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 중 하나는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종료 직전 극장 골이다. 9월 세 번째 토요일 오후 열린 K리그 클래식 세 경기 중에 두 경기가 믿기 힘든 장면들을 여러 차례 쏟아냈다. 여러 이유로 후반전 추가 시간이 표시되는 것을 보면서 경기장을 미리 빠져나온 일부 관중들은 이 기막힌 순간들을 못 누린 셈이다. 

김태완 감독이 이끌고 있는 상주 상무가 16일 오후 7시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진 2017 K리그 클래식 29라운드 광주 FC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에만 3골을 주고받는 보기 드문 명승부 끝에 3-2 펠레 스코어로 놀라운 승리를 거뒀다.

극장골 기적은 평창에서 먼저

축구장 공식 경기 시간 90분이 다 끝나는 순간 대기심이 맡은 중요한 임무가 하나 있다. 추가 시간을 공식적으로 표시하여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에게까지 몇 분 더 남았는가를 알려주는 일이다.

과거에 비해 놀라운 극장골이 더 많이 터지는 이유는 이 시간을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선수들이 잘 알고 뛰기 때문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준비한 것 모두를 쏟아내기만 한다면 귀중한 승점을 추가하는 것은 물론 우승 트로피의 주인까지도 바뀐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벌써 가을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평창에서 먼저 믿기 힘든 극장골이 나왔다. 후반전 초반에 어웨이 팀 전남 드래곤즈가 2골을 터뜨리며 2-0으로 앞서가면서 감독대행 체제의 강원 FC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강원 FC의 베테랑 선수들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날개 공격수 이근호와 후반전 교체로 들어온 골잡이 정조국이 바로 기둥 역할을 해낸 것이다. 점수판이 0-2로 된 것이 58분의 일이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이 비교적 많아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셈이다.

홈 팀 강원 FC의 추격은 그로부터 4분 뒤에 시작됐다. 62분, 측면 크로스를 전남 골키퍼 이호승이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흘린 것을 놓치지 않고 이근호가 달려들어 밀어넣은 것. 작은 실수 때문에 경기 흐름이 단번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56분에 교체로 들어온 정조국이 13분만에 천금의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근호가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감아올린 공을 향해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진 덕분이었다. 후반전 초반 분위기로는 어웨이 팀 전남 드래곤즈가 상위 스플릿에 도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일 정도였지만 단 11분만에 2-2로 다시 균형을 이루게 될 줄은 몰랐다.

강원 FC는 내친김에 역전골까지 만들어냈다. 84분에 디에고의 발에 맞고 포물선을 그리며 크로스바를 때린 공이 행운이었다. 그 순간을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다이빙 헤더 골을 터뜨린 주인공은 베테랑 이근호였다.

이쯤 되니 강원 FC 선수들과 팬들은 기분 좋은 펠레 스코어 역전승 분위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후반전 추가 시간 4분도 거의 다 흘러갔으니 더 볼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전남 드래곤즈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 마지막 기회가 전남에게 찾아왔다. 한찬희가 오른발로 감아올린 코너킥을 허용준이 헤더로 꽂아넣은 것이다. 후반전 추가 시간 4분도 지나고 28초만에 나온 극장골 바로 그것이었다. 허용준 역시 강원 FC의 동점골 주인공 정조국처럼 후반전 교체 선수였던 것이다. 축구장의 드라마는 역시 예상 밖 인물들이 만들어낸다는 말이 또 한 번 적중되는 순간이었다.

추가 시간 4분 동안 '3골의 기적'

평창 경기가 끝나고 2시간 뒤에 상주시민운동장에서는 상주 상무와 광주 FC가 만났다. 11위-12위가 만나는 경기이기 때문에 이른바 승점 6점 짜리 경기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았다. 주중에 핵심 선수들 18명이 한꺼번에 전역하면서 상주 상무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특급 골잡이 주민규가 있었고 슈퍼 서브 김병오가 건재했다. 오른쪽 측면을 휘젓는 김태환의 드리블 유연성과 속도도 여전했다.

