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블 속도를 제어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점점 슛 각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는 상대 팀 주장 완장을 찬 그리스 출신 노련한 수비수 소크라티스가 따라붙었다. 선택지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축구가 쉬워보이면서도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바로 그것을 기술적으로 완성시켜야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이끌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가 한국 시각으로 14일 오전 3시 45분 런던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7-2018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H조 1차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와의 홈 경기에서 3-1로 완승을 거두고 별들의 잔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손흥민, 4분만에 벼락 골

유럽 클럽 축구는 물론 세계 최고의 클럽 축구대회라 말할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 본선 조추첨 결과가 나왔을 때 한국 축구팬들은 손흥민과 그의 소속 팀 토트넘 홋스퍼를 많이 걱정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2년 연속 우승, 최근 4년 사이에 3회 우승에 빛나는 최고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 CF와 같은 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키프러스 클럽 아포엘 정도만 만만히 볼 상대라 여겼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다크 호스라 불리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생각하면 2위 자리를 결코 장담할 수 없는 판도였다. 바로 오늘 가장 궁금한 뚜껑이 열렸다.

홈 팀 토트넘 홋스퍼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다. 여전히 불편한 임시 홈 구장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시원한 승리의 기쁨을 누려야했고, 챔피언스리그 어웨이 경기를 감안하면 비교적 많은 골이 필요했다.

바로 그 중요한 역할을 손흥민이 해낸 것이다. 지안루카 로키(이탈리아) 주심의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고 220초만에 벼락 골을 터뜨렸다. 측면 역습이 시작되면서 손흥민이 이마로 떨어뜨려 준 공이 에릭센과 해리 케인을 거쳐 다시 손흥민에게 배달되었다. 델레 알리가 뛰지 못하는 현재 토트넘 홋스퍼에서 빠른 역습을 주도할 인물은 역시 손흥민 뿐이었다.

손흥민에게 따라붙은 도르트문트 수비수는 노련한 소크라티스 파파스타소풀로스였다. 그러나 손흥민은 속도와 파워가 넘치는 드리블 실력을 뽐내며 상대 팀 주장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헛다리 속임 동작 이후 공을 왼쪽으로 조금 더 밀어놓은 손흥민은 디딤발인 오른쪽 발목을 든든하게 고정시키고 왼발 인스텝 킥을 시원하게 휘둘렀다. 도르트문트 골키퍼 로만 뷔르키가 각도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빠져들어갈 각도는 딱 그곳 한 군데였다. 손흥민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은 왼쪽 기둥을 스치며 골문 안 높은 지점으로 빨려들어갔다. 웸블리 스타디움을 찾아온 6만7343명 대관중들이 일찍부터 환호할 수 있었다.

도르트문트, 오프 사이드 오심에 울다

손흥민 덕분에 귀중한 빗장을 푼 토트넘 홋스퍼는 비교적 안정된 마음으로 추가골을 노릴 수 있었지만 7분 뒤에 동점 골을 얻어맞았다. 일본 국가대표 카가와 신지가 내준 공을 안드리 야르몰렌코가 왼발 감아차기로 기막히게 성공시킨 것이다.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가는 공을 따라서 토트넘 골키퍼 위고 요리스가 날아올랐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궤적이었다.

이 상황은 디펜딩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를 솔직하게 제외하고 H조 2위 싸움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누가 먼저 바짝 정신을 차리느냐가 관건이었다. 토트넘 홋스퍼로서는 또 하나의 빗장을 풀어야 했다.

바로 그 역할을 간판 골잡이 해리 케인이 해냈다. 추가골이자 이 경기 결승골에 해당하는 해리 케인의 득점은 그로부터 4분 뒤에 이루어졌다. 수비수 얀 베르통언이 길게 차 올린 공을 확보한 해리 케인이 저항하는 도르트문트 수비수 둘을 따돌렸다. 골잡이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피지컬이 느껴졌다. 그리고 손흥민의 선취골과 비슷한 각도에서 캐인은 왼발 감아차기를 성공시켰다.

동점골을 내주며 흔들리는 팀을 4분만에 다시 밀어올리는 멋진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후반전 초반에도 역습 기회에서 추가골을 터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해리 케인의 도움으로 잡았지만 오른발 감아차기가 골문 오른쪽 모서리를 넘어가는 바람에 머리를 감싸쥐며 아쉬워했다.

사실 토트넘 홋스퍼가 승리하기까지 운도 따랐다. 56분에 토트넘의 골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오른쪽 측면에서 도르트문트 미드필더 다후드의 왼발 크로스가 올라가는 순간 반대쪽에서 빠져들어간 골잡이 오바메양이 멋진 하프 발리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하지만 부심의 깃발이 번쩍 올라간 뒤였다. 오프 사이드로 판정한 것이다.

어쩌면 이 순간은 양팀의 조별리그 최종 순위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공이 다후드의 왼발 끝을 떠나는 순간 가까운 쪽 선수들 여러 명은 분명히 오프 사이드 지점에서 뒤늦게 빠져나오고 있었지만 오바메양은 온 사이드 위치에서 빠져들어갔기 때문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지만 토트넘 홋스퍼와 2위 자리를 다퉈야 할 도르트문트로서는 매우 억울한 판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4분 뒤에 해리 케인의 추가골이 나왔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밀어준 공을 잡아서 왼발로 정확하게 차 넣은 것이다. 묘하게도 이 경기에서 공식 인정된 4골 모두가 왼발 슛이었다. 그렇게 왼발들은 아름다웠지만 왼손이 나쁜 역할을 한 장면도 이어졌다.

후반전 추가 시간이 흐를 때 토트넘 홋스퍼 수비수 얀 베르통언이 공을 빼앗기는 순간 도르트문트 교체 선수 마리오 괴체를 왼손으로 막은 것이다. 지안루카 로키 주심은 이 몸싸움 장면을 고의적인 반칙으로 판단하고 노란 딱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것이 베르통언에게는 두 번째 딱지였던 것이어서 퇴장당한 것이다.

이제 토트넘 홋스퍼는 17일 오전 1시 30분 웸블리에서 스완지 시티와 프리미어리그 일정을 치러야 한다. 기성용이 아직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손흥민과의 만남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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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7-2018 UEFA 챔피언스리그 H조 결과(14일 오전 3시 45분, 웸블리 스타디움-런던)

★ 토트넘 홋스퍼 3-1 도르트문트 [득점 : 손흥민(4분,도움-해리 케인), 해리 케인(15분,도움-얀 베르통언), 해리 케인(60분,도움-크리스티안 에릭센) / 안드리 야르몰렌코(11분,도움-카가와 신지)]

★ 레알 마드리드 3-0 아포엘

◇ H조 현재 순위표
레알 마드리드 3점 1승 3득점 0실점 +3
토트넘 홋스퍼 3점 1승 3득점 1실점 +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0점 1패 1득점 3실점 -2
아포엘 0점 1패 0득점 3실점 -3
축구 손흥민 챔피언스리그 토트넘 홋스퍼 도르트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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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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