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피겨가 또 한번 내부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최근 AP통신은 러시아 매체를 인용해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부상을 이유로 평창 올림픽 시즌에 모든 대회에 참가하지 않게 됐다고 보도했다. 소치에서 논란의 금메달을 가져간 이후에도 줄곧 세계 피겨의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러시아 피겨가 평창을 코 앞에 두고 또 한번 내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소트니-리프니, 소치 얼굴들 모두 자취 감춰

소트니코바는 소치 올림픽 이후 줄곧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다. 김연아를 제치고 논란의 금메달을 거머쥔 그는 편파판정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모든 국제대회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올림픽 금메달을 바탕으로 그랑프리, 유럽선수권, 세계선수권 등에서도 금메달을 따내겠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드러낸 바 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 어느 국제대회에서도 소트니코바의 모습을 볼 순 없었다.

그가 국제 대회에 나왔던 것은 지난 2015-2016시즌 자국에서 열렸던 그랑프리 대회인 '로스텔레콤 컵'에서만이 전부였다. 당시 한 차례 그랑프리 배정을 받았던 그는 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아이스쇼 등에만 출연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그가 소치 올림픽 당시 러시아 대표팀의 조직적인 도핑 파문에 가담했던 선수였고, 그녀를 비롯한 러시아 대표팀의 도핑 샘플이 모두 재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하지만 그의 코치를 맡은 예브게니 플루쉔코는 "소트니코바가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며 다시 올림픽 준비를 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플루센코는 결국 최근 "그녀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만족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평창 올림픽 시즌 국제 대회에 불참할 것"이라고 전해 사실상 그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한편 소치에서 소트니코바와 함께 러시아 대표로 출전했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는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리프니츠카야의 어머니는 최근 러시아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율리아가 유럽에서 3개월간 거식증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지난 4월 러시아빙상연맹에 은퇴 결정을 알렸다"고 밝혔다. 리프니츠카야는 올림픽 이후 체형변화 등으로 계속해서 성적이 좋지 않던 가운데, 최근엔 지속적인 체중관리의 여파로 거식증까지 생겨 결국 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러시아 신예들

비록 소트니코바와 리프니츠카야 등이 은퇴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러시아 피겨는 '승승장구' 중이다. 이미 평창 동계올림픽을 겨냥한 후보들이 줄줄히 세계 국제대회들을 석권하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예약이라도 해놓은 듯한 기세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는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다. 그는 지난 시즌 시니어 2년차로서 거침없는 질주를 하며, 그랑프리 파이널, 유럽선수권, 세계선수권까지 모두 석권했다. 특히 유럽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선 종전 김연아가 보유하고 있던 세계신기록(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228.56점)을 갈아 치웠다. 메드베데바는 이런 기세를 앞세워 평창에서도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점프를 후반부에 주로 배치해 고득점 전략을 노리며 매 대회마다 실수 없는 연기를 펼치고 있는 메드베데바는 평창에서도 같은 전략으로 나설 예정이다.

뒤이어 올 시즌 시니어로 데뷔하는 알리나 자기토바 역시 만만치 않다. 그는 지난시즌 주니어 1인자로서, 3월에 있었던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210점대에 육박하는 점수로 평정했다. 올 시즌엔 평창을 목표로 시니어로 올라오면서 메드베데바와 불꽃 튀는 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 역시 메드베데바와 마찬가지로 후반부에 점프를 몰아서 뛰며 가산점을 노리는 전략을 꾀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가 주목된다.

러시아 피겨는 시니어뿐만 아니라 주니어계에서도 가장 강력하다. 지난주에 시작한 2017-2018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도 러시아가 첫 대회부터 우승을 차지했다. 호주에서 열린 1차 대회에서 알렉산드라 트루소바가 190점대의 점수로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그녀는 프리스케이팅에선 4회전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시도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 각 대회마다 2명의 선수씩 총 14명의 여자선수를 내보내는데, 트루소바 이외에도 구바노바, 타라카노바 등이 모두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앞으로도 러시아의 초강세는 전 대회에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매 시즌마다 유망주들을 모두 주니어 대회에 출전시킨 뒤 전략적으로 선수를 육성해 내고 있는 러시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을 두고 비판의 시선도 있다. 러시아의 유망주들이 대개 어린 나이에 고난이도 점프에만 승부를 걸며 고득점에 치중된 피겨를 하면서, 결국 선수 생명을 더욱 단축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이번에 은퇴한 리프니츠카야 역시 만19세에 불과했다. 또한 많은 러시아 선수들의 선수 생활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이른바 '반짝' 선수 생활에 대한 시선도 존재한다. 여기에 최근 러시아 피겨가 트리플 악셀 뿐만 아니라 4회전 점프까지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러한 러시아의 선수 육성 체계와 시스템을 두고 설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 피겨는 금메달 3개(여자싱글, 페어스케이팅, 단체전)를 따내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이후 러시아 피겨는 평창을 5개월여 앞둔 지금까지도 피겨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논란의 소트니코바가 결국 평창행을 포기해 '먹튀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지만, 이후에도 러시아는 끊임없이 유망주들을 배출해 내며 피겨계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평창에서도 러시아의 강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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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평창동계올림픽 소트니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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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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