 들어간다. 그녀는 춤으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넘나들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녀의 춤은 제의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 여성인권영화제


그녀의 춤에는 그녀만의 고통과 아픔이 듬뿍 묻어나고 있다. 인간은 상황이나 환경이 안 좋으면 몸과 마음도 아프게 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불러일으켜' 살아내야 한다. 이는 어쩌면 철저히 개인적이고 신체적인 문제이다. 자신이 불러일으킨 그 기운으로 세상에 자기가 태어난 몫을 해야 한다. 그녀의 춤에 처절한 고통과 동시에 대단한 생명력이 있는 것은 이 '불러일으킴'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발바닥으로 땅의 에너지를 끌어 올려서 자신의 리듬을 만든다. 그 기운을 단전에 모아서 얼굴, 팔과 손으로 전한다. 놀랍도록 강렬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이 점이 많은 사람이 그녀의 춤에 열광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라 차나는 자신의 감정의 근원은 리듬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동작을 정지하는 그 순간이 움직이는 순간보다 강력하다. 그 정지 순간 그녀의 심장박동, 들숨과 날숨이 드러나는 호흡을 보며 관객은 자신들이 숨 쉬고 살아있음을 진하게 느낀다. 그녀가 춤을 추는 방식은 모두 다 즉흥이다. 미리 음악가와 맞추거나 연습하지 않는다. 즉석에서 리듬을 만들고 영혼이 가는대로 춤춘다. 그녀의 춤은 고정되어 있거나 안정적이지 않고 늘 변한다. 이는 연습 없이 살다가는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 춤이 위대한 것은, 그것이 우리네 삶과 같이 잡을 수 없고 남길 수 없는 일회적인 것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만, 춤추는 그 순간의 생명력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몸뿐이며, 우리의 삶과 죽음은 춤의 리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 니체의 말을 기억하며 영화의 강렬한 여운을 내 몸에 새긴다.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제11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라 차나> ⓒ 여성인권영화제



덧붙이는 글 작성 :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본 기사는 여성인권영화제 홈페이지 및 블로그에도 업로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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