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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부산광역권 강소기업-청년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부산광역권 강소기업-청년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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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 아니 좋은 대학에 가야 해요?

대학교에 입학한 지난 2012년 이래, 군대에 있었던 2년을 제외하면, 나는 언제나 사교육 시장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 4년 가까이의 시간은 나로 하여금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해줬다.

학생들은 그 숫자만큼이나 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 회사원부터 프로그래머 그리고 연극 배우까지, 정말 다양했다. 물론 아직 뭘 하고 싶은지를 찾지 못한 학생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나에게 묻는 질문은 언제나 비슷했다. "왜 공부를 해야 되죠?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하죠?" 그리고 나의 대답 또한 언제나 비슷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기회가 많아지고 꿈에도 가까워질 수 있어."

사실 학생들도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꿈을 위한 적성을 기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억지로 학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꿈을 찾지 못한 학생들 또한 뭘 하고 싶은지를 탐구할 시간에 학원에 왔다.

꼭 일년 전,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가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그들은 해체를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벌없는 사회가 실현돼서가 아니라 학벌조차 통용되지 않을 정도로 노동 시장이 열악해져 더 이상 단체의 존재 의미가 없다." 저성장 시대엔 학벌도 일자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일자리가 희소해지니 학벌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그들의 해체는 학벌주의 사회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았다. 학벌 카르텔은 더욱 좁은 형태로 견고해졌다. 이를 알기에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더욱 다그쳤고, 학생들은 그러한 등쌀에 저항할 수 없었다.

학벌주의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앞에서, 학생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취업하기 위해서 그리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학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학원에 온 학생들은 나에게 매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마치 그들이 이미 알고있는 답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처럼.

블라인드 채용, 교육 개혁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길

올 하반기부터 전체 공공기간 332곳이 취업자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했고, 민간 기업들도 부분 시행에 나서고 있다. 지원서에는 사진란이 빠졌고 출신학교와 전공, 학점을 기재하는 칸도 사라졌다. 대신 직무와 관련된 교육 사항과 자격 사항, 그리고 경험, 경력 사항을 기재하는 칸이 늘어났다. 이에 간판, 특히 학벌로 실력을 판단하는 부분들이 많이 제거될 것이며, 진정한 능력중심의 사회로 나갈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감이 사회에 퍼지고 있다.

하지만 반론 또한 존재한다. 학력과 스펙 정도는 취업 지원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일 뿐이며, 이러한 정보도 없이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마다 인재 채용 기준이 모호해져 취업지원자들에게 혼란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블라인드 채용은 다른 차원, 즉 교육 개혁의 측면에서 또한 생각되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교육 개혁은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들 말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교육제도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미명 하의 이리저리 손질된다.

하지만 제도만 요란하게 바뀔 뿐, 여전히 교육현장은 주입식 교육 등 정형화된 인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왜 그럴까? 입시 점수에 따라 대학이 서열화되고 그렇게 형성된 학벌이 취업에 영향을 줘서 다시 대학 서열을 견고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학벌주의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학생들은 자신들 각자의 다양한 적성 개발이 아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단일한 공부에 모든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연히 학교는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을 길러주기보다는 입시의 성패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라인드 채용은 그 악순환을 끊을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학벌이 취업에 끼치는 영향을 상당 부분 낮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력 그 자체가 취업이나 꿈을 실현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경험하면 할수록, 학생들은 더 이상 소위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목을 맬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일찍부터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에 맞는 적성을 기르는 게 미래에 더욱 도움이 됨을 체득한다. 자연히 학교 현장은 학생들 저마다의 적성을 살려주는 다양성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물론 블라인드 채용 하나로 그 동안 여러 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교육 개혁이 하루 아침에 성공할 순 없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은 그 동안의 교육 개혁 시도가 건드리지 못했던 학벌주의에 조금이나마 금이 가게 할 수 있다. 실효성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표면상이라도 학벌이 취업이나 꿈 실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학생들에게 학력이 제 1의 조건이 아님을 확인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력을 배제하는 것은 학창시절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펼치기에 앞서, 우리는 블라인드 채용이 교육 개혁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꿈과는 큰 상관이 없는 입시에 매달려 고통 받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태그:#블라인드 채용, #교육 개혁, #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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