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올랜도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후, 조지아에 살던 한 남성이 '나는 총기를 난사한 사람이 사회 봉사를 했다고 생각한다'는 트윗을 남긴 일이 있다. 이 사건은 당시 그가 근무하던 월마트에 제보되었고, 결국 그 남성은 자신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게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올해 7월, 콜럼버스 시립학교에서 교직원으로 일하던 크리스 도즈 역시 해고 처분을 받았다. 지역 성소수자 행사를 놓고 테러나 났으면 좋겠다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남긴 것이 원인이었다. 2014년 미식축구 중계자이자 텍사스 주지사 후보로도 출마한 크레그 제임스는 선거 기간 도중 반(反)동성애 발언을 했고, 결국 내정된 방송직에서 하차해야 했다. 심지어 이 결정은 우익적 색채로 유명한 폭스 채널에서 내린 것이었다.

외국의 경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기반한 입장을 밝힌 사람이 자신의 직장에서 해고된 사례는 이외에도 상당히 많다. 또한 인종과 종교에 대한 경우까지 포함하자면 사례는 무수할 정도다. 가령 샬롯스빌에서의 백인 우월주의 집회가 일어난 이후 여기에 참여하거나 혹은 인종 차별적 입장을 밝혔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회사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 받았다.

공직은 물론이고 사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문제의 당사자들이 성소수자나 비백인, 비기독교인들에게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위험이 있으며 그래서 조직의 신뢰성과 이용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질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또한 평등을 지향하는 조직의 가치와 그 직원의 행동이 부합하지 않는 것도 사유로 제시되었다.

그들이 '혐오 인사'를 퇴출시킨 이유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초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말하자면 정부 조직과 기업들이 직원들을 해고한 것은 단지 그들이 일탈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흔들려선 안될 원칙을 단단하게 지키고자 한 것이다. 심지어 당사자가 조직의 중요 인물이 아닌 경우에도 그 방침은 관철되어 왔다.

하지만 해외의 선도적인 사례에 비하자면 국내의 경우는 아쉽기 그지없다. 가령 얼마 전 전국의 대학 교수들이 집단으로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위한 개헌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낸 사례를 생각해 보자. 어떤 학교도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으며 그저 이 문제를 방치하고만 있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는 장관 후보자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포항공대 박성진 교수가 같은 성명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성진 후보자는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모든 사람의 인권은 이유를 막론하고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동성혼의 제도화에 대해서도 이 사안에 관한 다양한 시선이 있으니 '사회적으로 시간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화된 여건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가 이름을 올린 성명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해당 성명은 개정 헌법에서 차별금지 사유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것조차 막아 성소수자를 차별에서 보호할 일말의 가능성도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헌법이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분명히 해 동성혼의 제도화 시도를 원천봉쇄할 것도 요구한다. 즉 박성진 후보자의 양비론적인 해명과는 달리 그가 참여한 성명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분명한 차별 요구와 강한 혐오가 담겨 있는 셈이다.

성소수자 혐오 전력 있는 후보자, 왜 문제인가?

동성애 ㆍ동성결혼 개헌 반대 전국교수연합 소속 교수들이 지난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동성애(성적지향) 차별금지가 포함된 헌법개정을 절대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성애 ㆍ동성결혼 개헌 반대 전국교수연합 소속 교수들이 지난 1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동성애(성적지향) 차별금지가 포함된 헌법개정을 절대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따라서 나는 박성진 후보자가 적어도 자신의 성명을 철회함과 동시에 이에 대해 무게있게 사과하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장관으로서 적합한 인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업무가 후보자의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에 대해 선진적인 시스템을 마련 중인 외국과 달리 한국은 변화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동성 커플에 대한 이성 커플과 동등한 복리후생은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직장 내 괴롭힘을 막고 징계할 규정을 갖춘 곳도 거의 없다. 중소 기업이나 벤처 기업이라고 여기서 예외는 아니며 그곳에서 일하는 성소수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평등한 문화를 갖춘 기업을 육성해도 모자랄 판국에 성소수자 혐오 행위 전력이 있는 장관이 임명된다? 전혀 적절하지 않다.

여기에 박성진 후보가 다른 자리가 아니라 장관에 내정되었다는 점도 생각해 보자. 한 마디로 그는 고위 공직자 후보다. 업무적합도와 관련이 있든 없든 강한 윤리성이 요구되는 자리인 것이다. 장관을 임명할 때마다 거치는 떠들썩한 청문회를 생각해 보자. 후보자의 지난 행적부터 과거의 세세한 발언까지 모든 것이 도마 위에 오른다.

그런데 사회적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차별할 것을 요구하고 이들에 대해 유해한 편견을 내비친 것이 전혀 비윤리적인 행동이 아닌가? 심지어 그의 성명 참여는 그렇게 높은 윤리적 기준을 들이대지 않고 상식선에서 판단해도 문제임을 알 정도의 일이었다. 만일 그가 특정 지역 거주자나 직업인에 대해서 비슷한 수준의 말을 했다고 생각해 보라. 장관직 근처에나 갈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박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행위가 심각한 윤리적 문제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혐오의 승인이자 상식의 후퇴를 조장하는 셈이다.

더 이상 성소수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정부가 되길

문재인 정부는 성소수자에 대해 반인권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김진표 의원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으로 발탁했다.
 문재인 정부는 성소수자에 대해 반인권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김진표 의원을 국정기획자문위원장으로 발탁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인권은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는 동시에 그만큼 혐오 세력의 공격도 만만치 않다. 가령 얼마전 한 페미니스트 교사는 아이들에게 퀴어문화축제의 영상을 보여주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정부의 10대 인권 과제로 제시해 기대를 모았지만, 반대 여론 때문인지 정작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에서는 이 사항이 빠져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육군 내 성소수자 군인 탄압 사건에 악용된 군형법 92조의 6의 폐지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발 탓에 제대로 통과가 될지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의 '동성애 반대' 발언, 성소수자에 대해 반인권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김진표 의원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 발탁, 100대 국정 과제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누락까지 문재인 정부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성소수자들에게 기대보다는 실망을 안겨준 면이 더욱 컸다.

물론 이 정부가 지금껏 사회적 정의와 관련해 이전 정부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였으며, 그렇기에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도 보다 진보적인 입장을 보이리란 희망을 아직 접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하다 못해 지금보다 더 못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이대로 박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고 소수자에 대해 혐오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넘어간다면, 성소수자로서 나는 이 정부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부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사회적 원칙을 제대로 세워주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성소수자, #혐오, #차별, #박성진, #문재인
댓글2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