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회에서 열린 영화산업 독과점 및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방안 마련 토론회.

5일 국회에서 열린 영화산업 독과점 및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방안 마련 토론회. ⓒ 성하훈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안 되면 공정거래법으로, 그게 안 되면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

5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영화산업 독과점 및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 방안'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울산과학대 백일 교수의 주장이다. 백 교수는 "통계지수를 바탕으로 외국계 대자본의 한국영화시장 진입으로 배급의 독과점이 재편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독과점 영화생산과 유통구조가 계속된다면 (영화) 제품이 단조롭게 변질돼 관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면서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기존의 영비법과 공정거래법 외에 특별법까지 제안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해소를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가 영화계 고질적 문제 해결을 주요 정책과제로 설정한 데다, 국회에서 영비법 개정안을 낸 의원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야당 대표를 맡은 등 어느 때보다 의욕이 높기 때문이다.

영화단체 중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은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예전과는 다른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올 여름 시장에서 <군함도>가 촉발한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영향을 미친 가운데 더는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기대했던 공정위의 어정쩡한 자세

 5일 오전 박용진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영화산업 독과점 및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방안 마련 토론회에 나온 발제자들과 토론자.

5일 오전 박용진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영화산업 독과점 및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방안 마련 토론회에 나온 발제자들과 토론자. ⓒ 박용진 의원실


5일 토론회는 그간 영비법을 중심으로 대기업 규제를 논의했다면 이번에는 공정거래법을 통해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규제할 수 있는지가 초점이었다. 영비법 개정안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공정거래법 역시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발제자로 나선 백일 교수와 박경신 교수, 토론자로 나선 배장수 한국제작가협회 상임이사, 참여연대 민생희망연대 성춘일 변호사, 법무법인 한누리 서정 변호사 등은 한국영화시장의 불공정 문제와 독과점 거래가 심각하다고 강조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하지만 토론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역시도 간단치 않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공정위의 어정쩡한 자세에 있었다. 김상조 위원장 임명으로 공정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적어도 영화산업에 있어서 CJ와 롯데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불공정거래 등에 대해 공정위는 상당히 신중한 자세였다.

참석자들은 사회자인 오동진 평론가까지 나서 공정위가 영화산업을 불공하게 보고 있는지? 대기업을 시장 지배 사업자로 보는지? 잇따라 질문을 던졌으나 공정위를 대표해 나온 시장구조개선과 이동원 과장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최근 이들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진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장은 공정위가 자사 영화 스크린 몰아주기로 과징금 처분을 내렸던 CJ와 롯데가 이에 불복해 소송을 통해 이긴 사례를 언급하며, 대법원에서도 졌지만, 시대나 역사 상황에 따라 판결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기업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며 "영화단체들의 문제 제기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또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가 CJ와 롯데를 시장지배사업자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건이 있을 때 추정할 수 있다"며 "사업자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CJ와 롯데 등 대기업의 영화산업 불공정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원했던 영화인들의 생각과는 거리감이 컸다.

이 때문에 토론회에서 참석한 영화인들은 공정위의 자세에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공정위의 분명한 입장과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 규제를 기대했던 영화인들 입장에서는 답답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배장수 제협 이사는 그간 제협이 제기했던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패한 사례를 들며 "공정거래법 개정이 없으면 판결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2010년 80%를 웃돈 대기업 시장점유율이 2013년~2016년 사이 96.1%에서 97.1%까지 높아졌는데도 공정위가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면서 "영화인 입장에서는 '불공정거래위'나 반공정거래위"라고 비판했다.

'공론의 장' 원한 CGV 대표, 국정감사 증인 채택할 것

 두자 배급 상영 등 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CJ와 롯데시네마의 상영관.

두자 배급 상영 등 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CJ와 롯데시네마의 상영관. ⓒ CGV, 롯데시네마


하지만 영화계와 온도 차가 느껴지는 공정위의 태도는 대기업 규제를 위해서는 난관이 많다는 점만 확인시켜줬다. 비단 공정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날 발제문에 있는 내용처럼 '영화산업 독과점 해소를 위한 근본 조치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현실이고, 방향도 정해지지 않아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조짐'이다.

정치권의 어정쩡한 태도 역시 영화계의 기대에 실망감을 안겨주는 요인이다. 문체부 차원에서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으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원론적인 태도만 나오고 있다.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했지만, 다분히 선언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 역시 발의한 당사자들인 도종환 의원이 장관에 입각하고, 안철수 전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한 이후로 추진 동력 자체가 없어진 셈이 됐다. 매우 무기력한 모습이다.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개정안을 발의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관심한 반응이 나온다.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다른 의원이 추진하던 법안을 넘겨받아 대신 추진한다는 게 쉽지 않다"며 "영비법 개정안을 당장 시급한 우선 현안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쪽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전 의원이 대표가 됐지만 그가 발의한 법안에 대해 다른 의원들의 움직이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돼 있는 한 국민의당 의원실 관게자는 "안철수 당대표가 의원 시절 입법안을 냈다고 해도 당론은 아니지 않냐"며 "의원 개인의 입법안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7월 CJ CGV 서정 대표가 "배급과 상영을 겸하는 것을 대기업 수직계열화를 규제해야 한다는 시각에 정말 문제가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는 발언으로 영화계의 움직임을 견제한 것도 이런 흐름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움직임 등을 따져볼 때 궁극적으로 규제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 대표는 "영비법 개정안이 영화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공론의 장을 거쳤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며 밖이 아닌 안에서 이야기하자는 자세를 나타냈다.

대기업 수직계열화가 독과점을 심화시키면서 불공정한 거래행위를 일삼고, 영화산업을 비정상적으로 몰고 있다는 영화계의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인식이었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박용진 의원은 "영화산업 수직계열화는 각계각층의 계속된 문제 제기에도 대기업의 투자·제작·배급 등 외연 확대가 지속해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며 "CGV 서정 대표가 영비법 개정안을 오픈 테이블에서 논의하자고 말한 만큼 이번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해, 국정감사라는 오픈 테이블에서 깊이 있게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산업 수직계열화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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