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016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시민들을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016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시민들을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복귀설을 둘러싼 논란이 이제 김호곤 기술위원장과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축구협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히딩크 감독 측과의 사전 접촉을 강하게 부인해왔던 축구협회로서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특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대표팀 감독 선임권'을 쥐고 있는 김호곤 기술위원장 겸 축구협회 부회장의 처신이다. 최근 일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히딩크 재단의 노제호 사무총장이 지난 6월 19일 김 위원장에게 보냈다는 SNS 메시지가 공개됐는데 '히딩크 감독이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높으니, 일단 최종예선을 통과할 임시 감독을 선임하고 본선에서는 히딩크 감독을 후보로 고려해달라'는 제의가 담긴 내용이다.

비록 메시지 본문에서는 본선을 이끌 감독을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좋겠다는 식의 다소 우회적인 표현을 썼지만, 전후 문맥상으로 봤을 때, 사실상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감독직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지난 기자회견에서 밝힌 '지난 여름에 대한축구협회 측에 의사를 전달했다'는 내용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이 그동안 히딩크와 접촉설을 완강히 부인해왔다는 점에서 '거짓말'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월드컵 본선진출이 결정된 바로 다음날, '히딩크 복귀설'에 대한 질문을 받자마자 "히딩크 전 감독 입에서 나온 건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다. 상당히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랬던 김 위원장은 노제호 사무총장이 보낸 메시지가 공개된 뒤에는 슬쩍 말을 바꿨다. '당시 메시지 내용 자체가 적절하지도 않았고, 문자를 통한 연락이 공식적인 감독 제안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는 방식이었기에 아예 응답도 하지 않았다'는 게 김 위원장 측의 해명이다. 또한 당시에는 본인이 아직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되기 전이라 답변을 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주장이다. 노 사무총장의 메시지를 뒤늦게 밝힌 것도 고의로 감춘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절차나 제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잊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했다는 주장이다.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은 행위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김 위원장의 해명은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김 위원장은 히딩크 복귀설을 처음 부정하던 인터뷰에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히딩크 측과 아무런 접촉 자체가 없었다고 분명히 장담한 바 있다. 그런데 문자든 손편지든, 어쨌든 상대가 연락을 먼저 취했고 당사자 역시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분명히 접촉을 한 것은 '빼도박도 못 하는' 진실이다.

사적인 일이라면 그냥 오해나 해프닝으로 볼수도 있지만, 김 위원장은 대표팀 행정을 총괄하는 공적인 업무를 담당해야 할 책임자이고, 그가 내뱉은 언행이 곧 축구협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히딩크 측의 제안 방식이 본인의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협회 임원으로서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국민들 앞에서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무책임하게 늘어놓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시는 본인이 책임자가 아니라서 히딩크 측의 제안에 대답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변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당시의 김호곤은 아직 기술위원장은 아니었지만 엄연히 협회 임원인 부회장 신분이었다. 언론에 유력한 차기 기술위원장 후보로도 이미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었다.

즉, 히딩크 측 관계자의 연락은 '개인 김호곤'에게 보낸 게 아니라 '축구협회 핵심 임원이자 차기 기술위원장 김호곤'에게 보낸 제의로 봐야할 것이다. 심지어 히딩크 재단 측은 김호곤 위원장이 공개한 문자 이후에도 전화통화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축구협회로 접촉을 시도하려 했던 정황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굳이 직접 연락을 취하지 않더라도 협회에 내용을 전달하거나, 기술위원장이 된 직후라도 히딩크 감독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확인해보는 게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도 수고는 기술위원장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축구협회가 히딩크 측의 일방적인 제안을 반드시 수락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거절에도 절차와 예의란 게 있다. 그 정도의 거물급 지도자가 먼저 축구협회에 먼저 의사를 타진해왔는 데도 '아예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일부 소수 인사들의 자의적인 판단만으로 특정 감독을 후보군에서 누락시킨 것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분명한 사실은 김호곤 위원장이 그동안 히딩크 측의 연락을 받거나 최소한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려는 어떤 노력이나 정황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의도적인 '무시'라고 해석될 여지가 크며, 기술위원장이자 협회 임원으로서 공정하고 책임 있는 태도라고도 보기 힘들다.

이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잠잠해져 가던 히딩크 복귀설에 다시 불을 붙인 것도 히딩크 감독의 현지 인터뷰와 함께, 김호곤 위원장의 거짓말이 탄로나면서부터다. 많은 팬들은 김 위원장과 축구협회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태에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히딩크 복귀설에 부정적이거나 신중한 반응을 보이던 팬들조차도 김 위원장의 경솔한 '말바꾸기'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쏟아내고 있다.

김호곤 위원장과 히딩크 감독의 과거 악연도 재조명받고 있다. 김위원장은 올림픽대표팀 감독 시절이던 2003년 당시 네덜란드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히딩크 전 감독을 원색적으로 비난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의 감독이자 대한축구협회 기술자문직을 겸하고 있던 히딩크 감독이 올림픽팀 전지훈련에서 얼굴도 비추지 않고 냉대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김호곤 감독은 히딩크를 가리켜 '그 X끼'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라고 조롱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아직도 히딩크에 대하여 앙금이 남아있는지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일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히딩크 측의 제안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배제했다면 김 위원장은 축구협회 임원으로서 자격미달이다. 석연치 않은 것은 히딩크 복귀설이 처음 거론된 이후 축구협회 측의 대응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고 감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는 점이다.

일단 김 위원장 본인부터가 "불쾌하다", "어처구니없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히딩크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들도 대체로 히딩크 복귀설 자체를 '근거없는 소문'으로 치부하거나, 히딩크 감독을 본선확정 이후 뜬금없이 등장하여 감독직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모양새가 강했다.

월드컵 본선진출에도 불구하고 신태용호와 축구협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워낙 득세하던 상황이라 협회 측도 잠시 당황했을 수 있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사실확인이나 여론 수렴도 없이 적당히 문제를 덮는 데만 급급했던 태도는 오히려 팬심을 더욱 자극하는 역풍만 불러왔다. 이는 결국 히딩크와 신태용, 한국축구의 중요한 자산인 두 감독을 모두 난처하게 만든 꼴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제 와서 신태용 감독을 몰아내고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자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혼란을 부추긴 김호곤 위원장과 축구협회는 확실한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 가뜩이나 팬들이 축구협회에 대한 불신이 날로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는 적당히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와 투명성에 신뢰를 주지 못 하는 협회 임원과 기술위를 과연 팬들이 어떻게 믿고 내년 월드컵을 응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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