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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천사람과문화의 54회 인천마당이 지난 28일 저녁 부평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사)인천사람과문화의 54회 인천마당이 지난 28일 저녁 부평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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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5%, 먼지 3.5%, 나무 20%, 논 10%, 강 10%, 새 5%, 바람 8%, 나비 2.55%, 먼지 1% 돌 15%, 노을 1.99%, 낮잠 11%, 달 2%. 제게도 저작권을 묻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참 염치가 없습니다. 사실 제 시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나무와 새인데 그들에게 저는 한 번도 출연료를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마땅히 공동저자라고 해야 할 구름과 바람과 노을의 동의를 한 번도 구한 적 없이 매번 제 이름으로 뻔뻔스럽게 책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손택수 시인의 '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의 일부다.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의 54회 인천마당이 지난 28일 오후 부평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강사는 <도시의 나무들>(2017 다산기획)의 저자이자 천리포수목원 이사이며 나무칼럼니스트인 고규홍씨였다.

고씨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을 보니 자연히 떠올랐다"며 손택수 시인의 시 '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의 일부분을 낭독했다. 그는 자신을 '나무 인문학자'라고 부르는 건 맞는 말이지만, '최고'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자기 외에 나무 인문학자가 아직 아무도 없기에, '첫째'이자 '꼴찌'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아래는 그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한 송이 꽃을 만나기 위해

 경남 함안에서 2009년에 성터 발굴 작업을 하다가 700년 전 연꽃 씨를 발견했다. 그 씨앗은 2년 뒤 꽃을 피웠고, 지금은 군락을 이뤘다. 이 꽃의 이름은 옛 지명을 따 아라홍련이라고 한다.
 경남 함안에서 2009년에 성터 발굴 작업을 하다가 700년 전 연꽃 씨를 발견했다. 그 씨앗은 2년 뒤 꽃을 피웠고, 지금은 군락을 이뤘다. 이 꽃의 이름은 옛 지명을 따 아라홍련이라고 한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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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볼 꽃이 많은데 그 중 가장 화려한 게 아마도 연꽃 같다. 2009년 경남 함안에서 성터 발굴 작업 중에 오래된 연꽃 씨앗이 발견됐다. 탄소연대측정법으로 확인한 결과, 700년 전인 고려시대의 꽃이라고 밝혀졌다. 생육조건을 만들어주니 2011년에 붉은 연꽃이 피었다. 이 꽃의 이름은 씨앗이 발견된 곳의 고려시대 지명인 '아라가야'를 따서 '아라홍련'이라 지었다. 연꽃은 생명력과 번식력이 대단하다. 지금은 아라홍련 테마연꽃단지를 만들어 놨다.

700년이란 긴 세월동안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준 것도 대단한데, 이게 처음이 아니다. 1953년 일본에서는 2000년 전의 씨앗을 발견에 꽃을 피우기도 했다. 교과서에는 모든 생물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2000년 정도로 본다. 그러나 이를 뒤집는 일이 있었다.

지난 2011년, 러시아 과학자들은 3만 년 전에 맺은 씨앗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콜리마 강둑 다람쥐 굴에서 발견한 것으로 석죽과(우리나라의 패랭이꽃이 속한 식물군) 식물의 씨앗이었다. 시베리아 툰드라지대의 지질 탐사과정에서 발견된 이것의 학명은 '실레네 스테노필라(Silene stenophylla)'다. 과학잡지 표지사진으로도 실렸는데, 전 세계 과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최장 생명 기간을 2000년이라 기록한 생명과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

연꽃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자들에게도 중요한 꽃이었다. 성리학의 바탕을 확립한 중국 송나라 때의 유학자 주렴계(周濂溪)는 '애련설(愛蓮說)'이라는 글을 썼는데 연꽃을 '꽃 중의 군자'라고까지 했다. 선비들은 집 앞에 지은 연못에서 손수 연꽃을 키우며 연못을 애련지라 했고, 연못 앞 정자에는 애련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덕궁 후원의 연못이 애련지이고, 그 앞 정자 이름이 애련정인 것도 주렴계의 '애련설'과 무관하지 않다.

조선시대 문인 김종후(金鍾厚)는 한 발 더 나아가 '경련설(敬蓮說)'을 지었다. 연꽃을 단지 사랑의 대상으로만이 아니라, 가히 공경할 만한 자연 대상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경련설에서 김종후는 "연꽃을 대할 때마다 반드시 옷깃을 바로 하고 얼굴빛을 고쳤다"고 했다.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빅토리아 수련이라는 연꽃이 있다. 기네스북에 나오는데 세상에서 잎이 가장 큰 식물이고, 큰 것은 지름이 3미터 정도 된다. 빅토리아 수련은 두 종류가 있는데 모두 아마존강 유역에만 있다. 우리나라에도 12곳에 있다. 내가 이사로 있는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도 있다.

