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기획 다큐멘터리 <순례>

KBS 대기획 다큐멘터리 <순례> ⓒ KBS


영상을 기사로 소개하는 사람으로서 때로 한 문장 한 문장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 중 하나는 압도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자연의 풍경을 만났을 때고 다른 하나는 말 없이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순례자의 길'을 다룬 KBS 4부작 <순례>는 이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하는 다큐멘터리다. 압도적인 영상미와 그 영상미를 채우는 사람의 삶.

티베트 불교 드루크파의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 순례 '패드 야트라(발의 여정)'의 순례자들을 9개월 동안 옆에서 밀착 취재한 <순례> 1부 '안녕, 나의 소녀시절이여'. 티베트 불교 종파인 드루크파의 순례 '패드 야트라'를 TV로 담은 건 이번이 최초다. 인도 라다크 지역에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여기에는 자신의 생애 최대 결정인 '출가'를 택한 16살 소녀 '쏘남 왕모'가 나온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왕모는 9살 때부터 다른 도시에서 가정부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왕모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농사와 소일거리를 하면서 지낸다. 여느 날처럼 엄마 앞에 앉아 라다크 전통 음식을 만들던 왕모. 그는 앞에 앉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출가할래요. 이런 삶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가난한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신심을 위해서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건 16살의 왕모가 자신의 인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왕모도 다른 '패드 야트라'의 순례자들처럼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다. 순례길을 따라 행하는 치열한 오체투지. 고산병으로 인해 쓰러지면서도 왕모는 후회하지 않는다. "어디로 갈지는 몰라요. 어디로 향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왕모는 덤덤하게 자신의 '소녀시절'과는 완벽히 다른 비구니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왕모가 비구니가 되고자 출가를 선택하면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 먼지처럼 떨어지는 머리카락까지 세밀하게 담아낸 영상은 전혀 알지 못하고 알지 못했을 인도 라다크 지역에 사는 한 소녀의 삶을 내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삶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체험'하게 만든다. 카메라는 인도 라다크 지역에 사는 야생 동물들의 피부결까지 잡아낸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히말라야 산맥의 생생하고 압도적인 색감이나 눈보라 치는 풍광을 집에서 편하게 TV로 볼 수 있다는 게 새삼 행운처럼 느껴진다.

 KBS 대기획 다큐멘터리 <순례>의 한 장면

KBS 대기획 다큐멘터리 <순례>의 한 장면 ⓒ KBS


<순례>의 제작진 역시 왕모의 순례길에 동행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순례의 길이고 우리 모두는 그 길을 걷는 순례자'라는 <순례>의 기획의도처럼 제작진 역시 만만치 않은 촬영 과정을 거친다.

30일 가진 <순례> 기자간담회에서 김한석 피디는 "섭외할 인물을 찾기가 힘들어 티베트 불교 드루크파 쪽에 섭외 요청을 했고 라다크 전역에 있는 마을마다 요청을 해 마침 한 동네에서 출가할 예정인 소녀가 있어 바로 찾아갔다"며 "(왕모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피디에 따르면 미국의 한 채널에서도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시도했지만 출연자를 찾지 못해 포기했다고 한다. 드루크파의 순례길을 담는 과정 또한 1년 전부터 시도를 해 겨우 담을 수 있었다고. 우리가 라다크 지역에 사는 왕모를 만난 건 "행운"인 셈이다.

<순례> 다른 편을 촬영한 홍성준 촬영감독은 "영하의 날씨 속에서 영상미를 표현하면서 진실된 모습을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총 4부까지 이어지는 <순례>의 모든 여정은 12,000km 이상으로, 인도 라다크 지역 말고도 세네갈 분홍호수, 미국 로키산맥, 페루 안데스 산맥이 에 담겼다.

각각 KBS 1TV 7일 오후 10시 1부 '안녕 나의 소녀시절이여'(인도 라다크와 히말라야 산맥), 8일 2부 '신의 눈물'(남미 페루와 안데스 산맥), 14일 3부 '집으로 가는 길'(아프리카 세네갈 장미호수), 15일 4부 '4300km, 한 걸음 나에게로'(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으로 이어진 순례길)가 방송된다.

 KBS 대기획 다큐멘터리 <순례>의 한 장면

KBS 대기획 다큐멘터리 <순례>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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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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