34분에 상주 상무의 선취골이 보는 이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 중앙선에서 김남춘이 차 올린 공을 받은 주민규가 광주 FC 골문을 등지고 기막힌 오른발 회전 발리슛을 차 넣은 것이다. 전북의 발리슛 장인 이동국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FC의 전설 '데니스 베르캄프, 티에리 앙리' 등 여러 실력자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명장면이었다.

꼴찌 광주 FC는 더이상 물러설 곳 없었다. 후반전 교체 선수 조주영이 그 간절함을 그라운드에서 쏟아냈다. 52분에 페널티킥 동점골을 왼쪽 구석에 꽂아넣고 우선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진정한 축구는 후반전 추가 시간 4분이 흐르는 사이에 만들어졌다. 1-1 점수판 그대로 끝나는 듯 보였던 이 경기는 도저히 믿기 힘든 4분이 남았던 것이다. 상주 상무의 후반전 교체 선수 김병오가 그 중심에 섰다. 추가 시간 67초만에 김병오의 듬직한 왼발 드리블이 빛나며 주민규의 왼발 돌려차기 추가골이 터졌다.

그로부터 119초 뒤에 광주 FC의 조주영이 골문 앞 혼전 중 흐른 공을 오른발로 차 넣어 점수판은 2-2가 됐다. 이 두 골만으로도 보는 이들의 심장 박동수가 한참이나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짜 극장골이 하나 더 남았던 것이다.

추가 시간 4분하고도 21초만에 김호남의 오른발 슛이 반짝반짝 빛난 것이다. 여기서도 슈퍼 서브 김병오의 듬직한 왼발 드리블이 빛났고 상대 팀 수비수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오프 사이드 함정을 피해 패스를 찔러준 주민규의 판단이 놀라웠다. 이처럼 축구 선수의 Brain과 Ball control 능력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빛나는 것이다.

이 놀라운 극장골 덕분에 상주 상무(11위→10위)는 강등권 싸움에서 순위를 한 계단 끌어올렸다. 17일 FC 서울과 홈 경기를 치르는 인천 유나이티드 FC(10위→11위)와의 11위 싸움이 몹시 흥미롭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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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 K리그 클래식 29라운드 결과(9월 16일, 왼쪽이 홈 팀)

★ 강원 FC 3-3 전남 드래곤즈 [득점 : 이근호(62분), 정조국(69분,도움-이근호), 이근호(84분) / 토미(47분,도움-자일), 자일(58분), 허용준(90+5분,도움-한찬희)]
- 9월 16일 오후 3시,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

★ 상주 상무 3-2 광주 FC [득점 : 주민규(34분,도움-김남춘), 주민규(90+2분,도움-김병오), 김호남(90+5분,도움-주민규) / 조주영(52분,PK), 조주영(90+4분)]
- 9월 16일 오후 7시, 상주시민운동장

◇ 2017 K리그 클래식 9월 16일 현재 순위표
1 전북 현대 28경기 57점 17승 6무 5패 54득점 27실점 +27
2 제주 유나이티드 28경기 51점 15승 6무 7패 48득점 24실점 +24
3 울산 현대 28경기 51점 14승 9무 5패 32득점 30실점 +2
4 수원 블루윙즈 29경기 50점 14승 8무 7패 49득점 30실점 +19
5 FC 서울 28경기 43점 11승 10무 7패 41득점 31실점 +10
6 강원 FC 29경기 41점 11승 8무 10패 47득점 49실점 -2
7 포항 스틸러스 28경기 34점 10승 4무 14패 38득점 44실점 -6
8 전남 드래곤즈 29경기 32점 8승 8무 13패 47득점 53실점 -6
9 대구 FC 29경기 31점 7승 10무 12패 35득점 43실점 -8
10 상주 상무 29경기 28점 7승 7무 15패 30득점 51실점 -21
11 인천 유나이티드 FC 28경기 27점 5승 12무 11패 25득점 42실점 -17
12 광주 FC 29경기 20점 4승 8무 17패 24득점 46실점 -22
축구 극장골 K리그 클래식 김호남 허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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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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