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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열풍'을 넘어 '페미니즘 유행'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차별이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들어있고, 젠더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여전히 낯선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나 학교 같은 공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런 환경에서 '성평등'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페미니스트로 자라나는 것, 그리고 페미니스트를 키워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각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현재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교과서에는 '성 역할의 변화와 양성평등 사회'라는 소단원이 있다. 이런 주제가 교과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건 고무적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교과서가 그리는 세상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은 과거의 일이며 남아있는 성차별은 사소한 편견에 불과하다. 또 '평등을 위해 실천해야 할 일'은 너무 당연한 것이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대개 와닿지 않는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교과서에는 '성 역할의 변화와 양성평등 사회'라는 소단원이 있다. 이런 주제가 교과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건 고무적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교과서가 그리는 세상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은 과거의 일이며 남아있는 성차별은 사소한 편견에 불과하다. 또 '평등을 위해 실천해야 할 일'은 너무 당연한 것이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대개 와닿지 않는다.
ⓒ 사회과 단원 디지털 교과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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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교과서에는 '성 역할의 변화와 양성평등 사회'라는 소단원이 있다. 해당 단원은 3차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달라지는 성 역할', '성차별 사례', '양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순서로 전개된다. '양성평등'을 주제로 하는 소단원이 교과서에 들어왔다는 점은 고무적이나, 아쉬운 점도 많다.

교과서가 그리는 세상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은 과거의 일이며 남아있는 성차별은 사소한 편견에 불과하다. 또 '평등을 위해 실천해야 할 일'은 너무 당연한 것이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대개 와닿지 않는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평등해졌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은 결코 사소하거나 개인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이 내용은 교과서에 없다. 고용 및 임금 차별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 뿌리 깊고 공고한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삭제됐다.

나는 스스로가 언제나 어느 정도는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성차별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있었고, 모든 성이 동등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부터 비로소 젠더 체계의 모순을 바로 보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전까지, 여자아이들에게는 '괄괄해도 된다, 활기찬 건 좋은 일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소심하고 유약한 편인 남자아이를 보면 내심 '남자아이가 좀 더 씩씩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리더십이 필요한 일이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의식적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고루 섞여 함께 하도록 하면서도, 꼼꼼하고 섬세하게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여자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몇 달 전만 해도, 미술 시간에 아이들의 그림을 칭찬하다가 스스로에게 화들짝 놀랐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제출한 네 명의 아이들 중 여자아이 두 명에게는 '이 부분을 예쁘게 잘 그렸다', 남자아이 두 명에게는 '이 부분을 멋지게 잘 그렸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앞에 그림을 제출한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말했는지 황급히 더듬어 봐도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아이 두 명은 '흔히 예쁘다고 부를 만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고, 남자아이 두 명은 '흔히 멋지다고 부를 만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것이 여자아이에게는 예쁘게 그렸다고 말하고, 남자아이에게는 멋지게 그렸다고 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근거가 되진 않는다. 나의 칭찬을 듣고 여자아이들은 더 '예쁘게' 그리려고 노력할 것이고 남자아이들은 더 '멋지게' 그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애초에 네 명의 아이의 지금의 그림 스타일도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두 여자아이의 그림에도 대범하거나 시원시원한 부분이 전혀 없지 않았고, 두 남자아이의 그림에도 꼼꼼하고 섬세한 부분이 전혀 없지 않았다. 내가 그런 부분을 찾아내어 여자아이들에게는 '멋지다', 남자아이들에게는 '예쁘다'라고 칭찬해 준다면 아이들의 그림은 더 조화로워지고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교실 안에 스며든 고정관념... 학교는 정말 '평등'한가  

 학교는 평등한가.
 학교는 평등한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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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평등한 공간이다. 아무도 어린이들에게 '넌 여자니까 이런 건 하면 안 돼', '넌 남자니까 이런 건 못 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명시적 차별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특정한 성역할을 요구하는 사회의 영향은 학교 담장을 넘어 교실 안까지 스며들고, 많은 교사들마저도 이러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

우리 학교에는 학생 지도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마다 유독 학생의 성별을 강조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이 선생님에게 남학생이 까불거리는 것은 '남자라서' 그런 것이고 여학생이 소심한 것은 '여자라서' 그런 것이며, 남학생이 소심한 것은 '남자인데도' 그런 것이고 여학생이 까불거리는 것은 '여자인데도' 그런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기존 생각에 맞는 사례만 채택하고 어긋나는 사례는 예외로 간주하는 사고의 경향을 확증편향이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특히 성별에 대해 이렇게 강한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섬에 고립되어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손이 작은 사람은 손재주가 좋다거나 통통한 편인 사람은 신체활동을 싫어한다는 생각, 충청도 출신은 느긋하다거나 경상도 출신은 성미가 급하다는 생각,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한다거나 흑인은 스포츠를 잘한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잘해봐야 딱 들어맞지 않는 대략적인 경향에 불과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틀렸을 뿐 아니라 매우 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여성성'이라고 불리는 특징만을 모두 골라 가진 사람, 흔히 '남성성'이라고 불리는 특징만을 모두 골라 가진 사람은 없다. 여성 또는 남성의 일반적인 특징을 따지는 것보다, 개인의 특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남자아이에게 '남자다움'의 자질을 요구하고 여자아이에게 '여자다움'의 자질을 요구하는 것보다, 어린이들에게 긍정적인 인간의 자질을 고루 장려하는 것이 언제나 더 낫다.

지금, 여기,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한 이유

 학교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
 학교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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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교실에서 활발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 리더십이 있고 꼼꼼한 아이들을 만난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너는 여자니까 또는 남자니까 이러한 자질만을 키우고 이러한 자질은 억누르라고 말할 수 없다. 교사가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과 성장을 위한 의무다.

남자아이는 씩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 꼼꼼하게 해야 하는 일을 여자아이들에게만 시키는 일, 여자아이의 그림은 예쁘다고 말하고 남자아이의 그림은 멋지다고 말하는 일, 남학생은 까불거리고 여학생은 소심한 것이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일, 지극히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백 번 쌓이고 천 번 쌓여 젠더 체계를 강화한다. 이러한 사소한 일을 돌아보려면 교사가 페미니스트여야만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일상을 반추하며, 실천을 고민하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 교육의 한계는 분명하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 하필 우리는 여성과 남성의 경계와 차이를 그토록 강조해왔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공고한 젠더 체계를 의심하고, 그 경계를 넘나들고, 종국에는 무너뜨려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솔리님은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초등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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