빅토리아 수련은 꽃을 1년에 3일 피운다. 밤에 피는데 대략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에 피기 시작해 새벽 3시께 절정을 이룬다. 또한 꽃은 첫날은 순백색이었다가 둘째 날은 빨간색으로 바뀌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진해진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완전히 개화한 상태에서 물속으로 가라앉는데 정말 신비롭다. 멀리 있어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짙은 향기가 나오는데 잘 익은 파인애플 냄새다. 내가 술을 즐기는데 여름에는 이 꽃을 보려고 농담이 아니라 술을 마시지 않는다. 대신 꽃을 보고 온 다음날 폭음한다. 이게 혹시 '옷깃을 여미고 낯빛을 고치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나무에서 느끼는 생명의 신비

 고규홍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 나무 인문학자.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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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나무에 혁명적일만큼 큰 변화가 온다.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있다가 빨강이나 샛노란 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빨간색도, 다 빨갛지 않고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군락을 이룬 같은 생육조건의 나무들이더라도 빨갛고 누런 게 다 다르다. 벚나무가 그렇다.

가을에 빨갛게 단풍을 만드는 화살나무라는 게 있다. 줄기가 화살 끝부분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쇠기 전 여릴 때는 나물로 무쳐먹는다. 온갖 초식동물이 화살나무를 다 뜯어먹으니 나무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살아나갈 방법을 찾다가 새로 난 가지에서 자기 살갗을 뜯어내 화살 꽁무니처럼 네 군데 세운다. 나무는 통증을 못 느낀다고 하지만 멀리서 보면 굵은 가지처럼 보여 몸을 과장하기 위해 스스로 껍질을 벗겼다. 살기위해 온갖 애를 쓰다가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이 든다.

식물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릴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 스스로 양분을 만드는 생명은 식물밖에 없다. 모든 식물은 봄부터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들어 이 땅에 나눠준다. 광합성 작용은 초록색 엽록소가 한다. 여름에는 햇살과 이산화탄소, 물과 엽록소가 광합성을 하는데 가을이 되면 햇살이 줄고 물의 양도 줄어 광합성의 효율이 높지 않다. 그때부터 잎사귀들은 초록색 엽록소가 아닌 빨간색과 노란색이 나오고 떨겨층이 막혀 낙엽이 된다.

낙엽의 역할이 남았다.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은 빨간색 낙엽이 뿌리 주위에 쌓여 흙을 덮는다. 안토시아닌은 해충 방지 효과가 있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건 불필요한 에너지는 쓰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겨울잠을 자겠다는 거다. 해충 공격에 무방비한 상태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그렇게 준비하는 것이다. 빨간 단풍이 그냥 예쁜 게 아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처연하기도 하지만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

치유의 다른 이름 나무, 소록도 솔송나무이야기

  전남 고흥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솔송나무. 이 나무는 사람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아 나무 본성을 잃었다.
 전남 고흥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솔송나무. 이 나무는 사람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아 나무 본성을 잃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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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만 자생하는 솔송나무라는 토종나무가 있다. 전남 고흥 소록도에도 한 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에는 여러 소문이 떠돈다. 나무 가격이 몇 억 원이라는 둥, 최고 권력자나 재벌 아무개가 이 나무를 자신의 정원으로 가져가려했는데 소록도에 사는 한센인들이 막아서 못 가져갔다는 내용이다.

나무의 얘기를 들으려면 나무 곁에 살아온 사람의 얘기를 들어야한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는다. 소문의 진위를 알고 싶어 소록도에 살고 있는 한센인 강아무개 선생을 만났다. 그는 이 나무가 전문 조경사에게서 감정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또한 당대 최고의 권세가들이 이 나무를 가져가겠다면 소록도 주민들이 막는다고 막아질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모두 헛소문이 부풀려진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소록도에 있는 솔송나무는 본성을 잃어버렸다. 솔송나무는 월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삼각형으로 생겼는데, 이곳의 나무는 둥그렇게 생긴 게 누가 봐도 아주 오랫동안 사람 손에 의해 다듬어진 나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뭇가지 퍼짐뿐 아니라 잎사귀 하나하나까지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 그러나 강 선생은 '지난 100년간 소록도에는 나무를 관리하는 정원사가 한 명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언제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나는 또 다른 생명체를 만지는 순간, 생명의 약동을 느낄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 강아지를 껴안을 때나 다른 사람과 악수할 때다. 인천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때 지금의 수도국산박물관 근처에서 살았는데, 그곳에 나환자가 많이 살았다. 그들이 배가 고파서 동네를 돌아다니면 모두 피했다. 중증 나환자는 소록도에 들어가 고환 제거수술부터 받았다. 인간으로서 기본 인권을 빼앗겼다. 누군가를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나환자는 누굴 만질 수 있나?

소록도의 한센인들이 홀로 쓸쓸히 걷고 있을 때 피하지 않는 단 하나의 생명체인 나무가 눈에 띄었다.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매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듬고 만지면서 생명을 느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무는 없다. 소록도의 솔송나무는 나무로서 본성을 잃었지만 자신을 만지고 잘라내며 누군가 치유를 받았다면 자기 본성 정도야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강 선생은 '소록도의 모든 나무는 한센인들의 썩은 손으로 적당히 긁고 매만지고, 썩어 문드러진 입술을 타고 저절로 흘러내린 침으로 키워낸 나무들'이라고 했다. 한센인들은 나무를 매만지며 나무와 삶의 한과 고통을 나누었다. 그 순간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나무는 참담한 삶을 살아가는 한센인들의 삶을 위무하는 벗이었으며 가족들조차도 돌보지 않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위로해주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나무가 살기 좋은 세상이면 사람도 살기 좋은 세상이고, 나무가 살기 힘들면 사람도 살기 힘들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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