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화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전망좋은 집>(2012)의 노출 장면을 아무런 동의 없이 공개한 감독 이수성을 고소했고, 그 소송을 몇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곽현화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전망좋은 집>(2012)의 노출 장면을 아무런 동의 없이 공개한 감독 이수성을 고소했고, 그 소송을 몇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 마인스엔터테인먼트


때는 지난 2015년 7월.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아래 BIFAN, 당시 집행위원장 김영빈)는 부천의 한 호텔에서 '저예산 영화제작: 성공적인 결과물을 위하여'라는 그럴싸한 제목의 포럼을 개최했다. 영화제 측은 "저예산 영화제작에 특화된 영화제작자들이 모여 실제 사례와 전망을 나누고,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스크린을 지배하는 가운데 수익성이 있는 독립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고 이 포럼의 의의를 설명한 바 있다.

살짝 의아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저예산 영화제작'이란 주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 "수익성 있는 독립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방향"이 과연 '19금 저예산 영화'까지 포함해야 하는가. 과연 그렇다 해도 '저예산'과 '독립'의 경계는 또 어떻게 구분 지어야 하는가. '저예산 독립' 영화라면 주제나 완성도, 결과물에 상관없이 모두 다 지지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상념들이 들었던 거로 기억한다.

이 자리에, 이수성 <전망좋은 집> 감독도 패널로 참석했다. 최근 그는 <전망좋은 집>의 주연배우 곽현화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한 사건과 관련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배우 곽현화의 동의 없이 노출 장면을 IPTV 감독판에 넣은 것에 대한 혐의였다. 하필 이수성 감독과 곽현화는 2015년 BIFAN에 연출작 <어우동: 주인없는 꽃>과 출연작 <아티스트 봉만대>로 나란히 참가하기도 했다.

<전망좋은 집>은 "저예산 영화" 맞다... 하지만

촬영 당시 콘티 공개하는 <전망 좋은 집> 이수성 감독  배우 곽현화에게 성폭력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했던 영화 <전망 좋은 집>의 이수성 감독이 지난 7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화 촬영 당시의 콘티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 촬영 당시 콘티 공개하는 <전망 좋은 집> 이수성 감독 배우 곽현화에게 성폭력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당했던 영화 <전망좋은 집>의 이수성 감독이 지난 7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화 촬영 당시의 콘티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시 포럼에서 이수성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전망좋은 집> <연애의 기술>과 프로듀서로 참여한 <짓> 등을 예로 들며 저예산 영화 만들기의 고충을 토로하는 동시에 IPTV 등 2차 플랫폼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수익에 대해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 '19금' 영화이거나 배우의 노출 신이 있는 작품도 포함됐지만, 그는 IPTV 등 2차 플랫폼으로 낼 수 있는 수익이 자신의 필모그래프를 채워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전망좋은 집>은 '저예산 19금 영화'의 대명사이자 성공사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IPTV를 기반으로 여성 배우의 노출 신을 강조하고, 또 이후 '감독판'이란 미명 하에 곽현화의 동의 없이 노출 신 '한 컷'까지 포함한 '무삭제 버전'으로 더 큰 수익을 챙겼다. 최근 <디스패치> 등의 보도에 따르면, 영화 <전망좋은 집>으로 제작사는 10억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고 한다.

그 사이, 곽현화는 자신의 노출이 포함된 영화 속 장면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하며 고통받아야 했다. 제작사는 감독판 공개 당시 곽현화의 노출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 출연하며 '을' 곽현화가 받은 출연료는 400만 원이다. <전망좋은 집>과 이수성 감독은 과연 누구를 위한 '예술'을 하고, 누구를 위한 '독립영화'를 만든 것일까.

"제작비는 1억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만들 자신이 있고 저예산 독립영화입니다."

최근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곽현화는 캐스팅 당시 이수성 감독이 <전망좋은 집>을 '저예산 독립영화' 영화로 소개했다고 밝혔다. 곽현화는 마침 감독의 데뷔작인 <미스터 좀비>도 나쁘지 않게 봤고, 또 검색해 보니 영화 <알 포인트> 연출부 등 상업영화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기에 이수성 감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처음 찍은 입장이었고, '주연입니다'하고 시나리오를 주더라. 배우가 보통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와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참고하게 마련이다. <알 포인트>로 (영화계에) 입문했고, <미스터 좀비>도 봤는데 영화가 괜찮았었다. 시나리오를 봤는데 감독님이 엉망진창으로 영화를 만들진 않겠지 (생각했다). 사실 베드 신이나 노출 신이 있다고 해서 다 에로영화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사기'

곽현화, 침통한 표정으로 녹취록 공개 방송인 곽현화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웰빙센터에서 영화 '전망 좋은 집' 이수성 감독이 신체 노출신과 관련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이수성 감독과의 통화 녹취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 곽현화, 침통한 표정으로 녹취록 공개 방송인 곽현화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웰빙센터에서 영화 <전망좋은 집> 이수성 감독이 신체 노출신과 관련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이수성 감독과의 통화 녹취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예술의 기준이야 천차만별일 수 있다. 전제는 있다. 모든 (영화) 예술은 의도가 아닌 결과물로 평가받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미 저예산 독립(예술)영화를 힘겹게 만드는 영화인들이, 이를 평가하고 관람하는 평자들과 관객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과연 이 <전망좋은 집>이란 결과물을 어떻게 바라볼까.

"저는 노출 신 하나 있고, 베드 신은 없지만, 그렇게 말씀하셨고 연출을 잘 하리란 믿음이 있었어요." (곽현화)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썼어요? 감독이? 그건 일종의 사기에 가까운데? 결과로 보면." (김어준)

"근데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잖아요,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게." (곽현화)

"결과로 받아들이기는, 그래서 출연료도 그리 높지 부르지 않았고. 첫 번째 영화였고, 감독의 과거 영화들도 상업영화도 조연출도 했고, <미스터 좀비>도 이런 스타일의 저예산 독립영화, 작은 영화들도 했던 사람들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였다는 거죠?" (김어준)

"그리고 제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노출 신은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먼저 못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곽현화)

아마도, 다수 영화계 인사들이나 관객들의 인식도 김어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둘째 치더라도, '감독판'이란 미명 하에 IPTV에 합의가 안 된 장면을 포함하는 '짓'을 하는 '저예산 독립영화'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업계의 인식을 받아들이지 못, 아니 안 했다. 곽현화가 제작사와 계약한 계약서상에 포함된 이 조항 때문이다.

"단, 노출 장면은 '갑'과 '을이 사전에 충분한 합의 하에 진행함을 원칙으로 하고, 촬영 중 사전에 합의된 내용 이외의 요구는 '을'이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곽현화는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곽현화는 감독판 편집본을 보고 이수성 감독에게 이 장면을 빼 줄 것을 요구하는 통화 녹취 내용도 증거로 제출했다. 이 수 분가량의 이 녹취에는 이수성 감독이 연신 "죄송하다, 미안하다",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공개된 곽현화의 재판 2심 판결문 중 일부.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공개된 곽현화의 재판 2심 판결문 중 일부. ⓒ 한겨레TV


반면 이수성 감독은 법정에서는 물론 최근 SBS <본격 연예 한밤>과 인터뷰에서도 "녹취하고 있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마치 유도신문 같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공개된 전체 녹취 내용에서 이수성 감독은 도의적인 책임과 미안함을 전하는 목소리다. 그러나 법원은 이 녹취 대신 계약서상 "합의"에 무게를 둔 것이다.

이에 앞서 이수성 감독은 지난 7월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관련 기사: 합의 없는 노출? "지난 3년간 억울했다, 곽현화 입장 궁금"). 곽현화 역시 이 기자회견 직후 가진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관련 기사: 곽현화 정면 반박 "노출장면 합의 안 해... 언급 자체가 괴로워").  

더 많은 '곽현화들'이 필요하다

곽현화 '감독이 먼저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방송인 곽현화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웰빙센터에서 영화 '전망 좋은 집' 이수성 감독이 신체 노출신과 관련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곽현화 '감독이 먼저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방송인 곽현화가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웰빙센터에서 영화 <전망좋은 집> 이수성 감독이 신체 노출신과 관련해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곽현화는 이번 '법정 투쟁' 이후 적지 않은 여성 배우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개인적인 응원은 물론이요 비슷하게 노출 장면이나 원치 않은 장면을 촬영해야 했던 경험들을 토로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일부 영화 현장이나 이른바 'IPTV' 19금 영화 현장에서 배우의 동의 없이 노출을 포함한 배우와 합의되지 않은 장면을 촬영한 예가 적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제가 기자회견을 하고 녹취록도 공개하는 이유가 바로 그 점이다. 여배우들이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이런 사건 이후 많이 알게 됐으니까 영화 찍는 환경에서 감독이 조심스럽게 될 것이고, 배우도 갑작스럽게 노출신을 찍자고 했을 때 부담스러우니 문서화하자고 얘기하고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곽현화)

1억이든, 10억이든, 또는 50억, 100억이든 개별 규모의 영화마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드는 영화 현장에서 신인을 포함한 개별 여성 배우들은 '을'의 위치일 수밖에 없다. 다수 스태프가 모여 '노동'을 하는 촬영 현장에서 감독의 일방적인 촬영 요구를 거부하기란 여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를 일방적으로 악용하며 업계 전체의 이미지를 갉아먹는 '일부'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술은커녕 '수익'만을, '돈'만을 쫓는 이 파렴치한 '일부'들 말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는 이른바 '배우 표준계약서'의 도입이 시급하다. '표준 계약서'가 업계에 '표준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곽현화와 같은 '을'들을 위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 연예인 인권지원센터도 활동 중이다.

파렴치한 '갑'들을 업계에 퇴출하기 위해서라도, 향후 나올지 모를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더 큰 피해 사례의 고발과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배우 곽현화의 향후 활동과 법정투쟁을 응원하는 바다. 우리에겐 더 많은 '곽현화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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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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